워킹맘인 난 아이가 다니는 기관의 엄마들과 자리를 할 기회가 거의 없거나 적다.
오늘이 그 손에 꼽는 날 중 하루였다.
언제부턴가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보다 소수정예 모임이 좋아졌던 나는,
어쩌면 회사처럼 이해관계에도 있지 않아 적당히 편하게 있어도 자리에 시작부터 어느 정도의 긴장을 장착하고 모임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소수정예 문제를 떠나 몇 달 전 동일한 모임에 우리 아이는 관심병사 그 자체였다. 분명 너무 즐기는 모습인데 매일 보는 친구들인데도 불구하고 조금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다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처지이니 충분히 다른 엄마들도 이해하겠지만, 분명 그날은 정도가 심했다.
아이를 그 장소에서 데리고 나와 몇 차례나 훈육을 하고, 안고 달래 보기도 했지만 내겐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당연히 어른들의 대화에도 집중하지 못하며 한 겨울에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리고 그때 보다 오늘은 많이 컸고 자기 생각도 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며 남편에게 씩씩하게 얘기했다. "오늘은 아이만 졸졸따라니며 잘 케어해볼게!"
소형 키즈카페를 통째로 대관하여 엄마들은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아이들을 풀어 놀게 했다.
아이들 노는 게 한눈에 보이는 공간이긴 하지만, 계속 잘 노는지 신경이 쓰이고 친구랑 다툼은 없는지 수시로 쳐다보았다. 엄마들과의 대화를 하다가도 곧잘 아이의 컨디션과 기분을 살폈다. 4시간 중 2시간은 잘 노는 듯했다. 크게 엄마를 찾지도 않고 내가 옆에 다가가 말을 걸어도 엄마는 자리에 가서 앉아있으라며 독립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안심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아이가 작은 스툴을 들고 오더니 "이거 던질 거야"라며 내 경고를 무시하고 바닥에 스툴을 내동댕이쳤다. 다리 한쪽이 부서졌고 순간 아이와 나, 모든 엄마들이 당황했다. 그 순간 나는 표정관리가 어려웠지만 최대한 단호하게 네가 던진 의자를 다시 원상복귀해 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왜 던졌냐고 물으니 던지고 싶어서 그랬단다. 훈육에도 불구하고 잠시 뒤 또 비슷한 비행을 보였다. 나는 온 신경을 내 아이한테 쏟으며 마음 한 구석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며, 당장이라도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아이는 뭔가 본인이 원하는 게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었거나, 친숙한 친구들이지만 낯선 환경에 선생님이 아닌 엄마들과 함께 있는 공간, 그리고 확 올라왔던 텐션이 떨어지며 낮잠이 몰려오는 시간대라 조금 피곤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 모두 잘 노니 내 아이도 으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훈육도 달램도 불통이었고 결국 우리 아이 때문에 단체 사진도 남기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아이를 들쳐 안고 황급히 나 먼저 자리를 떠났다. 엘리베이터를 타서 아이를 내려놓으니 안아달라 울어재꼈다.
"나도 지금 널 안아주고 싶지 않아, 네 감정이 진정되면 안아줄 거야"라고 차를 태웠지만
올라온 감정을 더 진정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엄마인 나였다. 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꾹꾹 눌러 담아뒀던 화 섞인 말들이 모두 터져버렸다. 아이 기분보다 당장 내가 말을 쏟아 내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분명 이럴 땐 생각을 멈추고 상황에서 떨어져서 보기로 했는데 대 실패다.
원하는 거 다 해줬는데 왜 너는 나쁜 행동만 하고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물었다. 아이가 듣든 말든 이미 쏟아낸 감정은 주워 담을 수 없었고, 내 기분은 무엇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집에 와서도 내리 울며 "기분이 안 좋아서 장난감 던져서 부러져서 잘못했어요" 말을 반복하던 아이는 소파에 기대 잠이 들었다.
나도 너무 피곤했지만 몸에 긴장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 화가 가라앉고 일과를 천천히 쪼개 곱씹어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지쳐가고 짜증이 차오를 때, 그 순간 내가 더 옆에 있어줬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좋아하는 달달한 간식이라도 꺼내주며 숨 고를 시간을 만들었다면 혹시 작은 폭발은 막을 수 있었을까. 엄마들과도 완전히 편치 못한 대화에 신경 쓰느라 아이의 표정, 말투, 행동 속에 숨어 있는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말할 수 있는 아이니 당연하게 친구가 불편하게 하면 불편하다고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것도 안되면 엄마한테 와서 도움을 요청하면 되지 않느냐고 왜 울고 떼쓰고 보채서 모두를 불편하게 하냐고 고작 네 살 아이를 몰아세웠던 내가 너무 부끄러워졌다. 아이 컨디션이 이미 낮아진 상태에 자극이 많은 환경에서 스스로의 감정 조절을 하기란 엄청 높은 난도의 과제였음을 나는 오늘 깨달았다. 나도 어려워하는 걸 왜 아이에게 당연하게 기대했던 걸까.
널 제일 잘 아는 엄마인데 오늘 너무 미안했어.
내가 더 많이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