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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Jan 07. 2018

인천 차이나타운과 송월동 동화마을

부자여행:인천편#03

가깝다고 생각했던 인천은 꽤 멀었다. 파주와 인천은 한강과 김포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거리상으로만 보면 그리 멀지 않다. 그런데 서울에 초점이 맞춰진 대중교통 체계로 인해 이 두 도시는 멀어져 버렸다. 멀지만 진우와 이곳저것 바깥 구경하면서 도착한 인천역은 한창 공사중이었다. 토목의 마수가 뻗치지 않은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을까. 있기나 한걸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인천역을 빠져나와 광장에 들어섰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15년 전 그 때의 인천역 풍경과 지금의 풍경이 사뭇 다르지 않았다. 이곳만큼은 시간이 비껴간 것 같았다. 아니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한여름 대낮인데도 소름마저 돋는 느낌이었다. 토목분야에서 여전히 개발도상국인 우리나라의 제일 항구도시 인천이 아닌가. 그 중에서도 인천역은 종착점이긴 하지만 해외에서 보면 한국으로 들어오는 첫 관문인데도 불구하고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실 인천역이 인천의 이름을 딴 기차역이긴 하지만 옛날부터 번화했던 곳은 제물포일대였고 인천은 그냥 해안가 가까이 인접한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대규모 간척사업을 통해 인천이 넓어졌고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인천역 인근은 바다를 접하고 있는 좁은 땅이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15년 전 인천역의 모습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인천역이 나올 때 보니 한창 공사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인천역과 송도를 연결하는 수인선 연장공사가 한창이라고 한다. 이제 내가 기억하는 옛 인천역의 모습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인천역을 벗어나 우리가 처음 마주한 것은 “한국철도 탄생역”이라는 구조물이었다. 이 구조물의 안내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1897년 3월 22일 인천에서 착공해 1899년 9월 18일에 개통된 노량진과 인천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당시 걸어서 열두 시간이 걸리던 서울과 인천 사이의 통행시간을 불과 한 시간 반으로 줄이면서 두 도시가 일일 생활권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불과 백 이십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의 일이다. 한국 근대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눈부신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의 발전과 성장도 어떻게 보면 당시의 조그마한 시도와 노력 그리고 처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래서 이번 여행의 컨셉을 “한국최초 그리고 진우와 아빠의 처음”으로 정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진우의 처음에 아빠가 있기를 바랬다.


인천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곧 차이나타운이다. 약간의 경사진 비탈길 양 옆으로 중국 음식점과 상점들 그리고 중국풍의 가로등이 펼쳐져 있다. 언덕의 끝에는 4층 높이의 붉은 건물이 위용을 드러내며 우뚝 서있다. 그 건물이 공화춘이다. 4층의 넓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지도교수님을 기다렸다. 오전이었지만 8월의 햇살은 강렬했고 진우는 수건을 뒤집어 쓴 채 덥다더워를 연발하고 있었다. 공화춘 4층에서 내려다 본 차이나타운은 이색적이면서도 독특했다. 한글 간판과 한자 간판이 뒤섞여 어색했다. 비행기의 기내식이 국적이 없듯 이곳 차이나타운 역시 한국도 중국도 아닌 듯했다.


얼마 후 선생님 가족과 만나 진우가 좋아하는 공화춘짜장면과 칠리새우, 사천탕수육, 양장피, 삼선짬뽕 등 풍성한 점심을 먹었다. 느긋하게 식사하느라 어느덧 강연시간이 촉박해진 선생님 가족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우린 다시 여행자로 돌아왔다. 차이나타운이다보니 한자간판을 단 중국음식점들이 가장 많았고 그 사이사이에 커피숍과 중국산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차이나타운을 알리는 입간판 앞에는 커다란 짜장면 모형과 양파 모양의 미술작품이 여행의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맹위를 떨치는 한 낮인데도 사람들은 많았다. 여행 가방을 들쳐 멘 진우는 연신 땀을 닦으면서도 잘 걸어 다녔다. 가끔 물총이며 장난감이며 각종 소품들을 파는 가게에서는 초등2학년으로 변신하긴 하지만 말이다.


차이나타운의 대로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송월동 동화마을에 도착했다. 송월동은 이름처럼 소나무가 많고 소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달이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개발과 발전에 소외되어 있던 인천의 모습처럼 이곳도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빈집 투성이의 낡은 마을이었다. 최근에 마을 곳곳에 벽화와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방문객이 증가하기 시작해 지금은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가면 옛 송월동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비교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 사진만으로도 이 마을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다. 미녀와야수, 신데렐라, 라푼젤과 같이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법한 동화의 주인공들이 마을 곳곳에 예쁘게 자리잡고 있어서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나중에 꼭 아내도 데리고 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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