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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Aug 28. 2017

기차가 출발하자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부자여행 - 전주편 #06

서둘러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여행가방을 둘러 메고 집을 나섰다. 


경의중앙선이 용산과 연결되면서 우리 여행도 한결 편해진 느낌이다. 생전 처음으로 용산에 가는 진우보다 여행을 위해 용산을 향하는 게 나에게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용산역에서는 처음 기차를 타는 터라 어디로 가야 전주행 열차를 탈 수 있는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내 손이 진우 손을 꼭 잡고 있다는 느낌이 나자 난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이제부터는 아내없이 혼자서 한 아이를 온전히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아이와 함께 있는 충만함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가 두려움과 동시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라는 동전의 양면인 것과 같이 말이다.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에 대한 걱정이 기대와 설렘과 뒤엉켜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러는 사이 진우는 용산역 대합실 분위기에 금방 적응했는지 자기가 원하는 삶은 계란을 얻기 위해 우선 편의점으로 내 손을 이끌었다. 좁은 편의점에서 구운 계란과 음료수 하나를 구입하고 15분 전부터 가능하다는 승차준비를 위해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출발 15분 전. 11시 15분에 출발하는 여수엑스포행 무궁화호 열차가 타는 곳 7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출발안내 전광판이 일러주는 대로 우리는 7번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우리가 탈 차량 번호는 7번이었다. 7번 승강장에서 7번 객차라. 출발부터 행운의 숫자를 만나니 반가웠다. 나는 객차에 올라탄 진우에게 우리 좌석을 찾아보라고 했다. 숫자와 영문으로 조합된 좌석번호를 집중해서 살핀 진우는 이까짓 것!이라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나를 앞서갔다. 그러더니 정확하게 우리 좌석을 찾아냈다. 숫자와 영어를 아는 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지만 혼자가 아니라 아빠와 함께 있기 때문인지 진우도 뿌듯한 듯했다. 


출발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서 우리는 아무도 없는 객차에서 잠시 동안의 자유를 느꼈다. 어서 기차가 출발하기를 바랐다. 우리가 탄 기차는 좌석을 절반도 메우지 않고 7번 홈을 미끄러지듯이 출발했다. 기차는 용산역을 벗어나는가 싶더니 금새 한강 위를 달리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내려다보는 한강과 한강 저편에 우뚝 서 있는 63빌딩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저 곳! 63빌딩. 진우와 연우가 어릴 때 함께 갔던 곳이다. 63빌딩 수족관에 가본 거 기억나냐는 아빠의 질문에 기억난다고 대답하는 진우. 우리는 예전 저곳에 갔었던 일을 떠올리며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과 공간을 추억하면서 지금 또다시 우리만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떠나고 있었다. 그래. 이번 여행은 진우와 아빠만의 추억여행이다. 아빠와 아들만 떠나는 여행. 우리 둘만이라는 어색함과 두려움이 조금은 낯설지만 어차피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처음은 새롭게 도전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일이니 도전이라는 그 단어 자체가 참 가슴 설레게 한다.


기차가 한강을 건넌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진우는 벌써부터 삶은 계란을 먹을 궁리에 빠졌다. 기차여행의 백미는 무엇보다 삶은 계란과 사이다가 아닌가. 아직 탄산음료를 먹지 않는 진우는 바나나우유와 삶은 계란이 기차여행의 백미로 각인될 것이다. 어서 삶은 계란을 먹고 싶어서 진우가 아빠 눈치만 살핀다. 배고파. 아침을 먹은지 시간 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치만 파주에서 출발해 고양시를 넘어 서울로 들어와 서울 한가운데인 용산을 거쳐 다시 서울을 벗어나려고 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많은 거리를 이동하느라 약간의 허기가 느껴질만한 시간이긴 했다. 세 개 들이 삶은 계란의 껍질을 벗겨 두 개를 진우에게 주고 한 개는 내 차지다. 계란을 받아든 진우는 허겁지겁 계란을 흡입하듯 먹고 여유있게 바나나우유를 마시면서 여행이 주는 만족감보다 더 큰 포만감을 느끼며 기차좌석에 몸을 기댔다. 먹고 싶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진우를 보면서 ‘저게 초등학교 1학년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어 풋하고 헛웃음이 났다. 


다섯 살때 이후로 절대 낮잠이라는 걸 자 본 적 없는 녀석이 진우다. 아무리 기차가 덜컹거리며 태아일 때 들었을 법한 편안한 느낌의 진동과 백색소음이 있더라도, 그리고 그깟 삶은 계란 두 개가 주는 일말의 포만감으로 진우가 낮잠을 잘 리가 없다. 녀석은 가방에 넣어두었던 책을 읽는가 싶더니 이내 점심은 언제 먹을거냐며 맑디맑은 눈동자를 크게 떠올리며 내게 묻는다. 형식은 질문이지만 실상은 점심을 어서 먹자는 압박이었다. 그것도 지금. 당장. 계란을 먹은 후 잠깐의 소화를 위해 책을 읽은 진우는 요즘 즐겨읽는 학습만화의 중간 언저리 페이지의 오른쪽 윗부분 한귀퉁이를 꺽하고 접었다. 이제 책은 그만이라는 의미일 터. 난 진우의 강한 의지를 새삼 확인한 듯 김밥 먹을 준비를 했다. 아내가 정성껏 싸준 김밥은 아침에도 먹었는데도 꽤나 맛깔스럽게 보였다.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밥알이며 고소한 기름에 번들번들 윤이나는 각종 채소들이 마른침을 삼키게 했다. 


아들과 둘이 떠나는 여행을 실행해 옮겨 어린 둘째만 놔두고 떠나는 것도 미안한데 이렇게 김밥까지 싸게 해서 더 미안한 마음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그래서 더 즐겁게 여행을 다녀오리라 다짐했다. 진우에 대해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더 알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내는 공감했고 그 덕분에 이번 여행이 시작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진우는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는 내내 맛있다 맛있다라는 말만 했다. 넉넉히 네 줄 정도는 돼보이는 큰 도시락통이 금세 바닥을 보였다. 김밥을 배불리 먹고 진우는 아무말없이 아까 접어둔 책의 꺽어진 부분을 바로 펴면서 책에 얼굴을 묻었다. 진우가 좋아하는 책 속 세상에 빠져들었다. 내가 운영하는 소박한 블로그에는 유독 아이들이 책 읽는 사진들이 많이 있다. 육아와 일상생활을 주제로 하는 내 블로그는 아이들 얘기가 많이 올라가는데 이 녀석들의 일상이라고 해봐야 대부분이 책을 읽는 것뿐이다. 그런 내용을 포스팅하면 가끔 독자들이 내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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