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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Jan 31. 2018

소나기와 첨성대

부자여행:경주편#11

대나무숲이 우산 역할을 해주었지만 쏟아지는 빗줄기를 완전히 막아주진 못했다. 


소나기에 나와 진우는 서둘러 안압지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비를 피할 곳은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안압지를 벗어나면서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지 고민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간다고 해도 몸은 다 젖을 것이다. 천마총으로 가서 구경하면서 비를 피하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미칠 때쯤 다행히 아주 조금씩 빗줄기는 잦아드는 것 같았다. 자전거를 첨성대 방향으로 틀었다. 어차피 천마총은 첨성대 인근이었으므로 첨성대를 먼저 가기로 했다.


비는 계속 내렸고 겉옷은 거의 다 젖어 버렸다. 춥지 않은지 진우에게 물어봤지만 괜찮다 재밌다는 대답이었다. 갑자기 몰아친 비가 반갑고 그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진우에겐 이것처럼 재미있는 놀이가 없었을 것이다. 집에서는 절대 못하는 놀이였던 것이다. 우리집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국가로 치면 헌법같은 것인데 이 원칙에 준해서 아이들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원칙은 세 가지다. 건강과 안전에 관한 것과 약속지키기가 그것이다. 건강과 안전은 내 몸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라는 뜻이고 약속을 지키라는 것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중요한 규범이라 생각해서이다. 나와 아내는 이 원칙에 준해서 아이들에게 해도 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되는 행동에 대해 설명해 주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그 때 우리가 애들한테 가르쳐 준 것은 효경에 나오는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니라. 입신행도하고 양명어후세하여 이현부모함이 효지종야니라”를 외우게 했다. 그리고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몸과 근원 그리고 머리카락과 살갛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감히 훼손하고 손상시키지 아니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몸을 바로 세워 도를 행하고 자신의 이름을 드날려 후세에 전함으로써 부모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효의 마지막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의 기본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몸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아이들은 이 문장을 잘 외웠고 그 뜻도 가슴에 각인했을 것이다. 가끔씩 위험한 행동을 할 때 내가 큰소리로 ‘신체발부는’이라고 하면 아빠의 잔소리를 눈치채고 위험한 행동을 자제한다.


비가 내리는 첨성대의 야경도 꽤나 운치 있었다. 기념사진을 남기고 첨성대를 보면서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리 높지도 않은 첨성대 위에서 어떻게 별을 관측했을까가 우리의 화제였다. 지금이야 높은 산 속에 커다란 망원경을 설치하거나 높은 건물 위에 관측소를 설치해 두는 게 일반적인데 첨성대가 세워진 곳은 그냥 평지여서 우리의 상식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빗속의 자전거에 매료된 진우는 내 질문에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교육적인 효과를 달성하고자 나만의 화제로 우주를 끌어들인 것이다. 지금 당장 우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진우 때문에 나도 즉각 교육을 그만두었다. 뭐 여기까지 와서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데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천마총을 거치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져 그만 두기로 했다. 숙소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에 이미 비는 그쳤다. 숙소 근처의 시장에는 아직 문을 닫지 않은 호떡집이 몇 개 눈에 띄었다. 매의 눈으로 호떡집의 호떡을 살핀 진우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아빠아~~ 호떡 하나만 먹고가요~~~”


애교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무덤덤한 제안이 들려왔다. 자전거도 오래 탔고 비에 젖어 추울 것 같아 그러자고 했다. 호떡집 아주머니는 야심한 시각까지 호떡을 굽는 일과 어울리지 않게 미인이었다. 인사를 하고 좁은 의자에 앉아 호떡이 구워지는 걸 기다리며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물론 여행에 대한 것이었고 아빠와 아들이 다니는 여행의 특별함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아주머니의 기특한 딸에게로 옮아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이 대견해 사진도 꽂아두고 전화도 자주 한다면서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모 마음이라는 것이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본인은 무슨 일을 하던간에 아들과 딸에게는 이런 힘든 일을 되물림해 주지 않겠다는 다짐같은 마음이 있었다. 거기다 제대로 해주지도 못한 부모인데도 바르게만 자라 준 자식들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주는 존재가 바로 부모인 것이다.


뜨끈뜨끈한 호떡에 따뜻한 어묵 국물 그리고 부모의 애틋한 자식 사랑얘기로 훈훈했다. 진우는 호떡집 아주머니의 얘기를 얼마나 알아들었을까. 알아듣지 못했어도 자식사랑의 마음은 느끼지 않았을까. 뜻밖의 저녁 간식 시간에 뜻밖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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