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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Sep 20. 2017

춘천, 도서관여행

부자여행 : 춘천편 #06

어묵을 두 개씩 먹고 나서 다시 길을 나섰다. 


지도 상으로도 우리가 가려고 하는 헌책방은 멀었다. 한참을 더 걸어야 했다. 효자동 주민센터에서 가져온 효자동 골목지도를 들고 자기가 앞장 서겠다며 진우는 씩씩하게도 걸었다. 문화센터에서 잠시 지친 기색이 있었지만 다시 회복되었는지 이따금 뒤따라오는 나를 돌아보는 것 외에는 열심히도 걸었다. 진우의 안내만 믿으며 아들의 뒷모습과 골목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조막만하던 녀석이 언제 저렇게 커서 씩씩하게 잘도 걷는지 눈물이 날 정도로 울컥했다. 호르몬 변화 때문인지 가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아이들을 볼 때 가끔 그런다. 함께 여행을 하니 아들이 얼마나 컸는지 느낄 때가 있다. 자기는 혼자 알아서 큰 줄 알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들 뒤를 졸졸 따라 걷다보니 작고 예쁜 노란색 화살표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담작은도서관’
“우리 도서관에 놀러오세요!” 


소박한 이정표가 귀여웠다.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진우에게 도서관에 가자고 했다. 골목을 따라 약간의 경사를 힘겹게 올라가니 그곳에 특이하게 생긴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3층 짜리 건물이었는데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작은 담을 예상했지만 담조차 없었다. 2층에 위치한 어린이 열람실로 향했다. 1층과 2층은 외부에서 곧바로 들어갈 수 있는 독립된 출입구가 있었기 때문에 1층을 거치지 않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 옆 커다란 나무에는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진 새집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2층의 어린이열람실은 구조도 모양도 독특했다. 바깥으로 툭 튀어 나와있는 골방은 세 면이 모두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사방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작은 테이블이 있는 그곳에 앉으면 하늘에 떠있는 느낌이 날 것만 같았다. 원형의 건물 구조로 벽면의 책들이 벽을 따라 둥글게 배치되어 있고 안쪽에는 길쭉한 의자들이 몇 개 놓여 있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열람실 안에 있는 미끄럼틀이었다. 어린이열람실은 높은 층고로 지어졌는데 한쪽 벽은 복층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복층은 오른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서 책을 고른 다음 왼쪽에 있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구조인 것이다. 열람실 안에 미끄럼틀이라니.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도서관과 친해질 수 있게 배려한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다. 대개 도서관이나 열람실이라고 하면 정숙이라던가 쉿! 조용히 같은 안내문구가 떠오르는데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도서관은 노는 곳이다. 다만 책을 갖고 노는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린이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은 열 명 남짓이었다. 그 중에서 떠드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고 딱 한 명의 아이만이 미끄럼틀을 탔다. 그 아이는 진우였다.

어디서든 책만 있으면 도서관이 되는 진우

진우와 나는 도서관 탐방을 마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펼쳤다. 진우는 익숙한 그림책과 새로운 그림책 몇 권을 가지고 내게서 멀찌기 떨어진 곳에 앉았다. 도서관은 우리 아이들에게 참 익숙한 곳이다. 처음 가는 곳이라는 낯가림은 없다. 모양만 조금씩 다를 뿐이지 대부분 그림책들은 집에서 봤거나 도서관에서 봤던 것들이라 오히려 익숙한 듯 행동했다. 

몇 년 전에 아이들 데리고 일주일에 한번씩 도서관 탐방을 다닌 적이 있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책보다는 새로운 도서관에 열광했다.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새로운 도서관이 갖고 있는 특색들에 심취해 즐겁게 놀기만했다. 그러다가 새로운 도서관 탐방은 그만 두고 집에서 가까운 곳만 계속 다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새로운 도서관에 가도 별 감흥이 없는 듯 처음 몇 분간만 새롭다는 듯 쳐다보다가 이내 책 속에 파뭍힌다.

이곳 도서관도 익숙한 듯 그리고 편안한 듯 진우는 한참을 책을 읽었다. 이제 헌책방에 가서 책 좀 살까라는 내 얘기는 뒷등으로도 듣지 않는 눈치다. 그림책이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다시 말했다.


“진우야 이제 갈까”

“한 권만 더 읽으면 안되요?”

“이제 가자. 가서 아빠가 책 사줄께. 전주 때처럼.”


싫은 듯 천천히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따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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