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심 Apr 05. 2024

12. 스트레스를 받고 난 후의 이야기

이제 스트레스의 남은 이야기를 해 봅시다. 스트레스가 유발된 이후의 이야기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긴 하지만, 이렇게 가정해 봅시다. 스트레스 사건도 동일하고, 해석도 동일하고, 정서적 강도 또한 동일해서 고통 수준이 완벽하게 동일한 두 사람이 있다고 말입니다. 


너무 많은 가정을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찌 되었든 그렇게 해 봅시다. 이론적으로 두 사람에게 유발된 고통의 정도는 동일합니다. 적어도 유발된 그 순간에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즉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고통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말이지요. 





여기 또다른 두 사람 E와 F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대학 동기이자 회사 동기입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인턴 동기입니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예상한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인턴의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사건, 정직원 채용 실패입니다. 


두 사람은 모든 것을 불태워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최종 채용에서 탈락했습니다. 동일한 스트레스 사건을 경험한 셈이지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탈락에 대한 해석도 동일했고, 정서적 강도도 동일했다고 가정해 보죠. 동일한 고통이 유발되었을 겁니다. 적어도 채용 탈락 정보를 보는 순간의 고통은 두 사람이 동일했던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고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결론부터 말하면,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이후 고통 경험의 양상이 크게 달라집니다. 


E는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운동을 해서인지 잔병치레도 없이 건강하게 지내왔습니다. 잠도 잘 자는 편입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즐기는 편이라 식사를 거르지 않습니다. 지방의 국립대학을 나온 E는 동기들 중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여 인맥이 넓은 편이었고, 속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친한 친구들도 서너 명 있었지요. 신앙심이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말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또래 친구들과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F는 여로 모로 E와 대조를 이룹니다. 일단 운동을 싫어합니다. 누가 운동을 하냐고 물어보면 당당하게 숨쉬기 운동을 한다고 대답하며 냉소를 띱니다. 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은 왜 우리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도록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기도 하고, 어떤 영화에 나온 것처럼 간단하게 알약 하나만 먹으면 영양분이 모두 채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입니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은 커피입니다. 인생의 씁쓸함이 녹아 있는 것 같다는 기묘한 생각에 사로 잡혀 거의 물처럼 마시고 있지요. 


그에게 숙면은 외계어입니다. 핸드폰으로 소설을 읽거나 동영상을 보면서 밤을 지새우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옵니다. 그래도 결석을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강의실에 가서 자는 한이 있어도 말입니다.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라 자부하지만, 수업을 잘 못 들어서인지 성적은 늘 중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평소 사교적인 편이 아니라 친구는 거의 없습니다. 취미라고는 멍하니 핸드폰을 보면서 소설이나 웹툰, 동영상을 보는 것 외에는 없지요. 딱히 그것 이외에 더 하고 싶은 일도 없습니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두어 명 정도의 친구가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연락이 끊겼습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E와 F는 취업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머릿속으로 한 번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낙방 소식을 듣고 난 이후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를 말입니다. 두 사람의 반응은 다를 겁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고통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질까요? 그렇다면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요?





심리학자들은 이 차이를 연구하기 위해 스트레스 대처(coping)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습니다. 오래 된 개념이고 비판도 받고 있지만, 스트레스 과정을 정교하게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만큼은 유익합니다. 스트레스 대처는 간단히 말해 스트레스가 유발되었을 때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상적으로는 스트레스 유발 사건을 제거해서 균형상태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행동이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스트레스에 대응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스트레스원은 그대로 둔 채 긴장만 풀어주는 방법을 쓰기도 하지요. 맞습니다. 술을 마신다거나 담배를 피운다거나 혹은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식으로 말이지요. 이 방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의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드리는 겁니다. 


대응방식이 다양한 만큼 효율성이나 효과성도 다양합니다. 간단히 말해 어떤 사람은 아주 효과적으로 빠르게 스트레스를 줄이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실패할 수도 있지요. 어떤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대처의 측면에서 이렇게 다양한 행동이 나타날 수 있고, 그 결과 또한 크게 달라짐을 확인한 심리학자들은 스트레스 대처 자원(coping resource)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냅니다. 


아주 좋은 예는 아니지만 전투를 예로 들어 봅시다. 스트레스 사건을 적의 공격이라고 해 보지요. 적이 우리가 구축해 놓았던 방어기지의 일부를 공격했습니다. 공격은 성공했고 방어기지는 일부 파손되었지요. 스트레스 상태가 된 겁니다. 


균형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파손된 기지를 복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스트레스 대처입니다. 이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우리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렇습니다. 복구에 사용할 인력과 물자겠지요. 이것이 바로 자원입니다. 


자원이 풍부하면 빠르게 복구할 것이고, 자원이 부족하면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요. 급한 마음에 적절하지 않은 인력을 배치하거나 하자가 많은 재료를 사용하면 복구는 커녕 손상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이를 파악한 적은 같은 곳에 또 다시 공격을 퍼붓겠지요.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트레스 상태가 되면, 우리는 가진 자원을 이용해서 스트레스에 대처합니다. 자원은 매우 다양합니다. 자원을 고르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분류법을 하나 소개해 드리지요. 신체적 자원과 심리적 자원, 사회적 자원으로 구분해 보는 것입니다. 


신체적 자원은 우리의 몸과 관련된 자원입니다. 사실 심리적 자원도 우리의 몸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엄격히 분리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가 ‘몸의 건강’을 이야기할 때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그런 특성을 편의상 신체적 자원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전반적인 영양 상태나 피로도, 질병의 유무, 근육량 등이 포함됩니다. 당연하게도 전반적인 영양 상태가 좋고, 피로도가 낮으며, 질병이 없고, 근육이 튼튼한 분들의 스트레스 대처 능력이 더 좋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조건이 모두 동일하다면 말입니다. 


