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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Aug 31. 2017

"아빠! 저 사진 찍어주세요"

부자여행 : 전주편 #10

정자에서 물도 마시고 잠시 쉬었다. 


그제야 한옥마을의 안쪽이 눈에 들어왔다. 정갈한 한옥의 처마선이 참 부드럽고 곱게 느껴졌다. 마을을 이어주는 길도 모래바닥이 아닌 대리석 조각으로 덮어두어 먼지도 날리지 않았고 비가 와도 질척거릴 일도 없어 보였다. 음식점이 없는 한옥마을 안쪽은 고즈넉함 그 자체였다. 한옥 안으로 들어가보진 못했지만 겉모습만 보아도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을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약간의 골목길 탐험을 마치고 마을 끝에서 연결되는 오목대로 방향을 잡았다.


오목대는 조선을 세운 이성계와 관계가 깊다. 이성계의 본관이 전주임을 감안하면 전주가 조선 왕실과 깊은 관계가 있으리라는 점은 유추하기 어렵지 않다. 오목대는 고려 말이었던 1380년 이성계가 왜군을 물리치고 상경하던 중에 이곳 오목대에 이르러 승전을 축하하는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까지 이곳에 살았다고 하니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옛 조상의 고향땅에 와서 자신의 개선축하연을 연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이곳 전주에 온 이성계는 오목대의 높은 곳에서 전주읍내를 내려다 보며 새로운 권력의 태동을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도 잠시 해보곤 내려왔다.

오목대 정자에서 한옥마을을 내려다 봅니다

그리 높지 않은 오목대였지만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한옥마을과 전주시내는 참으로 운치있었다. 붉게 이글거리는 태양은 서산에서 점점 커지며 어둠을 막아내려 꾸물거리는 듯했다. 노을진 한옥마을을 보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길거리음식 먹은 배가 소화가 다 된 모양인지 진우는 내리막을 겁도 없이 뛰어내려갔다. 넘어질까 걱정스런 내 마음과 달리 진우는 가끔 뒤돌아보는 것으로 내 존재를 확인하고는 휭하니 앞서 갔다. 진우는 중간쯤에 나무로 만든 의자 몇 개가 나오자 나를 기다렸던건지 제 몸 쉬어가려던건지 모르지만 그곳에 털썩 앉아있었다. 그러고는 뒤따라오는 나를 발견하자 진우가 외쳤다.


“아빠! 저 사진 찍어주세요!”


태어날 때부터 매일 수십 장씩 사진을 찍어줬기 때문에 진우는 사진에 찍히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커다랗고 시커먼 카메라를 들이대도 별로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제 스스로 나서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 적도 없다. 그런 진우가 오늘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달라고 한 것이다. 나는 어설프게 다리 꼬고 앉아 있는 진우를 얼른 사진에 담았다. 그러고 나서 물었다.


“갑자기 사진은 왜?”


“아~ 여행 왔는데 여기 왔던 게 기념이 될 거 같아서요”


“여기가 어떤던데?”


“그냥 여기에서 제 모습을 사진에 남겨두고 싶었어요”


사실 진우가 어떤 뜻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진우가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이곳에서 느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그만인 것이다. 일단 나는 진우의 관찰자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 여행자였기 때문에 나도 좀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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