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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Sep 22. 2017

여행 중 만난 진짜 춘천닭갈비

부자여행 : 춘천편 #08

아까 잠시 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텝분께 닭갈비집을 추천해 달라고 했었다. 


여행을 가면 그곳의 사람을 만나고, 그곳의 음식을 먹고, 그곳의 소리를 들으며, 그곳의 공기를 맡으며 그곳을 최대한 즐기자는 게 내 여행에 대한 지론이다. 그래서 여행지에 오면 시장에 들른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는다. 해외에 가서도 최대한 현지 음식으로만 생활하려고 한다. 물론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있다. 하지만 크게 몇 번 떠먹으면 조금씩 적응해 간다. 자꾸자꾸 먹다보면 한국음식에서 느낄 수 없는 맛도 난다. 음식은 문화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라고해서 싫어하거나 혐오하거나 심지어 배척할 필요는 없다. 문화는 문명과 비문명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다. 단지 차이일 뿐이다. 자연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 음식문화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그들의 문화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게스트하우스 스텝분이 추천해 준 식당은 낙원동 닭갈비골목에 위치해 있는 식당이다.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즐겨찾는 곳이라는 귀뜸이 있었다. 저녁 시간에 들른 식당은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었다. 나와 진우의 등장에 사장님이 뜨아한 표정으로 


“2인 이상 주문하셔야 되는 데 괜찮으시겠어요?”


처음엔 무슨 얘긴지 몰랐다. 두 명이 들어왔는데 2인분 이상 주문하는 건 당연하지 그럼 일인분만 시킬까봐 그런가. 의아했다. 그러면서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식당직원이 우리를 따라와 물수건과 물을 갖다 주면서 주문을 받았다. 


“닭갈비 2인분 주세요.”

“근데 닭갈비가 좀 매운데 괜찮으시겠어요? 어린친구요”

“많이 매워요?”

“좀 매운 편인데요”

“이 녀석 김치찌개를 제일 좋아해서 잘 먹는데 김치찌개 먹을 정도면 다른 매운 것들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한번 드셔보세요”


아주 중요한 면접에서 통과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진우에게도 매운 거 먹을 수 있겠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하죠였다. 주문을 하고 식당을 둘러보았다. 식당 대부분의 벽면에는 방문객들이 남기고 간 글귀들로 가득차 있었다. 현지인들이 즐기는 식당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관광객들에게도 상당히 알려진 맛집인 것같았다. 벽에 붙어있는 방명록에 관심을 보인 진우는 자기도 하나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 때 주문한 닭갈비가 나왔다.


닭갈비는 철판닭갈비가 아니라 숯불닭갈비로 춘천에서 시작한 원조다. 다만 닭살을 뼈에서 분리한 채 양념을 올려 숯불에 굽는 것으로 양념에 재운 닭갈비가 아니었다. 양념은 매워보이지 않았다. 직원분이 먹기좋게 옆에서 구워주어 타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외에도 사람들이 속속 들어왔다. 손님들이 주인과 친한 듯 자리를 잡으면서 안부를 주고 받는다. 어느새 식당은 빈자리가 별로 없었다.


닭갈비 맛은 정말 매웠다. 고추양념과 후추양념이 적절하게 배합된 소스였는지 향이 강하면서도 맛있게 매웠다. 진우가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진우에게도 먹어보라고 했다. 큼직한 살을 딱 들어 깻잎에 척하고 올려 한입 크게 물었다. 조금 맵지만 먹을만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도 진우를 위해 계란찜 하나를 추가했다. 내게도 좀 매운데 진우는 맵다맵다하면서도 끝까지 제 몫을 다 먹었다. 공기밥도 한그릇 뚝딱했다. 진우가 잘 먹어줘서 고마웠다. 여행은 보는 게 반이고 먹는 게 반이다. 잘 먹는 것만으로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콜라도 소주도 없이 안주를 해치웠다. 술이 조금 아쉬웠지만 진우를 보살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진우와 여행을 다니면서 유일하게 포기한 것이 있다면 그건 술이었다. 그치만 그깟 술이 대순가. 맛있게 닭갈비를 먹고 주인한테 종이와 펜을 부탁드렸다. 방명록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에이포용지를 반으로 나눠 위에는 내가 쓰고 아래는 진우가 쓰기로 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글을 써내려 갔다.


“매콤하고 맛있고 진짜 닭갈비 맛있게 먹고 갑-니-다.
다음에 또 와야겠어요. 쩝! 더 먹고 싶네요. -子-”

진우와 내가 남긴 식당방명록!

틀린 맞춤법 하나없이 멋진 방명록을 남겼다. 진우가 끝에 ‘子’라고 쓴 건 내가 그 위에다 “부자로드 중에 만난 진짜 닭갈비! 잘 먹었습니다. -父-”라고 썼기 때문인거 같다. 방명록과 펜을 주인분께 드리고 닭갈비 값을 치룬 후 밖으로 나왔다. 해는 이미 졌고 주위는 거리의 간판들로 한결 더 밝아진 인상이었다. 밤이 시작되었고 우리의 여행 첫날도 슬슬 정리할 때가 되었다. 다시 숙소까지 걸었다. 배도 부르고 지치기도 했는지 진우는 가끔 업어달라고 했다. 나도 조금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잠깐씩 업어주었다. 몸무게는 많이 늘었고 키도 컸지만 아직 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업어달라고 하는 것도 머지않아 하지 않을 것이다. 점점 나와 나누는 대화는 줄어들 것이며 나와 함께하는 무언가가 사라질 것임을 알기에 지금 진우가 해달라고 하는 건 최대한 해주려고 한다. 지금 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해 줄 수 없으니까.


매운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숙소로 걸어오는 길에 화장실 신호가 왔다. 다행히 큰 병원이 가까이 있어서 들어가 볼 일을 해결하고 나왔다. 진우 혼자 놔둬서는 안되지만 이럴 때는 정말 대책이 없다. 대합실 의자에 진우를 앉히고 당부했다. 아빠 금방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어디가면 안되. 난 진우에게 다짐을 받고 서둘러 화장실을 향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볼 일을 해결하고 나왔다. 진우가 있던 대합실로 갔더니 진우가 고개를 숙인채 자리에 앉아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뭐하고 있나 가까이 가보니 헌책방에서 산 책을 읽고 있었다. 안심을 하고 진우에게 이제 숙소로 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잠시만 기다려 달란다. 책 다 읽고 가고 싶다고. 남아있는 양이 상당했다. 어디서건 읽기 시작하면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이었다. 숙소가 가까우니 어서 가서 편하게 읽자고 설득해 간신히 병원문을 나설 수 있었다. 시간은 벌써 잘 시간을 훌쩍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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