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보영 Aug 28. 2017

책 읽는 아이들

부자여행 : 전주편 #07

진우가 글자를 배운 건 여섯살 초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개의 부모들이 그러하듯 우리 부부도 어린 진우가 하는 모든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첫 걸음마부터 시작해서 진우가 엄마를 먼저 불렀느냐 아빠를 먼저 불렀느냐라는 정답없는 논쟁까지. 진우가 한 행동 하나하나는 우리 초보부부에게 은하계보다도 더 큰 의미로 느껴졌다. 


아내도 여느 엄마들처럼 진우 또래의 애기들에게 좋다는 책이며 동요며 영어씨디며 출처를 알 수 없는 것들로 집안 구석구석을 채웠다. 책 상태로 보아 새책을 구입한 건 아니어서 잔소리는 거둬 들였다. 그래도 쓸데없는 돈낭비는 아니었다. 아내는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면서도 책 읽어주는 건 거르지 않았다. 그건 아마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진우는 퇴근하고 돌아온 나에게 똑같은 책만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읽어 달라고 한 날도 있었다. 아내는 무한히 반복되고 있던 책읽어주기의 괴로움을 호소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일은 새로운 책을 읽어주는 일보다 힘들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에 열성이다. 자기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는 아이로 컸으면 하는 바람에서일 것이다. 책읽는 아이는 곧 학업성적도 우수하고 좋은 대학에 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서 그런거 같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어쨌든 지금의 진우는 책을 좋아하고 잘 읽어서 엄마의 의도대로 이뤄진 거 같다. 


진우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를 찾고 그런다음 엄마를 찾고 그 다음 책을 집어든다. 책을 읽으면 누가 불러도 잘 모를 때가 많다. 책에 빠져 현실을 잊어버린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그치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아침 먹고 학교 가야하는 데 밥 먹으라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너일 뿐이고 옷을 입다가도 펼쳐져 있는 책만 보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읽는다. 화장실에 가다가도 책이 보이면 읽고 들어간다. 밥 먹으러 올 때도 책을 펴들고 나타나서 매번 혼나기 일쑤다. 그래도 책을 끼고 산다. 이런 모습에 대처하는 우리는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그래도 아예 책을 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며 서로를 위안해 준다. 이젠 동생 연우도 얼마전에 한글을 깨우쳐서 이 녀석도 만만치 않은 조짐을 보인다. 골칫덩이가 하나 더 늘 거 같다.


진우가 책을 이렇게 열심히 읽는 건 무엇보다 엄마가 책을 많이 읽어준 덕분이다. 이건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성냥갑같은 아파트 한 모퉁이에 들어 앉아있는 진우에게 엄마와 지내는 단 둘만의 하루하루가 어느 정도는 따분할 것이다. 아빠는 아침에 나갔다가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게 다음날 아침이 되면 또 없었으니 진우의 세상에는 거의 대부분 엄마만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좁은 세상에 무한히 펼쳐진 그림책 세상이 있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경험이었을까.


언제 어디서도 책 읽는 공간

아이들 중에 그림책 읽어주는 걸 싫어하는 아이도 있을까. 진우도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좋아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는 어흥하는 사자도 됐다가 욕심쟁이 돼지도 됐다가 마녀가 되기도 하고 달님이 되기도 했다.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은 똑같은 책이라도 언제나 흥미진진했다. 우리 부부는 진우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은 욕심이 많아서 늘 새로운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진우가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책들은 매일 똑같았다. 똑같은 책을 백 번 넘게 읽어줘야 다른 책을 가져왔다. 또 그 책을 백 번 정도 읽어주어야 다른 책을 가져왔다. 듣기 좋은 노래도 많이 들으면 질리는 법인데 하물며 책이겠는가. 우리의 이런 생각과 달리 진우는 우직하게도 같은 책만 집어들었다. 우리 진우만 그런가해서 주위의 또래 엄마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그렇다고 한다. 아이들은 새로운 것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만족하고 즐겼다. 어쩌면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싫은 내색 아주 조금 섞은 얼굴로 진우가 가져온 책을 읽어주었다. 주말에 엄마의 몫은 내가 대신했다. 나는 자주 읽어주지 못했으므로 신나게 읽어 주었고 진우는 가끔이지만 아빠가 읽어주는 책에 더 큰 흥미를 가졌다. 평일 밤에도 아빠만 보면 책을 들고와 별빛같은 눈망울로 ‘책’, ‘책’한다. 피곤하지만 놀아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니 어쩌겠는가. 


언제 어떤 자세에서도 책을 즐겁기만 합니다

사실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것 중에 책 읽어주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우가 글자를 배울 수 있었던 건 매일 반복해서 읽어준 그림책의 영향이 제일 큰 것 같다. 처음에는 귀로는 엄마아빠의 목소리 연기를 듣고 눈으로는 그림을 보던 진우가 백 번 정도 읽을 때쯤 되면 그림도 보고 글자도 봤다. 그리고 소리와 글자를 맞춰갔던 것 같다. 아이는 한글이라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이뤄진 우리말을 한 글자 한 글자로 그냥 통으로 익혔던 것 같다. 이처럼 아이가 어려 글자를 모를 때에 책에 관심을 갖게 해주는 방법은 엄마와 아빠가 꾸준히 그리고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에게는 책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하지만 책만 읽어준다고 해서 글자를 아는 아이들이 무조건 책을 들고 주구장창 읽는 것은 아니다. 읽어주는 책을 보는 것은 수동적인 독서행위다. 우리가 바라는 책 읽는 아이들은 책을 능동적으로 대하는 아이일 것이다. 책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모든 시대를 통틀어 부모들이 가진 고민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차가 출발하자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