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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르셔 꽤 Nov 29. 2020

엄마는 매일 보고싶어요

정말 그래요.

                                                                                                                                                              

어느 정도는 무뎌지고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두려웠던 것보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내가 뭔가를 오래 간직하지 못하고 금세 잊어버리는 사람이라는 것이 참 다행이다. 피로감을 잘 느껴서 머리가 닿기만 하면 잠드는 것도, 생각이 많지 않고 단순한 것도, 뭐든 금방금방 털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편인 것도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매일 운다. 매일 보고 싶고, 문득문득 생각나고, 불현듯 터져나와서 단 하루도 잊을 수가 없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다. 겪어 보니 그렇다. 말할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마르지 않는, 언제 어디서든 터져나오는 것. 여전히 엄마는 나와 함께 있다. 다만 이제는 내 마음과 기억과 추억 속에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차마 지우지 못한 엄마의 전화번호를 눌러도 이제는 내가 듣고싶은 그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과, 거친 손을 잡을 수 없고, 땀내 흙내가 섞인 그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이 다를 뿐. 엄마는 내 일상의 곳곳에 스며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게 된다.


아, 엄마란 이런 거구나. 이렇게 절대적인 거구나, 이렇게 근본적인 거구나. 지워질 수 없는 거구나. 흐려지지 않는 거구나. 엄마가 살아계실 때 혼잣말로 ‘엄매 엄매 우리 엄매’라고 읊조리던 그 가락의 의미를 이제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십 육십의 엄마도, 그리고 마흔의 나도 엄마의 빈 자리 앞에서는 아이가 되고 만다. 엄마는 영원히 내 마음에 있고, 나는 여전히 어린 아이로 그 아픔을 느낀다. 그리고 나 역시 엄마로 살면서 한없이 나의 엄마를 찾게 된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엄마라는 단어가 눈물 버튼이 되고 만다는 것을.




갑자기 쓰러지신 엄마는 병원에 계시는 동안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셨고,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셨다. 여러 검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음식을 전혀 드실 수가 없었는데, 그나마 대화가 가능했을 때 엄마는 몇 번 물을 달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드릴 수가 없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엄마가 생사를 오가는 동안 그 가을의 초입에서 나는 두려웠다. 앞으로 나는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 엄마가 돌아가신 금요일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시원한 물을 마실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무너질까.


엄마가 돌아가셨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게는 전과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당혹스러웠다. 이 슬픔이 온전히 혼자만의 몫이라는 게 버거웠다. 그런데 살아낸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가볍고 번잡한 것이어서 그럭저럭 지내게 되더라. 언젠가부터 가을도 금요일도 시원한 물도 별 생각 없이 느끼게 되더라.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누구나 겉으론 일상을 살지만, 안으론 이런 아픔을 겪고, 받아들이고 견뎌내면서 삶을 묵묵히 이어가는 것이겠지. 그리고 또 별개의 행복을 느끼겠지.


하지만 누군가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5년 전의 그 여름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말할 거야.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엄마를 구해줄거야. 전화를 걸어서 “오냐, 전화해 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를 들을거야. 엄마를 안고 고된 하루가 배어든 그 냄새를 맡을 거야.


그리고 얘기할 거야. 미안하다고.

웬만하면 엄마랑 싸우는 일이 없던 내가 그 여름에 괜한 고집을 피우며 엄마를 몰아세웠던 것이, 끝내 사과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미안하다고. 다 내가 잘못했다고. 엄마는 이해받고 싶었고 서운했던 건데 그 마음을 몰라주고 옳고 그름을 따진 내가 나빴다고. 내가 부족했다고.





가끔 엄마가 보내셨다고 해도 믿을 만한 택배가 온다. '언니'라는 말이 눈물 버튼이 되어버린 이모가 보낸 것이다. 비닐봉지에 넣고 파란 노끈으로 야무지게 묶은 반찬들과 배추, 상추, 다듬어 얼린 생선까지. 엄마의 택배와 내용물도 생김새도 흡사하다. 뭐라도 하나 더 넣으려고 상자를 덮기 전까지 두리번거렸을 이모의 시선과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택배 상자를 받으면 엄마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택배로 시작된 이모와의 통화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거쳐, 엄마가 하는 것과 똑같은 잔소리로 끝이 난다. 이 순간은 살아 있는 엄마를 만나는 시간이다. 이모가 계신 것이 참 감사하다. 엄마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함께 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이모,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호박죽이거든. 올 가을에 그 호박죽이 먹고 싶어서 늙은 호박을 사볼까 생각만 하다가 말았는데, 이모가 딱 보내줬어. 덕분에 오늘 만들어 먹을게요."

"내가 잘 보냈구만. 호박이 이뻐서 하나 넣었어야."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떼어내서 넣어야 엄마표에 가깝지만 힘들어서 그건 포기. 그래서 그런지 엄마 맛도 아니었음.





"우리 택이는 언제 엄마가 제일 보고 싶데?"

"매일요... 엄마는 매일 보고 싶어요..."


엄마를 잃기 전까지는 몰랐다. 정말 몰랐다. 매일매일 보고싶어서 울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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