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안정감이 뭐죠?여전히 돈은 없어요. 자산이라는 말은 흡사 거대 담론을 논할 때의 아우라가 풍겨 나와서 감히 입에 담기 민망하고, 살림살이라는 말 정도는 용기 내어 써볼 수 있겠어요. 그런데 뭐라고 부르든 멋쩍기는 마찬가지네요. 수줍게 고백하건대 그동안 나이만 먹었지 살림살이는 특별히 나아지지를 않았거든요. 네, 거기서 거기예요. 통장 잔고는 그대로고, 솔직히 는 거라고는 나이와 주름밖에 없어요. 아, 양심도 없이 몸무게를 빼놓을 뻔했네요. 제가 이렇게 염치가 없어요. 제 염치는 언제쯤 눈치라는 걸 익혀서 남 부끄럽지 않게 제 역할을 척척 해낼 수 있게 될까요? 이것도 자신이 없네요. 안타깝게도 나이와 살림살이, 나이와 인격적 성숙은 별개인가 봐요. 저는 게을러서 꿈조차 대충 꾸는 편인데요, 은연중에 40대 미중년의 삶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했었나 봅니다. 이런 제 모습이 초큼 부끄럽고, 종종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니가 집이 없어서 자신감이 없나봐.”라는 팩폭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때론 거짓보다 진실이 더 아픔을 주는 거 아시죠? 저도 제가 이럴 줄은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20년 넘게 남의집살이를 하고 있네요. 그동안 운이 좋아서 집 없는 설움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지만 사실 요즘은 적잖이 심란해요. 심란하기만 하고 뾰족한 수가 없어서 나날이 더 심란하고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나는 왜 집이 없나, 집이 없는데 왜 돈도 없나.
영민한 저는 이내 원인을 찾아 냅니다. 첫째, 내 월급은 너무나 작고 귀엽다. 둘째, 집은 지나치게 값비싸다. 자그마한 월급을 받는 평범한 노동자인 나에게 자가는 너무 거대 담론이 아닌가. 과연 나에게도 말로만 듣던 ‘등기 치는 날’이 오기는 올까. 그리고 셋째, 집 말고도 갖고 싶은 건 많다. 그것 먼저 가지면 안 될까. 어차피 집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니까. 가능한 것부터 좀 가지면 안 돼?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힌 채로 살 수는 없잖아. 아 몰랑, 이 정도는 괜찮겠지.
잠깐만요. ‘으이그, 그러니까 니가 돈도 없고 집도 없지.’ 하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시면 저 조금 서운합니다. 이게 또 의문인 게요, 저는 절대 돈을 허투루 쓰지 않거든요. 제가 얼마나 참고 참으며, 고민 고민 하며 돈을 쓰는데요.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몇 번을 다시 보고, 몇 달을 망설이다 사지 않는 물건이 얼마나 많게요. 그래서 또 생각해 봤죠. 왜 이럴까... 왜 이럴까... 나는 명품백 하나도 없는데, 왜 덩달아 돈도 없나.
영민한 저는 또 이유를 알아 냅니다. 이번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난 왜 이리 한결같이 가난한가.’라니, 앞의 것에 비하면 꽤 어려운 문제잖아요? 덕분에 제 자신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결국 답을 찾았습니다.
고민 고민하며 '결국 쓴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농담하는 거 아니예요. 말장난 아닙니다. 저는 정말 이 사실을 마흔 넘어 깨달았어요. 아 그래서 내가 돈이 없구나. 남들은 고민 고민하다 안 사는데 전 고민 고민하고 다 사니까 '막' 쓰는 게 아닌 건 맞아요. 그저 참 '정성스럽게' 많이도 쓰는 거였어요. 남들은 갖고 싶은 것 10개 중 고민 고민하다 하나를 사는데 저는 갖고 싶은 것 100개 중 고민고민 고민고민 고민고민하다 10개를 사요. 결국 남들이 괜찮다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봐서 괜찮은 것까지 다 사죠. 물론 고민 않고 쓰는 경우도 많지요. 하, 이런 건 말해 뭐해요. 얼마나 좋은 거면 고민 않고 사겠어요. 이런 건 괜찮아요. 정말 좋은 거거나 정말 좋아 보여서 샀으니 그건 잘한 일이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인력으로 안 되는 일이죠.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랄까요.
'어머 저건 꼭 사야해'에서 '저것'만 천만 개...
불혹은 개뿔!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에도 마음이 드릉드릉해요. 제 위시리스트는 나날이 여물어가고 매일 새롭고 다채롭게 갱신돼요. 그래서 저는 깨달았어요. 不惑의 의미는 '미혹되지 아니하다'가 아니라 '(이제 너는 누구도) 유혹할 수 없다' 정도의 의미라는 것을요. 제 꼴을 보니 그래요. 유혹은 무슨, 의혹이나 안 받음 다행이지.
