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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Jan 08. 2018

인천의 한 마을도서관에서 이벤트를 즐기다

부자여행:인천편#05

일본조계를 벗어나 다시 우리땅으로 들어서니 우리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익숙한 것이 편한 법이다. 인천에 왔을 뿐인데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를 동시에 여행한 기분이다. 그래도 날은 무더웠다. 더위도 식힐 겸 진우랑 나는 각자 취향대로 쭈쭈바 하나씩 물고 발걸음을 옮겼다.


홍예문을 거쳐 숙소로 가는 길을 찾아 걸었다. 쭈쭈바를 절반쯤 먹었을 때 홍예문이 저멀리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도서관을 하나 발견했다.


“진우야 들어가서 책 좀 보다 갈까?”

“네!”


책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진우가 마다할 리 없다. 쭈쭈바를 입에 물고 신발을 벗고 도서관에 들어갔다. 도서관 입구에 쇼파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워낙 작은 도서관이다 보니 곧바로 어린이열람실이 나타났다. 쭈쭈바를 입에 물고 입장하는 우리를 보고 사서선생님이 곧장 달려나왔다.


“음식물은 가지고 오시면 안됩니다”


아직 절반이나 남은 아이스크림을 버릴 수는 없고 급하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신발에 넣어두고 도서관에 들어왔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우리는 각자 책을 읽었다. 지난번 춘천의 담작은 도서관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다. 개관한지 3주년 기념행사를 하는 것으로 봐서 생긴지 3년 된 듯했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한 음성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꿈벗도서관 개관 3주년을 기념해 지금부터 요리조리 신기한 만화경 만들기 체험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오니 많은 참여바랍니다.” 


방송을 듣고 진우에게 눈짓을 줬다. 해볼래. 고개를 끄덕끄덕. 이제 말하지 않아도 대충 눈짓으로 대화를 주고 받는 수준까지 되었다. 진우 손을 잡고 행사장으로 내려갔다. 진우를 포함해 세 명이 어린이들이 모여들었다. 오늘 체험 주제는 만화경 만들기였다. 나도 어릴 때 작은 구멍을 들여다보고 돌릴 때마다 신기하게 변하는 다채로운 모양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냥 샀었던 거 같은데 요즘은 그걸 만드나보다. 만화경의 주 재료가 되는 원통과 그 안에 들어가는 길쭉한 거울 그리고 다양한 문양은 기본적으로 제공되었다. 진우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책 중에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골라 와서 읽고 그 책에 나오는 그림의 한 장면을 주어진 종이에 그리는 것이다. 그러면 각자 그린 그림을 만화경 원통의 껍데기에 돌돌 말아 붙여주면 자기만의 만화경이 만들어지는 체험이었다. 사서선생님의 설명을 자세히 들은 아이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느라 분주히 돌아다녔고 진우도 마찬가지였지만 진우는 마땅한 책을 고르지 못했는지 계속 망설였다. 같이 다니면서 안 사실이지만 진우는 뭔가를 결정하는 데 신중하다. 그래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한 번 결정하면 나머지 것들이 신경이 쓰이는지 결정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다고, 이거하고 또 다른 거 하면 된다고도 했고, 선택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도 설명해 주었지만 진우에게는 그런 결정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만화경 껍데기 그리기에 들어갔는데 진우는 여전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책을 고르고 있었다. 대충 아무거나 가져오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천천히 니가 고르고 싶은 걸 고르라고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진우가 가져온 책은 우리집에도 있고 자주 읽었던 “꼭 안아줘”라는 책을 가져왔다.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책에서 진우가 그린 그림도 역시 고양이였다. 빨간색 표지에 회색과 흰색의 고양이를 진우는 열심히 그렸고 자기만의 만화경을 만들었다. 체험활동이 좋은 것은 직접 해보고 익혀서 좋은 점도 있지만 무언가를 자기 스스로 창작했다는 뿌듯함도 크다. 진우는 이 만화경을 여행 내내 소중히 다뤘고 틈날 때마다 만화경 안의 신기한 세상을 감상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엄마에게 그리고 동생에게 한참이나 자랑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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