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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Aug 30. 2017

전주에서 만난 맛남

부자여행 : 전주편 #09

숙소 앞 전동성당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성당 앞 마당에는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한 모형이 예쁘게 자리잡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서울과 달리 높은 빌딩이 별로 없는 전주에서 눈에 낯선 건축양식으로 우뚝 솟아있는 전동성당이 진우 눈에도 특이했던 모양이다. 성당 아래에서 진우는 높다란 성당 꼭대기를 한참이나 올려다 보았다. 


우린 여느 관광객들처럼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성당 껍데기만 대충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엔 진우에게 전동성당의 역사와 한옥마을의 조성과정을 여행 중간중간에 껴 넣어 여행의 의미를 역사체험에 두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어차피 지금 얘기해줘 봐야 기억하지도 못할 것 같고 괜히 스트레스만 줄 것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어떤 목적이나 의도없이 여행은 자유로워야 할 것만 같았다. 진우가 이번 여행에서 자유를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전동성당은 전라도에서는 가장 먼저 세워지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성당건축물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무자비하게 일어났던 천주교박해의 현장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천주교 즉 서학에 반하면서 만들어진 동학이 탐관오리의 부정과 수탈에 맞서 일으킨 동학농민혁명의 와중에 천주교 신자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동학이든 서학이든 민중의 처지를 대변해 주는 종교나 사상에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뭐든지 잘 먹는 것은 인생을 더욱 충만하게 하는 한 가지 선물이다


많은 사람을 피해서 한옥마을로 걸음을 재촉했는데 그곳엔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연말이면서 방학이라 그런지 학생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전주 한옥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한옥이 아니라는 사실을 접하고는 적잖이 놀랐다. 여행객의 대부분이 우리 전통가옥인 한옥을 보기 보다는 한옥마을을 가로지르는 대로 양 쪽에 늘어서 있는 맛있는 먹거리를 즐기기 위해 온다는 것이다. 이곳 한옥마을 입구에 즐비한 먹거리들은 사실 한옥과 어울리는 음식들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는 특이한 맛과 재미가 넘쳐난다. 그래서인지 나이지긋한 어르신들보다 젊은 청춘남녀가 많아 보였다. 진우와 나도 이들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우린 둘 다 젊은이의 축에 끼진 못하지만 그들과 똑같이 맛있게 먹을 수는 있으니까. 


여행은 새로운 것에 대한 '맛남'이다


그런데 어디서 뭘 먹어야 할지 선택의 폭이 너무나 넓었다. 문어로 꼬치를 만들어 구워주는 곳, 닭꼬치, 바게트빵에 여러가지 채소와 고기를 넣어 만든 빵, 만두, 초코파이, 지팡이처럼 생긴 긴 대롱에 넣어주는 아이스크림, 마른오징어를 통으로 튀긴 것, 크림맥주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메뉴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들이 음식을 기다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진우나 나나 처음보는 음식들이니 맛은 당연히 모르고 그저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에 우리도 섰다. 진우는 그 길에서 파는 많은 음식들을 먹었다. 하나씩만 사서 맛만 보기로 해놓고 나는 정말 한입씩 밖에 못먹었다. 나머지는 모두 진우차지. 한 가지 음식을 사서 그 음식을 먹으면서 다음 음식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음식이 맛도 있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내가 더 먹으려고 하자 하나 더 사서 드시란다. 꼬박꼬박 존댓말로 대응하니 더 얄밉다. 그래도 잘 먹어주는 아들 녀석을 보니 마냥 좋았다. 나도 참 아들바보인가 보다. 참 많이도 먹고 나서야 넓은 한옥정자에서 쉬어 가자고 한다. 이마에는 땀까지 송골송골 맺혔다. 맛있게 먹은 줄만 알았더니 열심히도 먹었나 보다. 그렇게 둘다 정신없이 길거리 먹방하느라 짧은 겨울해가 기울어지는 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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