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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르셔 꽤 Oct 04. 2021

 내 엄마의 등과 닮아서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은서야 엄마 다 왔어. 인사드리고 나와.”

“엄마, 재아 할머니께서 저녁을 차려주셨는데 먹고 가면 안 돼?”

“알았어. 그럼 20분 후에 다시 올게.”

딸 은서는 일주일에 한 번 단짝 친구 재아를 만난다. 학원에 다녀온 후 5시 반부터 7시까지 함께 노는데, 저녁까지 먹고 오면 재아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밥은 먹지 않고 오기로 약속을 했는데 소용이 없다. 오늘도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낸 할머니표 밥상을 맛있게 얻어먹고는, 집에 가는 길에 얼마나 맛있었는지 감탄을 하며 얘기할 테지. 왜 재아 할머니가 만든 음식은 다 맛있느냐고 묻겠지.    

 

20분 동안 뭘 하며 기다릴까 생각하다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으니 재아네에 드릴 작은 선물을 좀 사 와야겠다 싶었다. 시장 쪽으로 걸어 내려가며 ‘과일을 살까, 아니야 과일은 이미 종류별로 사두셨을지도 모르지. 그럼 한과는 어떨까, 한과는 재아가 싫어하려나.’ 드리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 없는 작은 선물이 뭘까 부지런히 생각하며 시장 입구에 닿았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건너편 빵집이 눈에 들어왔다. 롤케이크가 생각났다. 어릴 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늘 반가웠던 롤케이크. 상자 포장이니 선물로도 괜찮겠지?


롤케이크를 사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롤케이크를 사본 적도 받아본 적도 꽤 오래되었구나 생각했다. 어릴 땐 달콤하고 부드러운 그 맛이 참 좋았는데. 에이 롤케이크가 다 뭐야, 그땐 슈퍼에서 파는 보름달 빵도 맛있었어. 맞아 진짜 진짜 아팠던 날, 병원에 다녀오던 길에 엄마가 큰맘 먹고 보름달 빵이랑 딸기우유를 사줬었지. 아픈 걸 싹 다 잊게 할 만큼 좋았는데. 그러고 보니 그땐 다 맛있었어. 지금은 비싼 빵만 맛있는데 말이야. 그래 이제는 맛집 빵만 맛있어. 주제넘게 자본주의 입맛을 장착하다니. 쯧쯧 이러니 내가 돈이 없지. 돈만 없나 허리도 없지. 허리는 없는데 배는 있어. 있어야 할 건 없고 없어야 할 건 있어. 이게 뭐야, 내 몸매 어떡해. 그런데 이게 내 잘못이야? 탄수화물 잘못이지. 탄수화물은 아주 잠깐 나를 긍정적이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주고는 아주 오래오래 달리라고 말하잖아. 공정하지 못하게 말이야. 이렇게 편파적인 기브 앤 테이크가 어딨어. 그러니까 탄수화물이 잘못한 거야.      


한없이 싱거운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었다. 가을 초입의 선선한 저녁 공기도 좋았고, 연휴를 앞두고 평소보다 흥성한 골목도 재미있었다. 그때 마르고 굽은 등허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두리번거리며 분주히 움직이는 손과 볼품없는 손수레. 폐지 줍는 할머니였다.

나는 죄송스럽게도 폐지 줍는 노인을 볼 때면 늘 마음이 아득해지고 만다.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고단함과 막막함을 짐작해 보는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나’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이다. 쓰레기 더미를 살피며 쓸만한 것을 모으는 작업은 길을 걷다 우연히 시선이 가 닿는 것만으로도 미안함을 느끼게 한다. 남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경쟁적인 작업 환경도, 그날의 운에 따라 달라지는 불안정한 수확도, 도로 위의 무수한 위험도, 무엇보다 고생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입까지. 이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고장난 몸을 이끌고 길에 나서야만 하는 노년의 삶이 그저 짠하다. 고단한 생과 마르고 굽은 등허리가 내 엄마의 그것과 꼭 닮아서 더 애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폐지 줍는 이에게 유달리 마음이 쓰이게 된 것은 10년도 더 된 그 겨울의 일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그즈음 나는 왕복 60킬로미터의 출퇴근 거리를 힘겹게 버텨내던 초보운전자였다. 사이드브레이크를 약하게 걸어둔 채로 출근을 한 날도 있었고, 어두운 퇴근길에 옆 차선의 차가 자꾸만 빵빵거리기에 창문을 내렸더니 전조등을 켜지 않았다고 알려준 적도 있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차선을 변경하고 도로 위의 돌발 상황에 전전긍긍하던 때였다. 밤이 되자 내렸던 눈이 얼어붙어 도로가 미끄러웠다. 큰길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집 근처 4차선 도로에 접어들자 상황이 심각해졌다. 사고라도 날까 조심조심 움직였다. 4차선이라고는 하나 도로 양쪽에는 미처 다 치우지 못한 눈이 쌓여 있었고 상가를 이용하느라 주정차된 차까지 뒤섞여 좁은 일방통행 골목과 다름없었다. 신호에 멈춰 서서 주변 가게를 보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흥성흥성했다. ‘운전만 아니라면 눈이 그저 반가웠을 텐데, 내 운전 실력이 문제지 눈은 죄가 없어. 그래 크리스마스 즈음엔 눈이 와 줘야지.’ 환한 조명과 장식,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보며 잠시 흐뭇해지려는 찰나, 주정차된 차 사이에서 마치 그림자극처럼 움직이는 검은 실루엣 하나를 발견했다. 폐지 줍는 할머니였다. 세상에 이 추위에, 이 빙판에, 그리고 남들 다 즐기는 성탄 전후에. 나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저녁은 드셨을까. 오늘 같은 날은 뜨근한 식사를 하고, 좀 쉬시면 좋을 텐데. 차를 세우고 할머니께 가서 몇만 원쯤 드리며 간곡하게 집에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오른손으로 가방을 더듬어 지갑을 찾으며, 차를 세울 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초보운전자였던 나는 눈더미와 주차된 차의 어느 틈에 차를 대야 할지 몰랐다. 행렬을 벗어나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사이에 이미 너무 많이 밀려와 버렸다. 한참 지나쳐 와서야 빈 공간을 발견했지만 결국 차를 세우고 돌아가지는 못했다.     