심리적 자원은 기본적으로 신경학적 특성과 밀접합니다. 우리가 뇌신경의 작용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면 심리적 자원이 아닌 신체적 자원이라고 구분했을지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그 단계에 접근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추상적이긴 하지만 심리적 자원이라는 용어를 아직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리적 자원은 크게 인지적 자원과 정서적 자원으로 구분합니다. 


인지적 자원은 기억력이나 판단력, 계산 능력, 논리적 사고력, 계획 능력 등의 다양한 인지기능을 의미합니다. 스트레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의 정체를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를 시뮬레이션하면서 최적의 전략을 선택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 바로 인지기능입니다. 인지적 자원이 우수할수록 스트레스에 능숙하게 대처할 가능성은 높아지지요. 


정서적 자원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름을 붙이고,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조절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얼핏 보면 스트레스 대처와는 무관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 반응, 특히 고통 반응은 다양한 부정적 감정을 수반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서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감정을 자각해서 이름을 붙이기만 해도 정서적 고통이 조금 줄어듭니다. 여기에 더해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면 그 고통은 더 줄어들지요. 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감정의 강도가 약할수록 표현의 효과는 훌륭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정서적 자원 또한 스트레스 대처 자원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자원입니다. 사회적 자원은 관계 자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스트레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지요. 친구일 수도 있고, 애인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선의를 가진 지역사회의 일원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 되었든 여러분의 스트레스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스트레스를 줄여줄 의지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사회적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자원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사회적 자원이 많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질적으로 미흡한 지원밖에 해 줄 수 없다면 아무리 아는 사람이 많아도 스트레스 대처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테니까요. 반면 수가 적어도 질적으로 우수한 지원을 해주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면, 그 사람의 사회적 자원은 양호하다고 볼 수 있지요.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각자 자신의 사회적 자원이 충분한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힘들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됩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지는지를 따져 보는 것이지요. 




앞서 우리는 스트레스 반응에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요인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면서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여 스트레스 반응을 결정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우리는 나름의 사정으로 서로 다른 스트레스 반응을 경험합니다. 


스트레스 대처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트레스 대처자원 또한 주어지는 것도 있고 열심히 만들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운 좋게도 훌륭한 자원을 타고납니다. 다른 사람은 운 나쁘게도 형편없는 자원을 가지고 이 험한 세상에 발을 딛게 되지요. 이렇게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우리는 생을 시작합니다. 당연히 대처자원의 질적 측면이나 양적 측면에서도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지요. 자원이 부족하면 스트레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고통이 길어지거나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원이 풍성하면 고통은 금새 가라앉겠지요.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가 타고 난 것에 대해 불만이 쌓이기 시작할 겁니다.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왜 나는 이 모양으로 태어난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타고난 자원 측면에서의 불공평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는 것이지요. 무작위라는 어이없는 자연법칙을 마음껏 원망해도 괜찮습니다. 마음껏 원망한 뒤에 이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어쨌거나 이것은 나의 한 번 뿐인 인생이고, 내 인생을 진심으로 아껴 줄 유일한 사람은 나 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 한가지 여러분이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자원의 절반이 태어날 때 주어지는 것은 맞지만,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가꿔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의 고통이 서로 다른 이유에 대해 몇 시간에 걸쳐 체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이 질적으로 다를 수 있으며,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과 그 결과 유발되는 감정의 강도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단계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가 유발된 이후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서도 고통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지요.  


제가 개인적으로 여러분께 바라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이 다름을 인정하고, 남다른 고통을 경험하는 것 자체로 타인을 비난하거나 자책하는 행동을 거두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것과 경험한 것은 바꿀 수 없습니다.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들, 가령 지능의 범위라던가, 정서적 반응의 강도라던가, 기본적인 신체적 기능 같은 것들은 우리가 바꿀 수 없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생물학적 부모를 바꿀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양육 환경도 그렇습니다. 집안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 교육 수준, 문화적 수준 등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질병도, 운 나쁘게 경험한 사고도 우리는 바꾸지 못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인정할 뿐입니다.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안타까워 할 것은 안타까워 하면 됩니다. 다만 그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요.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주어진 것들 안에서 최선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금이라도 운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균형 잡힌 식사를 제 때 할 수 있지요. 하다 못해 호흡이라도 제대로 해 볼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동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들숨과 날숨만 틈틈이 잘 챙겨도 우리의 건강은 나아질 수 있습니다. 밤에는 인터넷을 헤매는 일을 멈추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수 있습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건강한 수면 습관을 만들어 볼 수도 있지요. 


심리적 자원도 바꿔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정서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정말 많은 심리학자들이 자신의 일생을 바쳤습니다. 당연하게도 심리적 자원을 구축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지요. 그 결과 정말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었고, 과학적 연구를 통해 그 효과가 검증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잘 개발된 방법들을 배워서 적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쉽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몸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들고, 심리적 자원을 구축함에 따라,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을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됩니다. 자연스러운 선순환의 시작인 것이지요.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겨야 도울 기회도 발견합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우면, 그 사람은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겠죠. 그 고마운 마음은 여러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고, 강화되는 것이지요.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좀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의지도 조금 생기셨겠지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다음 글을 읽으시면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현명하게 고통을 다룰 수 있을지를 체계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차분히 따라오다 보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고통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고, 좀 더 현명하게 고통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이전 11화 11. 억울하게도, 옆사람은 나보다 고통을 덜 느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