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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Apr 08. 2024

13. 나는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우리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고통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고통은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여러분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사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잘 모르는 분들도 만나게 됩니다. 상당히 심각한 수준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경우이지요. 물론 거짓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본인이 어느 정도로 고통을 받고 있는지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어떤 분에게는 의아하게 들릴 것이고, 또 다른 분에게는 그럴 수 있겠다고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고통을 이해하는 양상은 다양한 것이죠. 


다행히도 우리의 고통 수준, 혹은 스트레스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장 객관적인 지표는 신체생리적 지표입니다. 스트레스는 항상 신체반응을 수반합니다. 스트레스원에 대해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몸이 변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으로 매우 유용하지만, 장기화될 경우 다양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스트레스가 누적된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표현은 꽤나 적확한 표현입니다. 실제로 스트레스는 우리의 몸에 변화를 일으키는데, 그 변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속될 수 있고, 추가적인 스트레스가 유발될 경우 변화가 더 오래, 더 강하게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정교하게 측정해서 스트레스 수준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사실 스트레스 상태에서 일어나는 신체변화는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지표도 다양합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유발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이나 다른 호르몬의 양을 측정하기도 하고, 심장박동 패턴이나 호흡 패턴 등을 이용해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ous system) 양상을 직접 평가하기도 합니다. 혹은 과도한 스트레스 반응으로 인해 유발되는 염증 수준을 측정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지표들을 이용하면 비교적 정확하게 여러분의 스트레스 수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방법들은 비용이 듭니다. 병원을 찾아가는 번거로움도 감내해야 하고요. 고통이나 스트레스 반응의 중요한 측면인 ‘주관적 불쾌감’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주관적인 평가 방법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스스로 판단해 보는 것이지요.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몸과 마음의 피로도를 평소 상태와 비교해 볼 수도 있고요, 간단하게 0점(전혀 스트레스가 없음)과 10점(나는 지금 지옥에 있는 것인가) 사이에서 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10점으로 두고, 아무런 고통 없이 안락했던 순간을 0점으로 정한 뒤, 지금의 상태를 파악해 보는 겁니다. 이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유용합니다. 


좀 더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고 싶은 분은 정교하게 개발된 측정도구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 교수인 쉘던 코헨(Sheldon Cohen) 연구팀은 일반인의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지각된 스트레스 척도(perceived stress scale)라는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쉘던 코헨 교수



코헨 교수의 측정도구를 이용해서 여러분의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해 보기로 하지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다음에 제시되는 질문에 담긴 생각이나 감정을 얼마나 자주 경험했는지 답하면 됩니다. 0점은 전혀 없었다, 1점은 거의 없었다, 2점은 가끔 있었다, 3점은 꽤 자주 있었다, 4점은 매우 자주 있었다, 를 의미합니다.  



1.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기분 나빠진 적이 얼마나 있었나요?

2. 중요한 일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낀 적은 얼마나 있었나요?

3. 초조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느낀 적은 얼마나 있었나요?

4.* 짜증 나고 성가신 일들을 성공적으로 처리한 적이 얼마나 있었나요?

5.* 생활 속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들을 효과적으로 대처한 적이 얼마나 있었나요?

6.* 개인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느낀 적은 얼마나 있었나요?

7.* 자신의 뜻대로 일이 진행된다고 느낀 적은 얼마나 있었나요?

8.* 매사를 잘 컨트롤하고 있다고 느낀 적이 얼마나 있었나요?

9.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에서 발생한 일 때문에 화가 난 적이 얼마나 있었나요?

10. 어려운 일이 너무 많이 쌓여서 극복할 수 없다고 느낀 적이 얼마나 있었나요?



모두 응답하셨나요? 그럼 이제 점수를 계산해 봅시다. 계산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A = 1, 2, 3, 9, 10번 문항 점수 합산

 B = 4, 5, 6, 7, 8번 문항 합산

 총점 = A + (20 – B)


자 이제 총점을 얻으셨을 겁니다. 점수를 얻기는 했는데 그 점수가 높은 것인지 낮은 것인지 알 수 없지요? 여러분이 얻은 점수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코헨 연구팀은 다양한 연구결과에 기반해서 다음과 같은 해석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0~13점: 안정적

14~16점: 약간의 스트레스

17~18점: 중간 정도의 스트레스

19점 이상: 심한 스트레스


여러분의 점수가 어디에 포함되는지 확인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리송하지요? ‘중간 정도의 스트레스’는 뭐고 ‘약간의 스트레스’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 겁니다. 


이렇게 다시 정리해 보죠. 일반적으로 0점부터 16점 사이의 스트레스 점수는 별다른 대응이 필요하지 않은 정상 범위의 스트레스 수준으로 해석합니다. 여러분의 스트레스가 이 구간에 포함되어 있다면, 현재 여러분의 스트레스 수준은 크게 염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이죠. 


