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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Aug 23. 2017

2. 여행짐 싸기

부자여행 - 전주편 #02

이번 여행을 위해 특별히 새로 산 것은 진우 여행가방이 전부였다. 


요즘이야 여행하면 트렁크를 떠올리는 게 상식처럼 되어버렸지만 우리 여행은 기간도 짧고 국내 여행이기 때문에 그 정도까지는 필요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진우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진우가 매기에 적당한 작은 가방을 구입했다. 비싸지 않고 쓸만한 여행용 가방을 고르랬더니 아내는 제 취향대로 톡톡 튀는 귀여운 가방을 골랐다. 1박 2일의 여행에서 필요한 짐이야 많지 않아서 내가 아이 짐까지 한 가방에 넣어 매고 다니면 좋겠지만 각자의 짐은 각자가 짊어지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걸 진우가 더 좋아했다. 새 가방이 생겨서 좋고 자기만의 물건을 챙길 수 있어서 신이 났다. 


여행짐이야 그냥 하룻밤 지낼 간단한 내의 하나와 다음날 아침에 필요한 세면도구와 수건 하나면 끝이다. 나는 1박 2일 정도의 짧은 출장길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을 때도 있다. 요즘에는 비지니스호텔이나 모텔에 왠만한 세면도구가 비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비지니스호텔에서 묵지 않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을 예정이라 약간의 짐이 더 생겼을 뿐이다.


나는 진우에게 여행에서 필요한 물품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여행을 떠나면 집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도 못쓰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야 하고 또 모든 물건을 가져 갈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하루하루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면서도 그 귀중함을 몰랐던 물건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예컨대 물은 늘 옆에 있지만 막상 여행자들이 잘 챙기지 못하는 물품이기도 하다. 편의점이 주위에 즐비하다고 하지만 그건 대도시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아주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면 편의점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인 경우도 있다. 만반의 준비를 하되 꼭 필요한 것만 챙기기로 했다.


진우에게 여행의 과정도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물도 필요하고, 수건도 필요하고, 칫솔과 치약은 기본이며, 여벌 옷도 챙겨야하지 않을까 이야기해 주었다. 진우는 내 말에 연신 동의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사람처럼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자기에겐 일상적으로 필요한 물건이면서 주변에 없으면 안되는 가장 중요한 물건을 챙겨야겠다고 했다. 대충 짐작이 갔다. 하지만 정말 궁금한듯한 표정으로 무엇인지 물었다. 진우는 역시나 매일같이 갖고 노는 장난감을 꼽았다. 그것도 한두개 아니었다. 장난감만으로 가방이 닫힐지 가늠도 못할 정도였다. 나는 앞서 이야기한,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행물품에 대해 고쳐 말하지 않으면 되었다. 있으면 좋은 물건이 아니라, 여행에 꼭 필요한 물건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고보니 정말 필요한 건 물과 수건 정도였다. 그동안 쓸데없이 ‘필요’라는 이름으로 많은 물건들을 집에 쟁여두고 혹은 몸에 지니고 다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놓고 한두 번도 제대로 쓰지못한 물건들이 떠올랐다. 쓸데없이 갖고 싶다는 욕심때문에 산 물건들이 많았다. 


한참을 고민한 진우는 진짜 자신한테 필요하다고 생각한 물건들을 가방 앞에 나란히 펼쳐놓았다. 진우에게 이 물건 하나하나가 앞으로의 우리 여행에서 언제 필요할지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나또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차근차근 진우가 가져온 물건을 살펴봤다. 그런데 정말 어느 것 하나도 필요한 순간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두 장난감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도중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 혹은 아침에 일어나서 할일이 없을지 모르니 장난감 하나 정도는 가져가자고 했다. 진우는 고심 끝에 큐브 하나만을 가방에 넣었다. 왜 큐브를 골랐냐고 물었더니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의 큐브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이동 중에 심심할지도 모르니 읽을 책도 좀 챙기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당연하게도 만화책만 잔뜩 가져왔다. 이 중에 딱 한 권만 챙기라고 했고 글밥 많은 그림책도 한 권 챙기라고 했다. 진우는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그렇게 내일 가져갈 물건은 모두 마련되었다. 가져갈 물건을 가방 앞에 늘어놓고 잠을 청했다. 나는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마다 짐을 싸면서 가방에 곧바로 넣지 않는다. 필요한 물건들을 가방 앞에 보기 좋게 늘어놓고 필요한 물건을 계속 점검한다. 그런 다음 여행 전날 밤이나 오전에 물건들을 가방에 담는다.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물건은 빼기 좋고 필요한 물품은 챙겼는지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어 가방이 무거워지거나 필요한 물건을 빼놓고 출발하는 경우가 줄어든다.


이렇게 우리의 첫 번째 여행가방이 꾸려졌다.


진우 가방 : 물, 수건, 칫솔, 책 두 권, 큐브, 물휴지, 내복 한벌

아빠 가방 : 물, 수건, 칫솔, 책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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