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보영 Feb 20. 2018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의 특별한 아침식사

진우 다리를 주물러 주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어도 내가 못 일어날 판이었다. 그런 나와 달리 진우는 7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 활동을 개시한 듯하다. 시간을 확인한 나는 아침식사가 시작되는 8시까지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우가 홀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심심해할 것 같은 생각에 미치자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가 잠잠해졌다. 진우는 홀로 2층 놀이방에서 어제 보던 책을 읽는 모양이었다. 분명 책을 읽고 있을 텐데도 조용해지자 마음은 불안해 졌다. 8시가 되려면 조금 남았는데 그냥 자리를 털고 일어나 2층으로 향했다. 책을 읽는 진우와 조식을 준비하는 호스트만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호스트의 밝은 환영인사와 함께 여행지에서 첫 아침을 맞았다.


진우와도 아침인사를 나눴다. 나는 진우의 상태부터 조심스레 살폈다. 다행히 진우는 어제 밤과 달리 컨디션이 좋은 모양이었다.


“괜찮아?”
“배고파요. 아침 언제 먹어요?”


라며 아침부터 먹었으면 좋겠다는 동문서답이다. 우리 대화를 들은 호스트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며 양해를 구해왔고 난 괜찮다고 했다. 20여 명은 족히 먹어도 좋을 만큼 많은 접시들이 셋팅되어 그 위에 귤과 사과가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호스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토스트를 노릇노릇하게 구워내고 있었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게스트가 스스로 아침을 차려먹는 것이 아니라 호스트가 아침을 차려준다. 커피나 녹차와 함께 치즈 듬뿍 들어간 토스트, 계절과일 두어 개와 귤이 항상 올라간단다. 호스트가 차려주는 아침식사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가 옆에서 진우와 마실 음료를 따르고 있는 사이 어느새 우리를 위한 식사가 마련되었다. 호스트는 과일만 미리 준비해 두고 토스트는 게스트가 식당에 오면 그 때 굽기 시작한단다. 따뜻한 토스트를 먹게 하기 위한 배려심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 앞에 아침 식사가 차려졌다. 차려져 있는 모습과 과일 색깔까지 예뻐서 먹기 아까울 정도였다. 호스트가 직접 마련해 주는 정성 듬뿍 담긴 아침이라 그런지 토스트나 과일이 특별히 맛있을 리 없는데도 진우와 난 맛있게 접시를 비웠다. 그 사이 다른 게스트들이 아침을 먹기 위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음식이 차려진 접시를 보고 다들 예쁘다며 작은 감탄을 내뱉었다. 너도나도 음식에 대한 의식처럼 사진을 한 장씩 찍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그 때 호스트처럼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조식 접시를 들고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어색한 아침인사를 나눈 후 아저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방학했어?” 

역시 진우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요.”


진우는 사실대로 말했다. 12월 말, 우리 때는 이맘때면 언제나 방학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왔으니 방학이 분명할 거라는 생각에서 한 질문이리라 생각했다.


“방학도 안한 애를 수업 빼먹고 그냥 왔어요.”


내가 웃으며 진우의 대답에 대해 설명했다.


“학교도 안 가고 아빠랑 제주도 와서 좋겠네. 몇학년이야”


간단한 호구조사를 마치고 머쓱해질 무렵 나는 이분이 호스트일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그 정체가 궁금한 나머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게스트세요? 호스트세요?”

“아! 저요. 게스트도 아니고 호스트도 아닙니다. 그냥 가끔 아침 얻어 먹으러 오는 옆집 사람입니다”


그가 마음씨 좋은 미소를 지으며 웃어 보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호스트는 우릴 바라보고 흐믓하게 웃고 있었다.

그분도 제주사람은 아니었다. 제주가 좋고 사진이 좋아 무작정 육지를 버리고 섬으로 들어왔단다. 제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제주도가 주는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지는 모양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그 어떤 곳보다 멋진 풍광을 선사하는 제주를 사진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인위적인 변형이 없어도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움을 주는 제주가 좋았고 자신은 그것을 그대로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요즘이 행복하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럼 어떻게 먹고 살죠라는 생존본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사회적 체면이라는 이성이 입을 꾹 다물게 했다.


넉살 좋은 중년 아저씨의 이야기는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대부분의 게스트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사진가가 만나는 제주의 모습과 그의 삶이 오버랩되면서 다들 어서 빨리 제주를 만나고 싶어졌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 여행자들을 충동질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놀이방 전면 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거센 바람이 파도에 하얀 포말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밖은 많이 추울 것 같은 생각이 마구마구 들 때쯤 아침식사를 마친 진우가 어서 자전거를 타러 나가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난 생각했다. 밖에 저 바람부는 모습을 보라고. 우리 그냥 게스트하우스를 즐기는 게 어떠냐고. 내 생각과 달리 진우는 벌써 자전거 헬멧을 두 개나 들고 내 앞에 서서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도에서 첫날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