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보영 Jan 10. 2018

연애천국 월미도에서 둘만의 데이트

부자여행:인천편#07

숙소를 나와 동인천역에서 월미도로 가는 버스를 탄 시각은 다섯시를 훌쩍 넘긴 때였다. 아내와 연애초기에 한번 온 적이 있으니 벌써 이십 년 전에 온 셈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세월 빠른 얘기는 하지 말자. 해봐야 남는 것도 없다. 그나마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불쑥불쑥 키우는 재미가 콩나물 키우는 재미보다 좋으니 세월 흐르는 것도 탓할 일만은 아니다.


게스트하우스 아주머니가 알려준대로 45번 버스를 타고 월미도로 향했다. 원래는 월미도 전망대를 올라가는 물범카를 타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었는지 막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전통공원에서 출발해 전망대까지 걷기로 했다. 다행이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던 때라 그리 덥지는 않았다. 한국전통정원은 몇 채의 기와집과 너른 마당 그리고 초가집과 아기자기한 정원들로 이뤄져 있어서 덥지만 않으면 천천히 산책도 하고 도시락도 먹으면서 여유를 부리기에 좋은 곳이었다.


우리가 이 정원에 도착했을 때는 날도 덥고 시간도 늦은 터라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진우와 나만 전세낸 듯 정원 한 편에 마련된 전통놀이를 쉴새없이 즐겼다. 투호놀이, 윷놀이, 제기차기, 딱지치기, 나무로 만든 비석치기, 고무줄 놀이 등 다양한 놀이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 옛 전통놀이는 마당에서 소담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마당놀이를 좀 즐기고 정원길을 산책했다. 조금 걷다보니 월미산 정상으로 이어진 길이 나왔다. 전망대가 있는 정상은 오백 미터를 남겨두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정상까지 가보자 의기투합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상까지 길은 무수히 많은 계단으로 돼 있어 꽤나 힘들었다. 울창한 숲과 그 숲이 제공하는 신선한 공기가 없었다면 정상까지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찍을 힘도 없이 기다시피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마지막으로 올라갔던 물범카가 내려가는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것만 탔어도 편하게 올라왔을텐데. 어쨌든 힘들게 올라온 만큼 보람도 있겠지 싶었다.


물범카는 우리만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우리는 출발하는 물범카에 손을 흔들고 전망대로 향했다. 저멀리 전망대가 보였다. 이 길이 맞다고 확신하고 발걸음에 속도를 냈다. 산 속은 어둠이 빨리 찾아와서 마음에 조바심이 난 모양이었다. 털레털레 걷는 진우에게 어서 걷자고 보채 봤지만 별로 신경쓰는 눈치는 아니다. 산책로 중간 중간 놓여있는 야생나무와 꽃들에 대한 안내문을 기어코 다 읽은 다음에야 발걸음을 옮겼으니 말이다. 책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글자 읽는 걸 좋아하고 그 뜻에 대해서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요즘에는 만화책도 많이 읽지만 글밥이 많은 책도 곧잘 읽는다. 최근 아이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인 13층 나무집 시리즈는 진우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유행시키기도 했다. 교실에선 만화책 읽기가 금지되어 있어 만화책 보다는 글밥책을 읽기 때문인데 진우가 재밌다고 소문낸 덕에 친구들도 그 책을 많이 보게 되었다고 한다.


월미달빛마루라는 카페가 있는 전망대는 흡사 성화처럼 생겼다. 원뿔을 뒤집은 모양으로 겉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어디서건 밖을 내다 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야트막한 산의 정상에 우뚝 솟아있는 전망대를 엘레베이터로 순식간에 올라섰다. 수 초 만에 올라간 전망대는 인천 시내와 인천항 전체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웠다. 뜨거웠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진우는 전망대 망원경에 올라 밑으로 떨어질까봐 두려웠는지 엉덩이 쭉 빼고 이곳저곳 살폈다. 나도 몇 초동안 망원경을 들여다 보았다. 먼 곳을 확대해서 보는 것보다 넓고 크게 많이 보는 걸 좋아하는 나는 망원경보다는 그냥 보는 걸 좋아한다.정상에 올랐으니 내려가는 길은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월미도 공원을 먼저 보려고 했었는데 버스를 잘못 내려 전망대부터 다녀온 것이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을 보고 전망대를 보면 어두워져서 많이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야경을 봐도 좋지만 말이다.


월미도공원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많이 변한 느낌이었다. 그 옛날 탔던 놀이기구는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있었고 해변에 자리잡은 식당들은 여전히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위한 여러 편의시설들과 체험시설들이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인 바다에 왔으니 발이라도 담궈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참에 발견한 발담그는 장소 두 곳. 한 곳은 진짜 바다로 안전울타리가 쳐진 곳까지 내려가 발을 담글 수 있는 곳이었다. 신발을 가지런하게 벗고 그 안에 양말까지 벗어둔 후 진우는 바닷물에 발을 담궜다. 시원하다고 했고 재밌다고 했다.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파도를 발등과 발목에서 느끼며 참으로 오랜만에 진짜 바다를 접했다. 조금만 더 크면 이 녀석 데리고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모래놀이도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장소는 바닷물을 끌어와서 만든 해수족탕이었다. 바다에 발을 실컸 담궜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 진우는 또다시 신발을 벗었다. 이번엔 나도 카메라를 내려 놓고 신발을 벗었다. 주위에 해수 족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우리도 그 틈에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았다. 우리는 연인처럼 손을 잡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사랑이라는 게 여러가지 감정이라는 걸 배운 것도 아이를 키우면서다. 아내와 부모를 사랑하는 것 외에도 이렇게 크고 강한 사랑이 있는 줄 몰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천 홍예문 넘어 게스트하우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