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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찬스 Oct 23. 2024

[소설 9화] 엄마 없는 명절 아침


4일 뒤 설날 새벽, 찬희는 서후를 데리고 진우와 함께 시댁으로 향했다.

설날 전날 퇴근 후 시댁에 가서 음식 장만을 도우려고 했지만, 손윗 동서인 민정이 피곤한데 굳이 안 와도 된다고 찬희에게 말해 주었다. 대신 설날 아침에 일찍 와서 나물거리나 만들라고 했다.

설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하는 건 피곤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시어머니가 안 계신 시댁에서 제사와 명절을 책임지고 있는 형님이 고맙게 느껴졌다.

교대 근무 탓에 제사 때에는 쉬는 날을 잡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퇴근 후 시댁에 가면 이미 새벽 근무에 지쳐있을 아랫 동서를 위해 음식 준비를 다 해놓았던 민정이었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서 나물 만들 준비를 했다.

평소에도 주방에서는 거의 설거지 밖에 하지 않는 찬희에게는 나물 만드는 것조차도 하나의 큰 일이었다.

음식 만드는 것도 기술이라 자주 해버릇 해야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항상 친정 엄마의 도움이 있었다.

서후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친정 엄마에게서 반찬을 공수해 왔고, 서후가 태어난 지금은 서후를 봐주시기 위해 친정 엄마가 집에 거의 와 계셨다.

시어머니가 안 계시니 서후를 맡길 데라고는 친정 엄마 밖에 없었다.

큰돈도 되지 않는 육아 휴직 수당을 받을 바에야 온전한 월급을 받아서, 벌이가 없는 엄마에게 아이 봐주시는 용돈으로 드리는 거 더 낫겠다 싶었다.



음식 준비를 다 끝내고 제사상에 음식들을 하나씩 올렸다.

한 번도 직접 뵌 적이 없는 시어머니였기에 찬희는 제사상을 차릴 때마다 시어머니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고는 했다.


자신이 엄마를 닮았다는 진우의 말처럼, 눈웃음을 지으면 완전히 사라지는 눈을 가졌는지, 진우처럼 동그란 코를 가졌는지 사진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찬희의 친정 엄마처럼 선하지만 말수가 적은 분이셨을지, 아니면 진우처럼 살갑고 다정다감한 분이셨을지 성격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알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사진 속에 비치는 미소처럼 온화한 성품을 가진 분이셨다는 것을. 이른 나이에 가셨지만 그분이 남기고 간 가족들 간의 끈끈한 정들 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서후를 낳은 이후로는 같은 엄마의 입장에서 어린아이들을 놔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싶어서 마음이 아려올 때도 있었다.

​그렇게 멀리 떠나지 못하고 항상 함께 자리를 채우고 있을 것만 같은 시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끼며 찬희는 서툰 손으로 만든 나물들을 하나둘씩 제사상에 올렸다.



설날 제사를 끝낸 뒤 식사를 위해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시아버지는 명절이나 시어머니 기일이면 제수용 막걸리를 들이켜면서 언제나 두 아들들을 향해 얘기했다.


"너희 둘 키운다고 혼자서 고생 많이 했다."


그러면 두 아들들은 매번 똑같이 말했다.

"알죠."

찬희 또한 그런 시아버지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두 아들을 홀로 키우신 시아버지가 한 편으로는 불쌍하고 또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전혀 시어머니를 알지 못하는 자신조차도 한 번씩 시어머니가 그리울 때가 있는데 시아버지는 평생 보고 싶은 그 마음을 어떻게 달래고 살았을지도 궁금했다.


명절 때마다 매번 내뱉는 '고생 많이 했다'라는 말의 의미는, 아내 없이도 자식을 잘 키워낸 것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니라 시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의 표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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