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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Jan 12. 2018

조촐한 아침식사와 뜻밖의 선물

부자여행:인천편#09

어두운 거리를 진우 손 꼭 잡고 걸었다. 


밤은 낮보다 덥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투박하게 굵어가는 진우 손이었다. 늦은 시간이에 다시 들어간 게스트하우스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오후의 주인 아주머니가 다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땀에 절은 몸을 씻어 내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여섯 명이 동시에 쓸 수 있는 도미토리에는 우리만 있었다. 여전히 메르스의 여파가 남아있는 듯 여행객은 늘 생각이 없어 보였다.


힘들다고 업어달라던 진우는 낮의 그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나는 진우 옆에서 오늘 뭘 했는지 되돌아 보았다. 참 걷기도 많이 걸었다. 진우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즐겁게 게임을 했다. 책이나 조금 읽다가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이 늦어 진우에게 게임은 그만하고 일기쓰고 자자고 했다. 몇 게임을 더 하고나서야 진우는 잠자리에 들었다. 일기는 쓰지 않았다. 억지로 쓰게 할 생각도 없지만 무조건 아빠말만 듣는 녀석은 더이상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한 셈이었다. 늦은 밤 우리 방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싼 값에 얻은 넓은 방을 우리만 독차지하게 생겼다. 이런 횡재가 다 있나 싶었다. 그러는 사이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진우가 옆에서 자고 있었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한밤에 펼쳐지는 막걸리파티도 없지만 조식도 없었다. 게스트하우스 조식을 좋아하는 진우가 조금 아쉬워했지만 원목으로 된 2층 침대가 마음에 들어 선택했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룸메이트가 없어서 편하게 잠을 잔 덕분인지 몸은 가뿐했다. 아침을 못 먹으니 대충 씻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오늘의 첫 일정은 헌책방 순례지인 배다리헌책방 골목이었다. 숙소에서 배다리 방향으로 걸었다. 십여 분을 걸었을까. 진우가 배가 고프다고 한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았다. 매번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먹고 나왔기 때문에 아침에 문을 여는 식당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조금 더 걷자 큰 편의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진우야, 삼각김밥이랑 컵라면 먹을까?”


“네! 좋아요!”


마다할 진우가 아니었다. 어린 아들에게 아침으로 김밥과 라면을 주는 못난 애비가 된 것같아 조금 껄끄러웠지만 여행이 주는 일탈과 재미가 이런 게 아닐까 한다. 영락없이 여행자의 모습을 한 우리가 편의점에 들어가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계산하는 사이에 어디서 왔는지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들어닥쳤다. 건설인부로 보이는 네댓 명의 아저씨들도 우리처럼 김밥과 컵라면을 골라 계산을 치뤘다. 진우와 내가 조심스럽게 컵라면 껍질을 벗기고 스프를 털어넣는 사이 아저씨들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뜨거운 물을 붓고 있었다.


우리도 뜨거운 물을 붓고 라면이 익는 사이에 삼각김밥을 먼저 먹었다. 대충 익었겠지 하고 라면을 뜯는 사이에 우리보다 늦게 들어온 아저씨들은 아침식사를 끝내고 부산하게 편의점을 빠져나가 그 앞에서 담배를 꼬나 물었다. 그런 모습을 진우와 보면서 우리도 라면을 먹었다. 늘 하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여덟 시도 안된 시간에 여행가방 둘러메고 편의점 한 구석에서 먹는 컵라면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 진우도 마찬가지로 맛있냐는 내 질문에 젓가락 쥔 손으로 엄지를 치켜 세웠다.


라면은 금방 없어졌고 남은 국물은 국물용기에 버려졌다. 잘 먹었습니다면서 편의점 문을 열고 나왔다. 진우는 뒤로 돌아 배꼽인사를 꾸벅하고 문을 나섰다. 인사 잘하는 모습이 너무 기특해서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었다. 편의점을 나와 백 미터 정도 걸어갔을까. 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곳에서 누가 우리를 부를리 없었다.


그런데 조금 가까워진 곳에서 “저기요”라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뒤돌아 보니 편의점 앞치마를 두른 아까 그 청년이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오고 있었다.


“왜요?”


“아니, 저기, 그냥 이거”


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노란색 봉지과자 하나를 수줍은 듯 건네 주었다. 섣불리 받을 수 없었던 나는 왜 그러냐고 했다.


“아니 그냥 이거 드리고 싶어서요”


노란색 봉지과자는 당시 최절정 유행을 타고 있던 꿀과 버터로 만든 감자과자였다. 우린 먹어본 적은 없었다. 이 과자의 유행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이 과자를 먹을 수 없었던 것은 기본이고 실물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이 청년이 그 과자를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 백 미터 가량을 뛰어온 것이다. 아무도 없는 일터를 팽개치고 말이다.

청년은 과자를 내게 쥐어주고는 휑하니 뒤돌아 편의점을 향해 뛰어갔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어리둥절했다. 다시 되돌아가서 왜 이걸 우리에게 주느냐고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주고 싶어서 줬겠지 하고 감사히 받기로 했다.


사실 진우는 과자는 별로 즐기는 편은 아니다. 손에 과자 부스러기 묻어서 과자가 싫다는 게 진우의 말이었지만 어린이 치고는 신기했다. 어쨌든 귀한 과자를 얻어 기분이 좋았지만 우린 둘다 과자를 좋아하지 않아 그 기쁨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둘째 연우는 과자나 사탕, 초코릿 등등 그 또래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과자를 집에 있는 연우와 엄마를 갖다 주기로 했다. 다시 봐도 기특한 녀석이다.


집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처음엔 "에이~ 설마"하는 눈치였지만 과자를 보고서는 믿었다. 나는 그 청년이 우리 부자가 여행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선물로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내 생각은 달랐다. 아빠와 아들이 허름한 행색을 하고 이른 아침부터 편의점에서 대충 아침을 떼우는 모습이 불쌍하고 안타까운 나머지 동정하듯 주었을 거라는 것이다. 푸하하. 아무리 행색이 초라하더라도 거지 행색은 아니었을진대 동정이라니. 웃어넘기고 우리 네 식구는 그 청년의 선물을 맛있게 먹었다. 유행만큼 맛있지는 않았지만 청년의 고마운 마음씨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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