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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Jan 23. 2018

아빠가 살던 곳

부자여행:경주편#06

내가 살던 곳은 무슨무슨 아파트다. 


당시만 하더라도 고층아파트나 대규모 단지를 형성하는 아파트는 거의 없을 때였고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도 일반적이지 않을 때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난 친구들과 달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때 기억으로 우리집은 스무 평 정도 되는 크기에 방이 세 개에 거실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작은 평수에 다섯 개의 공간을 우겨넣으니 좁을 수밖에 없었다. 전체 오 층 중에서 우리집은 삼 층이었는데도 조금 어두웠던 느낌이 많다. 그래서 어릴 때긴 하지만 아파트에 대한 답답함이 생겼던 것 같다.


아파트야 어쨌든간에 진우와 내가 들어선 옛 아파트는 놀랍게도 당시 모습 그대로였다. 없어져 버렸으면 어떡하나 걱정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옛 모습 그대로 있다니 너무 반가웠다. 20여 년 전 그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조금 넓은 도로에 인접한 아파트는 들어서는 입구에 관리실 겸 수위실이 덩그러니 서 있는데 지금은 입구와 관리실만 위치를 조금 바꿨을 뿐이었다.


진우와 내가 관리실을 지나쳐 아파트 앞 마당에 자전거를 세우고 둘러보는 사이에 관리실에서 나왔을 법한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낯선 사람들의 등장을 경계하듯 내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예. 옛날에 여기 살던 사람인데 한 번 구경왔습니다”

“아 그래요?”

“제가 여기 초등학교 때부터 살던 곳인데 아들이 이제 초등학생이 쇄서 저 어릴 때 살던 곳 구경시켜주려고 데리고 왔죠.”

“허허 좋네요”


환갑을 넘긴 지 한참이나 되어 보이는 수위아저씨는 본인도 이곳에 온지 수 년이 되었다면서 아파트의 이력에 대해 짧게 소개했다. 아파트의 역사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면면에 대해서는 내가 짬밥이 더 오래되었지만 난 수위아저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서울에 가고 나서도 사람들은 계속 살았고 또 아이들은 이곳에서 뛰어놀았다.


“예전엔 이곳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젠 아파트가 빌라들 속에 파묻힌 형상이네요”

“아 그렇죠. 아마 선생님 사셨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을 거에요. 여기 빌라들 들어선 게 몇 년 안됐거든요”

사실 경주가 고향이라는 아저씨는 나보다 경주에 대해서 더 자세히 그리고 더 많은 역사를 알고 있었다.

“저 어릴 때는 출입구랑 수위실이 저쪽에 있었는데 이쪽으로 옮겨져 있네요”

“네, 차들이 많아지면서 차들이 도로로 나갈 때 위험이 있어서 이쪽으로 옮긴 거지요”

“놀이터는 그대론데 놀이기구는 없어졌구요. 요즘은 애들이 없나봐요?”

“애들은 있는데 노는 애들이 별로 없네요. 놀이기구가 없어져서 그런가”

“놀이터 화장실도 있고, 옛날이랑 변한 게 별로 없어요. 하하하” 


변한 게 별로 없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기뻤다. 모래놀이터에서 두꺼비집 놀이를 했고 미끄럼틀 앞쪽에는 구덩이 함정을 만들어 신문으로 덮어놓고 친구들을 빠뜨리기도 했다. 그네, 시소, 철봉, 미끄럼틀. 놀이터에 있을만한 것들은 한두 개씩 있었지만 그걸 그대로 놀기보다 새로운 장난을 개발해 놀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위험하게도 놀았던 것 같다. 놀이터 옆 공터에서는 다방구, 비석치기, 망구 등등 주위에 흔하디흔한 돌멩이를 갖고 놀았다. 또 높다란 아파트 한 쪽 벽에 누가 높이 공을 던지는지 시합하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이 모든 놀이를 예닐곱 명의 아이들과 어울려 놀랐다. 그랬던 그 아파트 놀이터는 내 기억보다 훨씬 좁았다. 어떻게 저기서 축구도 하고 심지어 야구까지 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대로여서 좋았다. 잠시 옛 생각에 잠기자 갑자기 서글픈 눈물이 나려고도 했다. 꿈 많고 호기심 많던 그 때였다. 두려움보다는 도전하려는 의욕이 앞섰던 것 같다. 그 때의 난 어디에 있는걸까. 지금의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진우를 데리고 내가 살던 3층으로 올라갔다. 모든 층의 집 배치가 똑같지만 3층으로 올라가 보고 싶었다. 지금 누가 살고 있어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잠깐 일었지만 참았다. 3층 복도에서 내려다 본 앞마당에는 예전의 친구들이 지금이라도 뛰쳐나와 놀 것만 같았다. 어릴 때는 키가 작아 이렇게 내려다 볼 수 없었고 키가 커서는 내려다 볼 일이 없어졌던 곳이었다.


진우에게 아빠가 살던 집이 여기라고 알려주고 다시 내려와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았다. 한 바퀴라고 해봐야 3분도 안 걸리는 작은 아파트였다. 아파트 뒷편 정원에는 엄마랑 둘이서 김장독을 묻었던 일이며 학교 앞에서 사와서 키웠던 병아리들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지금 진우정도 나이였으니 진우도 이제 아빠와 하는 여행을 잘 기억해 줄 수 있으리라. 그것이 아주 멋진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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