반면 19점 이상은 임상군으로 분류됩니다. 임상군(clinical group)이라는 용어가 생소할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간단히 말해 심리치료 센터나 병원 등의 전문적 치료기관에 가능한 한 빨리 방문해야 하는 분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간단한 도구로 측정한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위험한 상태일 가능성이 있으니 체계적인 평가를 받아보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17점과 18점 사이는 준임상군(subclinical group)으로 분류됩니다. 정상 범위는 살짝 벗어났지만 전문가의 평가와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수준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 범위에 속한 분들은 그래도 꽤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이므로 스스로 해결방안을 모색하거나 미리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 어떠신가요? 어떤 분은 자신의 스트레스 수준이 정상범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라셨을 겁니다. 어쩌면 안도감을 느꼈을 수도 있지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자신의 문제나 고통이 ‘정상 범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합니다. 나만 힘든 것은 아니구나, 다들 이 정도의 스트레스는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그 자체로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어떤 분은 자신의 스트레스 수준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결과를 확인하고 당황했을 겁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예상치와 결과 값이 달랐다면 두 가지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측정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입니다. 모든 도구는 측정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실제와 다르게 문항에 응답했을 수 있고, 응답 과정에서 실수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채점 과정에서 실수했을 수도 있고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신중하게 각 문항에 다시 응답해 보고, 채점도 다시 해 보기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여러분이 자신의 고통을 평가하는 기준이 엄격했을 가능성입니다. 이 정도 고통은 모두 겪는 것 아닌가, 하고 자신의 고통을 평가절하한 것이죠. 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해 보는 방법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다릅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타인에게는 좀 더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자신과 유사한 경험을 하는 다른 사람의 고통 수준이 꽤나 심각하다고 판단한다면, 여러분은 이중잣대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고통 수준이 어느 정도 파악되었을 겁니다. 이후의 내용은 적어도 중간 정도의 스트레스(17점) 이상인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16점 이하의 점수를 받은 분은 스트레스에 대한 걱정이나 염려를 접어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던 일을 하시면 됩니다. 17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장 우리에게 큰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고통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상태에 이른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관건은 그 원인을 찾아서 적절히 다뤄주는 것입니다. 


좀 더 급진적으로 말하면, 스트레스 수준이 꼭 정상 범위에만 머물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늘 굴곡이 있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인생이 정말 잘 풀립니다. 시간이 부족해 조상님의 도움을 구하며 찍었던 다섯 문제가 모두 정답 처리되어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을 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던 이상형 친구가 먼저 다가와 “너 합격했다며?” 하고 말을 걸어 주는 것이지요. 너는 언제 인간이 될래,라고 말씀은 안 하셨지만 눈빛으로 알려 주시던 아버지가 엄마 몰래 챙겨 두었던 비상금을 털어 용돈을 주시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자며 술잔을 권하시기도 합니다. 늘 나를 피해 다니며 조롱하던 우리 집 냥냥이가 먼저 다가와서 재롱을 피우고, 엄마의 심부름 때문에 집을 나서면 비가 오다가도 그치는 것이지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인생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나오는 순간입니다. 스트레스가 무엇인가요, 먹는 건가요, 하고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시절이지요. 


그런가 하면 제대로 풀리는 것이 전혀 없는 시기도 있습니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정말 원하던 회사의 면접 시험장에 갔는데 수험표를 두고 온 겁니다. 자취방은 2시간 거리고요. 사정을 말해서 겨우 면접장에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홀로 수험표를 달고 있지 않은 지원자를 면접관들이 좋게 볼 리 없습니다. 누구누구 씨는 우리 회사에 왜 지원했나요?,라는 질문이 끝이었고, 그렇게 멀뚱히 다른 지원자들의 현란한 대답을 듣다가 면접장을 나옵니다. 


메시지가 와 있습니다. ‘아들 면접 잘 봤어? 엄마는 너만 믿어.’ 어머니, 불초소생은 어머니만큼도 저를 믿지 못하겠습니다. 수험표를 두고 오다니. 터덜터덜 회사 밖으로 나오는데 여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어디야, 나 할 말 있어.” 너의 남친은 지금 중요한 면접을 보러 왔는데 수험표를 두고 와서… 하려다가 그만둡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해봐야 소용이 없지요. 대충 약속 장소를 정하고 갑니다. 


여자친구는 양복을 입고 있는 나를 보고도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할 말이 있고, 할 말만 하면 그뿐인 것이지요.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겁니다. 사실 이미 할 말도 들은 것과 진배없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돈과 시간과 공간과 자원을 낭비해 가며 여기에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네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우리 헤어져” 하고 여친이 떠납니다. 아, 그렇습니다. 그녀는 갔습니다. 커피 값도 내지 않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승용차를 타고 그녀는 갔습니다. 커피가 씁니다. 평소라면, 음 바디감이 좋군, 했을 텐데 오늘은 왠지 너무 씁니다. 빨리 나가고 싶은 데 갈 곳이 없습니다. 그렇게 멍하게 있자니 놀라운 인내심으로 나를 지켜보던 카페 사장님이 “죄송합니다. 지금 홀에 자리가 없네요.” 하고 누군가에게 또박또박 말씀하십니다. 나가야 합니다. 산책이나 해야지, 하며 문을 나서니 맑았던 하늘에서 빗방울을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아, 내 인생은 뭐 이 모양이야. 


너무나도 평범한 에피소드라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이런 시기를 맞습니다. 이때 우리의 스트레스 수준은 상당히 높겠지요. 그렇다고 우리의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우연이 겹치다 보니 그렇게 된 부분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는 맙시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나친 스트레스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해로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능하다면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것은 의미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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