당황스럽네요. 한 마디로 말하면 저라는 사람은 적게 벌어서 살뜰히도 털어 쓰는 인간이군요. 그러니 살림살이는 제자리걸음이고요. 하지만 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염치가 다소 부족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음, 아껴 봤자 남는 거 없던데요? 돈은 원래 늘 없잖아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는 더 없잖아요? 하지만 돈을 쓰면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이쁜이들은 남잖아요? 그러니 차라리 쓰는 게 남는 거 아닌가요?”
며칠 전의 일이에요. 우연히 취향을 저격하는 가방을 보고 저는 심각한 내적 갈등에 사로잡혔어요.
‘어머 저건 사야 해, 저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웃기고 있네, 가방이 없니, 또 왜 사. 맨날 그렇게 사재끼니 네 통장이 그 모양으로 헐벗은 거 아니야. 도대체 통장에 대한 예의는 언제 차릴 거냐고.’
어째서 취향은 나이를 먹지 않는가. 한 눈에 반한 귀요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신중한 소비를 지향하므로 쉬이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이렇게 번민을 거듭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흥, 돈만 아깝니? 내 고민과 에너지도 아까워. 그냥 사.’라는 결론을 내리고, 죄책감을 밀어내며 주문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저로서는 택배를 기다리며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죠. 그리고 택배가 도착했을 땐 후회했어요.
‘아니 이렇게 예쁜데 뭐하러 그런 어리석은 고민을 한 거야. 냉큼 샀어야지!’ 2만 원 남짓한 돈으로 이렇게 부듯한데, 뭐가 아까워. 역시 돈이야. 옳거니, 행복은 돈으로 사는 거지.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2만 원이 통장에 남아 있어 봤자 티도 안 나잖아요. 그런데 통장 밖에서는 존재감이 이토록 뿜뿜하잖아요. 역시 아끼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네요. 소비는 저를 춤추게 해요. 비움(재정적)과 채움(정신적)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널뛰기를 할 때 살아 있음을 느껴요. 일상은 필연적으로 좀 지루하잖아요. 잔잔한 일상에 작은 파랑을 일으키는 택배야말로 사랑이죠. 택배 기사님의 노크는 현관문만 여는 게 아니라 심드렁해진 마음의 빗장도 열게 합니다.
여러분의 행복을 응원하며, 이쯤에서 소비 요정인 제가 정말 놀라운 할인 팁 하나 알려드릴게요. 매일 매일 반값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에요. 이제 블랙프라이데이 따위 기다리지 마세요. 내가 결제하는 날이 곧 블프니까요. 무슨 말이냐고요? 네, 바로 보여드릴게요. 먼저 위의 귀여운 브라운 가방부터 반값에 사볼까요?
비법은 간단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쓰세요! 가방이 22,000원인데 하나 사서 딸과 같이 쓰면 저는 11,000원에 산 거죠!
다음은 모공 속까지 시원하게 청소해주는 초음파 클렌저를 사볼까요. 정가는 27만원이지만 인터넷에선 이미 반값 할인을 해서 14만원 정도에 판매 중이에요. 사야죠, 사는 순간 13만원 버는 거 아닙니까. 그러고 나서 남편과 함께 쓰면, 결국 저는 7만원에 산 거나 다름없어요. 이 방법으로 60만원짜리 고데기를 1/4 가격인 15만원에 샀어요. 4인 식구가 함께 쓰고 있거든요. 저 지금 진지해요.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1인 가구에서 구입하시려면 무조건 60만 원이에요. 안타깝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 가능한 할인을 마음껏 누리세요. 마음의 부담은 줄고 만족감은 커지는 기적의 계산법과 함께라면 망설일 필요 없어요. 여러분, 오늘의 행복을 내일에 양보하지 마세요.
흥, 불혹은 무슨. 여전히 팔랑거리고 드릉드릉 합니다. 설렘과 호기심으로 클릭을 하고, 요모조모 따져가며 장바구니에 넣고, 두근거리며 결제를 하고, 인내의 미덕을 배우며 기다리고. 만족스럽거나 만족스럽지 않거나 그만하면 적당하거나 다 좋아요. 클릭부터 언박싱까지, 그것 참 재미있네요! 기적의 계산법 덕분에 부담을 좀 덜고요. 인생은 짧고 대출은 기니까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집도 생기겠죠. 내일은 내일 걱정하고, 오늘은 오늘대로 좀 행복해도 되잖아요? 걱정은 사서 하는 거 아니잖아요? 살 게 얼마나 많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