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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Aug 24. 2017

호기심이 많은 아이

부자여행 : 전주편 #04

엄마가 김밥을 돌돌돌 서너 줄 말고 있을 무렵 진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여느 날 아침처럼 내가 앉아있는 자리로 콩콩콩 걸어 와서는 내 무릎에 앉는다. 매일 아침 진우가 일어나는 모습은 거의 똑같다. 이불에서 눈을 뜨면 우선 옆에서 자고 있던 아빠를 찾는다. 그러곤 내가 옆에 없으면 일어나서 내가 늘 앉아있는 거실 책상으로 온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잘 잤어요?”라는 아침인사로 진우를 안아준다. 진우는 내가 있음을 확인하고선 거리낌없이 내 무릎에 앉는다. 


오늘은 특별히 진우를 무릎에 앉히고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디로 갈건지, 가서는 무엇을 할건지 다시 진우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것으로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우리에게 굉장히 특별한 시간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진우는 어제 자기 전에 내가 해 준 얘기를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재밌게 들어주었고 좋다고 대답해 주었다. 진우는 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진우가 언제부터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내 기억엔 진우가 밥을 잘 먹지 않을 때였으니까 꽤 오래전부터였을 것 같다. 진우는 모유는 잘 먹는 편이었는데 이유식을 시작하면서부터 먹는 일엔 별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진우는 매번 같은 밥을 먹는 사실은 그닥 좋아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반찬이나 새로운 먹거리가 있으면 아주 조금 그리고 아주 잠깐의 관심을 가졌다. 새로운 거라는 둥, 맛있는 거라는 둥, 새로운 맛이라는 둥 말도 잘 못하는 아이에게 새로운 표현으로 먹어 볼 것을 제안하면 그나마 스스럼 없이 앙다문 입을 벌리곤 했다. 먹는 행위를 싫어하는 진우에게 싫은 걸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새로움' 내지 '모험'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도 진우와 동생 연우에게 집 근처 새로운 곳으로 ‘모험’을 떠나자고 하면 언제든지 대환영이다. 


그러는 사이 두 살 터울인 둘째 녀석도 부산스런 집안 분위기를 느낀 건지 평소보다 빨리 일어났다. 진우가 세 살 되던 해 태어난 둘째도 아들이다. 첫째가 딸이고 둘째가 아들이면 금메달,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가 딸이면 은메달, 두 아이 모두 딸이면 동메달이지만 둘 다 아들이면 목매달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로 아들이 둘인 집은 부모가 육아를 하는데 참 힘든 조합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직까진 큰 걱정없이 평온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언제 이 녀석들의 야성이 폭발할지 몰라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어쨌든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최대한 누리려고 한다. 


한 부모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같은 자식이 어디있겠냐만은 큰 애와 작은 애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든 것들이 달라도 딱 두 가지만은 공통점이 있었다. 잠을 설치면서 밤새 울며불며 엄마아빠를 힘들게 하는 것과 엄마아빠가 정성스레 차려주는 먹거리에 무관심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진우의 경우에는 호기심으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다행이었다.


둘째 연우가 일어나 우린 매일 그렇듯 아침 식사 자리에 모였다. 아빠와 진우가 여행을 떠난다는 특별한 이유 외에도 오늘 아침식사는 특별했다. 엄마가 정성스레 말아둔 김밥이 아침 메뉴였기 때문이다. 김밥 중에서도 최고의 비주얼과 맛을 자랑하는 꽁다리가 주를 이룬 아침 식사였다. 어느 때보다 오랜 시간 식사를 준비한 엄마도, 먹성 좋은 아빠도, 김밥 좋아하는 진우도, 밥 잘 안 먹는 연우에게도 오늘 아침은 특별했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둘로 나뉘어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 날이나 되어야 만나는 특별한 헤어짐이 있는 날,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식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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