 

그날 이후로 폐지 줍는 분을 보면 더 마음이 쓰였다. 빚을 진 듯한 느낌. 그래서 지난 1월에 은서의 미술학원 등원 도우미를 구할 때에도 폐지 줍는 분께 부탁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 걸음으로 15분 정도 되는 거리를 함께 걸어서 등원을 도와주시면, 내가 퇴근길에 데려오면 되니까. 걷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은 할머니라면 아이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며 등원을 도와주실 수 있을 것 같았다. 회당 만 원 정도면 할머니가 그날은 폐지를 줍지 않아도 될 텐데. 은서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좋다고 했다. 길을 익히기 위해 몇 번 나와 함께 걸어서 등원을 해보고는 아이가 혼자 하겠다고 해서 결국 부탁을 드리지는 못했다. 기특하고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아쉬웠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북적거리는 마트 옆에서 역시나 검은 실루엣으로 움직이고 계신 할머니. 내 엄마와 10년 전의 그 노인이 생각나서 발걸음이 느려졌다. 뭐를 좀 사드리고 싶은데 뭘 사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할머니를 지나쳤다. 저만치 갔다가 용기를 내어 되돌아 내려왔다. 할머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물건이 든 상자와 빈 상자를 구분하고 계셨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어, 누구?”

“그냥 지나가다 인사드려요. 할머니 고기 좋아하세요?”

“응 잘 먹지. 왜?”

“명절이니까요. 제가 좀 사드리고 싶어서요. 그래도 될까요?”

“아이고 어쩜.”

“할머니 여기 잠깐 계시면 제가 안에 가서 금방 사 올게요. 삼겹살 좋아하세요?”

“응 좋아하지. 아이고 근데 왜?”

“추석이어서요. 맛있는 거 드셨으면 해서요. 할머니 잠깐만 계세요. 금방 올게요.”

“아이고 고마워요.”     


할머니가 건강하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받아주셔서 다행이었다. 말을 걸기 전의 걱정과 두근거림이 금세 사라졌다. 마트로 걸어가는데 등 뒤에서 할머니의 혼잣말이 들렸다. “아니, 세상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그동안 할머니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없었구나. 하긴 나도 처음이니까. 고기를 좀 사고 과일도 사야겠다. 과일은 뭐가 좋을까, 이가 안 좋으실지 모르니 부드러운 걸로 골라야지 싶어서 말랑한 복숭아를 집어 들었다. 저렴한 것 말고 일부러 크고 비싼 걸로 골랐다. 평소 할머니가 사드시기 어려운 것으로. 정말 달콤해서 깜짝 놀라며 기분 좋게 드시도록. 과일을 고른 다음 서둘러 정육 코너에 갔다. 삼겹살을 한 팩 골라서 달라고 하니 사장님이 “그건 오겹살인데요?” 하신다. 아, 구분해서 불러야 하는구나. 오겹살을 받아 들고 계산대로 갔다. 줄이 길어서 걱정이 됐다. 서두르긴 했지만 5분도 더 지난 것 같은데 할머니가 안 가고 기다리고 계실까. 다행히 그 자리에 가니 여전히 일을 하고 계셨다. 가까이 가서 봉투를 건네드리니 환하게 웃으셨다. 어머 그러고 보니 마스크를 안 하셨네. 마스크가 없으신가. 마스크도 샀으면 좋았을 걸.


“아이고 무슨 과일까지 샀어. 나 모르는 사람인데.”

“그냥 지가다 몇 번 뵀어요. 명절이니까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아유, 고마워요. 아가씨도 건강하고.”

“네, 저도 감사해요 할머니.”

짧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작은 호의가 오늘 저녁 할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겹살과 복숭아가 고소하고 달큼한 위안이 되었으면.      


약속한 시간을 넘겨서 재아네에 도착했다. 추석 인사를 전하고 나와 은서와 손을 잡고 걸었다.

“오늘도 달걀찜 먹었어?”

“응, 진짜 맛있었어. 아무것도 안 넣고 달걀만 있거든. 그런데 너무 맛있어.”

“그러니까 말이야. 할머니가 한 음식들은 다 그래. 이상하게 맛있어.”

“맞아, 엄마가 해준 것도 맛있지만 재아 할머니 꺼는 진짜 너무 맛있어.”

“그래, 먹으면서 맛있다고 감사 인사 꼭 드려. 그럼 할머니가 정말 좋아하실 거야.”

"당연히 인사했지, 벌써 이야기했어."

"그래 잘했어."

  

“은서야, 엄마도 조금 전에 잘한 일 있어. 칭찬해줘.”

“뭔데? 무슨 일이야?”

“응, 방금 오다가 폐지 줍는 할머니를 봤거든. 추석이니까 맛있는 거 드시라고 고기랑 과일을 조금 사드렸어. 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오늘 드디어 성공했어. 엄마 잘했지?”   

  

은서가 손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멈춰 섰다. 나를 올려다보더니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 잘했어 엄마. 나라도 그랬을 거야. 정말 잘했어.”     

               


제목 달기는 왜 이리 어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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