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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Aug 22. 2017

첫 날 새벽

부자여행 : 전주편 #01

어슴푸레한 빛이 거실창 전면에 깔릴 새벽 무렵 눈을 떴다. 


아들과 떠나는 첫 여행의 설렘 때문인지 몇 번을 뒤척이다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어느 봄날의 소풍 전날 같은 밤이었다. 그러니까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30년만에 갖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이 기분은 아내와 연애할 때도 느껴보지 못했다. 아니 연애할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설렘이었다. 


이 세상에서 나만 최고로 알고, 내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고개를 크게 끄덕여 주는, 나를 무한히 믿어 주는 존재. 아직까지 진우에게 나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힘이 쎄서 자기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리고 아무리 무서운 사람들도 아빠가 손만 까딱하면 해치우는 건 기본인데다가 못하는 운동도 없어서 축구공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휙휙 몰아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골대에 쏙 집어 넣을 수 있는, 진우에게 아빠는 그런 존재다. 그런 아빠가, 그런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니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아침해가 떠오르며 붉은 속살을 부끄럽듯 서서히 드러낼 때 나도 왠지 모를 흥분에 심장마저 더 힘껏 고동치는 것만 같았다. 12월 말, 한겨울인데도 체온은 살짝 더 올라간 듯한 기분이었다. 설렘과 흥분으로 기분은 무척 좋으면서도 혼자서 아이를 잘 데리고 다닐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어스름한 새벽에 홀로 눈을 뜨고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어제 준비해 둔 짐들을 조심스레 다시 살폈다. 어제 잠자기 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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