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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Feb 02. 2018

반수생 룸메이트와 이튿날

부자여행:경주편#12

늦은 시간이었지만 게스트하우스는 조용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3층으로 올라갔다. 우리 방은 불이 켜져 있었고 사람은 없었다. 아까 우리가 맡아둔 침대 옆 다른 침대 위에 가방이 놓여 있었다. 룸메이트가 생긴 모양이다. 진우와 나는 씻고 양치를 했다. 그러는 사이 어떤 젊은 친구가 방문을 열었다. 서로 멋적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어색함을 지운 건 진우였다.


“형도 여행왔어?”

“아니 할 일이 있어서 온거야”

“아 그렇구나. 무슨 할 일?”


진우의 물음에 머뭇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내가 끼어들었다.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일들을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진우는 질문을 그쳤다. 대신 그 형의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 무슨 사연이길래 20대 초반의 앳된 청년이 관광지 경주까지 와서 혼자 게스트하우스에 묵게 된걸까. 나도 호기심이 일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씻고 잘 준비까지 마친 우린 그냥 심심했다. 열 시가 넘은 시간이라 우리는 잠이 들어야 했지만 룸메이트가 있어서 불도 끌 수 없었다. 진우는 2층 침대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 숙소 안에 비치되어 있는 물품을 만지작 거렸다. 룸메이트 청년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읽고 있었다. 얼핏 보면 옛날 모의고사 문제집 같이 생겼다. 위로 넘기는 문제집이 떠올랐다. 내가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다.


“어디서 오셨어요?”

“전 서울에서 왔습니다.”

“혼자 왔어요? 경주에는”

“원래 살기는 여기 사는데…아! 원래 여기 동국대학교 기숙사에서 사는데요. 내일이 시험이라 아침 일찍 시험장으로 가야해서 여기서 자는 겁니다”

“시험이요? 수능?”

“네. 지금 1학년인데 수능을 다시 보려고요.”

“아~ 반수하시는구나”

“네. 학교 다니다 보니까 가고 싶은 과가 생겼어요. 그래서 시험을 다시 보고 원하는 과에 가려구요”

“멋지네요. 도전하는 게요”

“뭐 그렇지도 않아요. 공부를 많이 못해서요. 대학 동기들 몰래 시험보는 거라 기숙사에서도 못자고 이렇게 나와 있네요.”

“내일 시험보러 가려면 일찍 자야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잠이 안올거 같네요. 아! 저 신경쓰지 마시고 먼저 주무세요”

“아뇨. 괜찮아요. 저희 때문에 불편하시겠네요.”


몇 마디 더 대화가 이어졌지만 그 친구는 대화에 의욕이 없어 보였다. 꿈을 위해 도전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응원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뜸해진 틈을 타 반수생 학생은 책과 펜을 들고 방을 나섰다. 아무래도 로비에서 책을 볼 모양인가 보다. 나는 진우에게 침대에 누우라고 하고 불을 껐다. 커튼으로 창이 가려진 방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어둠에 적응한 눈에 침대의 윤곽이 대충 보였다. 밖에는 차 지나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릴 뿐 적막했다. 오늘 자전거가 피곤했는지 진우는 오늘 여행에 대해 몇 마디 하더니 이내 잠 들었다. 나도 잠깐 눈을 붙여야지 하고 눈을 감았는데 알람이 울렸다. 여섯 시였다. 나도 금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침대에 걸터 앉아 잠을 깨운 후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 어두운 방이었지만 이곳에는 진우와 나 뿐이라는 느낌이었다. 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어제 그 반수생은 벌써 시험장으로 떠났는지 안보였다. 하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그 친구의 침대에는 가방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어제 내가 불을 끌 때와 같은 모양이었다. 청년은 어제 그렇게 나간 이후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어디서 잔 것일까. 밤새 뭘 한 걸까. 여러 가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답은 없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청년이 돌아왔다.


“이제 가려구요?”


조용히 문을 연 청년은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둠에 적응한 눈으로 조심스럽게 가방을 챙겼다.


“네. 지금 나가면 될 것 같아요.”

“시험 잘 보시고 꼭 원하는 대학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청년은 가방을 메고 들어올 때처럼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사라졌다. 밤새 어디서 뭘 했을까? 정작 궁금한 건 물어보지 않았다. 어두워서 청년의 표정을 보진 못했지만 몇 마디 말에 실린 무게감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반수이긴 하지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이라 등록금 냈고 수업도 듣고 있어서 제대로 준비했을 리 없다. 청년은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청년이 방을 나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우가 잠에서 깼다. 침대를 내려와 내 품에 파고 들었다. 덩치만 컸지 아직은 애기같다. 진우한테서 나는 냄새에 다시 행복감이 찾아왔다. 오늘 일정을 시작해야지, 뭐부터 해야 할까. 내 생각을 읽은 건지 진우가 말했다.


“아빠. 조식 먹어요”


조식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잠시 더 누워 있다가 내려가기로 했다. 맨날 일찍 일어나는 녀석이라 배도 일찍 고픈가보다. 게스트하우스 조식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지만 진우와 나는 짐을 챙기고 내려갔다.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 가는 게스트하우스의 식당에서 여러가지 물품들이 어디에 비치되어 있는지 살폈다. 게스트하우스마다 조식의 종류가 조금씩 다르고 식기를 다루는 방법이 달라 주방 벽에 붙어 있는 매뉴얼들을 잘 읽고 깨끗히 사용해야 하므로 시간이 조금 걸렸다. 진우는 옆에서 빨리 달라고 난리다. 목적은 계란후라이였다.


토스트 두 개씩, 계란후라이 하나 씩, 딸기쨈 하나 씩을 그릇에 담아 식탁에 올렸다. 여기에 따뜻한 둥글레차 한 잔씩 곁들었다. 볼품없는 초라한 아침밥이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으면 어쩐지 맛이 난다. 진우는 노릇노릇 잘 익은 식빵에 딸기쨈을 펴 바르고 한입 베어 먹었다.


“어때? 맛있어?”


진우는 입을 오물오물거리며 왼쪽 엄지를 치켜 세웠다. 사실 값싼 식빵에 딸기쨈이 뭐가 그리 맛있을까도 싶지만 음식맛이라는 게 재료의 맛과 재료들의 조화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어디서 먹느냐도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진우가 최고의 맛이라고 칭찬한 건 나와 함께 이곳 경주의 어느 게스트하우스가 주는 환상적인 감미료 덕분일 것 같다. 나 또한 진우와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먹는 음식들은 최고로 맛있다. 그리고 이렇게 먹는 음식들은 모두 추억이 되는 것 같다. 진우는 여행 후에도 가끔씩 여행 중에 먹었던 음식들을 기억하고 또 먹으러 가자고 조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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