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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Aug 23. 2017

아내가 싸 준 김밥도시락

부자여행 : 전주편 #03

내 인기척에 아내가 눈을 떴다. 


아내는 나를 보는 듯 마는 듯 부시시 일어났다. 그러곤 기계적으로 부엌으로 가 졸린 눈으로 가스렌지에 불을 붙였다. 나도 어제 늘어뒀던 짐들을 다시 확인하고 가방에 넣었다. 아내는 냉장고 문과 밥솥 뚜껑을 몇 차례 번갈아 여닫더니 이내 고소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며칠 전 아내에게 김밥을 부탁해 두었었다. 전주가는 기차시간이 점심 시간에 걸쳐 있어서 따로 먹기가 애매해서였다. 그 옛날, 나나 내 또래의 어린이들에게 기차로 이동하는 여행 중에 먹는 김밥과 삶은 계란 그리고 사이다는 최고의 식사 겸 간식이었다. 이것도 진우에겐 특별한 재미가 될 것 같아 아내에게 김밥을 부탁한 것이다. 아내도 군소리없이 그러마고 했고 다소 이른 시간에 일어나 번거로운 김밥 싸는 일을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 김밥은 짜장면과 더불어 일 년에 두어 번 먹을까 말까한 특식이었다. 그 두어 번의 기회는 대체로 소풍날이었다. 봄과 가을, 두 번의 소풍에서 대부분 아이들의 도시락이 김밥이었을 정도로 김밥은 특별한 음식이었다. 90년대 중반 우리나라 농업계를 뒤흔든 우루과이라운드체결로 쌀시장이 부분적으로 개방되면서 등장한 것 중 하나가 저렴한 수입산 쌀로 만드는 김밥집이다. 그 결과 김밥은 어쩌다 한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서양의 인스턴트식품의 속도를 능가하는 초스피드 한국식 패스트푸드로 바뀐지 오래다. 게다가 요즘엔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의 열풍아닌 열풍으로 김밥의 모습은 바뀌어 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 여행의 첫 식사인 김밥은 동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김밥집 김밥이 아니라 아내가 정성스럽게 싸준 우리집표 김밥으로 정했다. 


사실 아이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먹는 첫 번째 식사로 무엇이 좋을지 고민했었다. 1박 2일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날짜와 장소뿐만 아니라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이 '먹을거리'였다. 1박 2일, 우리에게 주어진 대략 서른 시간의 여행길에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식사'는 모두 네 번. 출발하는 날의 점심과 저녁 그리고 이튿날 아침과 점심이다.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도 물론 중요한 여행의 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여기다가 여행지에서 먹는 네 번의 식사는 네 번의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매 끼니가 모두 소중한 여행의 한 부분인 것이다. 살면서 밥 한끼 먹는데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또 있을까. 아이와 처음 떠나는 여행이 내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첫 경험이다. 그래서 한 끼의 밥이라도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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