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보영 Sep 25. 2017

게스트하우스 막걸리 파티

부자여행 : 춘천편 #09

다소 늦은 시간이었지만 게스트하우스는 썰렁했다. 


룸메이트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진우와 나는 지난번처럼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씻은 다음 거실 테이블 한 편에 자리를 잡았다. 진우는 게스트하우스에 마련된 젠가를 집어 들고 혼자서 열중했고 나는 책을 펴 들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여행객들이 숙소로 돌아왔다. 게스트하우스는 이내 웅성웅성 소리와 함께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게하 스텝이 방마다 다니며 막걸리파티에 대해 공지해 주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참석할 요량으로 밖에 나가 나눠마실 술과 안주 그리고 진우를 위한 몇 가지 먹거리를 사들고 왔다. 다른 분들도 각자 먹을 것들을 준비해왔다. 스텝은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김치전을 부쳐주었고 우리는 테이블을 따라 길쭉하게 자리를 잡았다. 곧 스텝의 주도하에 막걸리파티가 시작되었다.


각자 자기 소개를 하고 자신만의 여행에 대해 짤막하게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며 서먹한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나는 아들과 여행을 다니는 여행자라고 소개를 했고 진우는 처음엔 쭈뼛쭈뼛 내게만 속삭였지만 이내 형과 누나들 틈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러는 사이 또래 청년들은 곧 농담도 주고 받으면서 어색함을 풀었다. 이곳 춘천 역시 내일로 여행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3월 대학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참석을 위해 임시거처로 게하를 선택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과는 달랐지만 같은 목적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새롭게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인연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마 그들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 이미 같은 대학을 다니는 동문을 만난 것이기도 한 것이다. 대부분 끼리끼리 여행을 왔다. 동성친구끼리 온 사람들도 있었고 이성친구와 함께 온 친구들도 있었다. 대부분 20대 대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이었다. 아빠와 아들이 온 건 우리뿐이었다.


사람들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술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진우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오렌지주스와 과자뿐이었지만 형과 누나들이 많아서 덩달아 신이 난 눈치였다. 여행자들은 주로 여행과 대학생신분 그리고 자신의 관심사를 주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진우를 옆에 두고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술은 금방금방 줄어들었다. 두어 잔씩 들이키며 흥을 돋우는 스텝 덕분에 파티참석자들도 기분좋게 알콜 기운을 느꼈다. 


여행자들이 만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급속히 친해졌다. 자기가 다녔던 여행지에 대해 경쟁적으로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고 일본에 살며 한국을 여행하는 친구도 있었다. 기차로 갈 수 있는 북단의 땅 춘천을 꼭 와보고 싶었다는 그 친구는 집이 여수였다. 


나도 여행에 대해서라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최근 일 년 동안 다녔던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곳에서 느낀 인상들 그리고 여행이 주는 감흥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중에서도 진우와 함께 떠난 부자여행에 관심이 많았다. 다들 어렸을 때 아빠와 함께 했던 여행에 대한 소회가 깊었다. 진우도 나중에 이런 자리에서 나와 함께 한 여행을 이야기하리라. 즐거운 상상이 이어졌다. 


어떤 여행자는 내 직업이 여행작가가 아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직업이 무엇이라면 어떠랴. 이렇게 즐기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 때에 내가 놓치고 있던 것 하나가 떠올랐다. 진우였다.


내 이야기와 다른 여행객 이야기를 오가며 파티에 몰두하면서 진우를 살뜰하게 챙기지 못한 것이다. 진우가 어디서 뭘하는지 살폈다. 진우는 내 걱정과 달리 게스트하우스에 비치된 노트북 컴퓨터의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경주에서 대학을 다니는 누나와 함께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게임 방법을 잘 모르는 진우는 친절한 누나의 도움으로 게임에 빠져들었다. 집에서는 상상도 못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내 즐거움 때문에 진우를 방치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우는 진우 나름대로 여행지에서의 일탈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면 되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나는 좀 더 여행자들과 나누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진우와 나는 따로 여행을 즐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중 만난 진짜 춘천닭갈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