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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Jan 09. 2018

인천 홍예문 넘어 게스트하우로

부자여행:인천편#06

체험활동 후에도 진우는 몇 권의 책을 더 읽었다. 


신발에 꽂아둔 아이스크림은 다 녹았지만 햇살은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꿈벗도서관에서 나와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동인천역으로 가려면 홍예문을 지나야 한다. 지금이야 산을 깎으면서 주택들을 많이 지어서 여러가지 갈래길이 많이 생겼지만 개항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조계가 있는 곳은 협소했다. 원래 일본은 일본거류지를 부산의 일본조계지처럼 전관조계 즉 자신만의 조계지로 만들렸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엎친데덮친격으로 인천개항장은 한 나라의 전관거류지를 지정하지 않고 외국 각국이 공동으로 나눠쓰는 해외각국조계지로 지정되면서 일부만을 조계지로 만들 수 있었다. 땅은 좁고 서울 방향으로는 산이 가로막혀 있어 답답했던 일본은 조선 땅으로 깊숙히 침투하기 위해서라도 우회하는 길이 아니라 곧바로 연결할 수 있는 길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지금 남아있는 홍예문이다. 홍예는 무지개라는 뜻이다. 이처럼 홍예문은 무지개를 닮아 붙여진 예쁜 이름이지만 그 건축 배경에는 끔찍한 일제의 침략야욕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길을 지나면서 백년 전 이 길을 지나다녔을 조선인과 일본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길을 한 곳을 다른 곳과 연결해주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이 길을 통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해 왔다고 생각하니 아무 죄없는 길조차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홍예문을 지나 우리는 주택이 밀접한 지역을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교통편이 불편하기도 했고 굳이 대중교통이 아니더라도 다닐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해서 무작정 걸었다. 보통의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얼마나 잘 걷는지 모르겠지만 오늘같이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날에 너댓 시간을 줄기차게 걷는 진우가 나는 참 대견하기도 했지만 신기하기까지 했다.


홍예문에서 동인천역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오늘 숙소는 역 앞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다. 체크인 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이라 게스트하우스 안은 한산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홀로 나와 우리를 반겨주었다. 게하는 2층부터 4층 옥탑방까지 있었는데 남자도미토리는 3층이었다. 우리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가장 저렴한 도미토리로 예약을 했다. 원래 이 여행을 계획했을 때는 무더운 8월이 아니었다. 초록이 짙어지는 6월이었다. 그 때 여행했다면 이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대한민국 전체가 전염병 메르스의 공포에 휩싸였던 때였다. 진우가 조금 아쉬워하긴 했지만 학교에서 실시한 전염병 예방교육 때문인지 여행을 연기한 이유에 대해 쉽게 수긍해 주었다. 두 달이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메르스에 대한 우려는 종식되지 않았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가 사태를 더욱 확산시켰다. 사망자는 계속 늘었고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다행히 여름을 정점으로 사망자와 확진자가 줄어들어 우리 여행도 가능해졌다.


게스트하우스 내부는 부분정비를 하고 있는지 조금 부산스러웠지만 나름 깔끔했다. 주인은 메르스에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면서도 자기가 운영하는 숙소에 대한 자긍심만은 상당했다. 3층 남자 도미토리로 우리를 안내한 아주머니는 실내의 가구 배치와 숙소 사용설명을 해주면서 이 숙소를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었다며 끊임없이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챈건지 주인아주머니의 말 끝에 진우도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우가 꺼낸 자기 자랑은 바로 나였다. 아빠인 나였다. 우리 아빠도 나무로 여러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잘 만드시는 데 특히 데크를 정말 잘 만든다고 했다. 아마 지지난 가을 내가 직접 마당에 데크를 만든 걸 진우는 되려 자기가 뿌듯했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데크를 만들 때는 아내도 그렇고 애들도 그렇고 남의 집에 세 사는 사람이 뭐하러 돈들이고 공들여 그런 일을 하냐고 핀잔까지 주었던 터였다. 하지만 이틀만에 완성한 두 평 남짓한 마당 데크는 우리집만의 쉼터가 되었다. 좋은 날 데크 위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비벼먹는 비빔밥 맛은 최고였고 전등 아래 구워 먹는 삼겹살 맛은 임금님 수랏상 부럽지 않았다. 데크를 직접 만든 아빠 자랑은 독도에 다녀온 얘기로 이어졌다. 독도는 우리땅인데 일본사람들이 자꾸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면서 우리 아빠는 작년에 독도도 다녀왔고 자기도 곧 갈거라는 의지까지 담아 쫑알쫑알 이야기했다. 길지 않은 자랑이었지만 진우가 갖고 있던 생각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진우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았고 그 일이 갖는 의미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인 나를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아빠로서 내가 더 많은 책임감을 갖고 아이들을 대해야겠다는 다짐마저 들게했다. 그깟 데크 만든 게 뭐라고 아빠를 이렇게 자랑스러워하다니.


숙소에 짐을 푼 김에 조금 쉬었다 가기로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허리를 폈고 진우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아이피티비가 제공하는 게임에 몰두했다. 요즘 진우는 점점 디지털게임에 관심을 보인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고 아내나 나나 스마트폰 게임은 하지 않으니 집에서는 게임을 접할 기회가 없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아이들끼리는 즐기는 모양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만 가끔 주의를 주는 것외에 심하게 간섭할 생각은 없다. 나도 어렸을 때는 좋아했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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