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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Jan 12. 2018

신포닭강정, 아들과 즐기는 치맥파티

부자여행:인천편#08

두 번의 족욕을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하루를 즐기기에 충분히 길었던 해도 어느덧 뉘엇뉘엇 서해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월미도와 동인천역을 오가는 버스를 타고 월미도를 빠져나갔다. 버스가 신포국제시장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해는 져버렸다. 해 떨어진 거리엔 가로등과 간판불이 켜져 낮과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오늘 마지막 목적지는 신포국제시장이다. 인천에 왔으니 이곳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아빠의 지론에 적극 동의하는 진우는 오늘 저녁으로 뭘 먹을지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신포국제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삼십 미터 전방부터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줄의 맨 앞까지 가봤다. 다름아닌 신포닭강정을 사가려는 사람들이 만든 대기줄이었다. 이 많은 줄을 언제 기다렸다가 먹나 걱정하면서 주위를 둘렀봤다. 그러자 맞은 편 식당의 안내문이 보였다. 드시고 가실분은 들어오세요. 와우! 식당 앞엔 아무도 줄 서 있지 않았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만석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씀에 그러마고 했다. 자리는 오래 지나지 않아 났다. 우리 둘은 식당의 안쪽으로 안내받아 들어갔다.


양념치킨 하나와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닭강정의 명성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여행객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현지인들도 많은 듯 했다. 어서 먹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점심 먹은 후 간식도 제대로 못먹었다. 진우만 월미도에서 길쭉한 쏘세지를 먹었다. 난 한 입 밖에 얻어먹지 못했다.


금방 우리 앞에 닭 한마리가 접시에 담겨 나왔다. 검붉은 색의 소스가 윤기 자르르 덮혀 나온 닭튀김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먼저 진우가 먹기 좋은 걸로 골라 주고 나도 하나 골랐다. 치킨을 먹기 전에 맥주부터 한 잔 할 요량으로 병을 땄다. 나는 맥주, 진우는 물로 우리의 여행을 기념하는 건배를 했다. 이 녀석 언제 키워서 같이 술 한 잔 하게 될까. 그때쯤 되면 아빠보다는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느라 나나 엄마나 거들떠 보기나 할까. 쳇. 그런 부질없는 생각은 접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두 손에 포크 하나씩 집어들고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먹는 동안 진우와 나눴던 대화가 뭐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우리 둘다 너무 배가 고팠고 닭강정도 맛있었다. 집에 있을 가족들이랑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싸가고 싶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은 아직 멀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월미도를 빠져나와 저녁을 먹기 시작한 시간이 여덟시 쯤 되었다. 평소엔 여섯 시면 저녁을 먹는 우리로서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그렇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비록 술 한잔 같이 나누지는 못했지만 술 잔과 물 잔이 부딪히며 나누는 즐거움도 적지 않았다. 세 명이 먹으면 적당한 양의 닭을 우리 둘이서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부른 배를 토닥토닥치며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왔다. 여전히 닭강정을 포장해 가려는 사람들은 많았다.


배도 부르고 피곤해진 몸이 노곤해 지자 진우는 자꾸 업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도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아빠도 힘들어. 조금만 힘내. 거의 다 왔어를 반복하며 진우를 달랬다. 가끔은 힘들어도 업어줬다. 거의 삼십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를 피곤에 쩔은 몸으로 업는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옛날처럼 한 손으로 안아주고 두 손으로 번쩍 들어 머리 높이 던지는 놀이는 이제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할 수 없는 일.


아이가 원하면 뭐든지 다 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아이 시각에서는 원하는 모든 것들은 다 해줬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해결되는 것은 빼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아이가 원하는 것도 내 노력만으로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생겼다. 아이는 커가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작아지고 있었다. 뭐 크게 실감나지는 않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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