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이>
한동안 거리를 지나면 '** 비어'가 한 집 건너 즐비했다. 원조 '** 비어'가 인기를 끌자 너도 나도 그 비슷한 이름과 컨셉으로 가게를 연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원조조차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요즘 예능은 요식업 트렌드와 비슷하다. 공중파고, 종편이고, 케이블이고를 가릴 것없이 어떤 컨셉 예능이 인기를 끌었다 싶으면 여기저기서 그 비슷한 예능들이 우후죽순이다. '슈퍼 스타'가 '미스터 트롯'이 되었고 다시 이젠 '국민 **'으로 트롯과, 성악, 대중 가요 등의 장르를 불문하고 연신 등장한다. 한적한 시골을 찾아다니는 연예인들이 조촐한 삶을 구가하는 예능만 해도 벌써 몇 개째인가. 그만큼 새로운 구성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단 것일 수도 있고, 또 짝퉁 ** 비어처럼 트렌드에 얹혀가는 것이 그나마 위험 부담이 적어서 일 수도 있겠다. 그런 가운데 신선한 '토크쇼'가 한 편 등장했다.
알고보니 찐우정
아직은 '파일럿'이라는 수식어가 달린 jtbc의 <우리 사이>이다. <우리 사이>가 토크쇼임에도 왜 신선할까? 우선 첫 회 '임철수, 최성원, 그리고 박해수'가 등장했다. 이 낯선 세 사람의 조합은 무엇일까? <빈센조>에서 국정원 직원으로 '씬 스틸러'가 되었던 임철수가 일일 mc가 되어 초대한 두 사람, 알고 보니 이 세 사람은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었다. 심지어 임철수와 박해수는 한 집에서 10년을 같이 살았다 한다.
이렇게 <우리 사이>는 우선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내세운다. 세 사람의 배우들 면면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들이 지난 시간 가꿔온 '우리'라는 관계는 생소하다. <우리 사이>는 '철수와 그외'를 내세우는 임철수의 mc로 세 사람의 지난 시간과 우정의 결을 펼쳐보인다.
사실 친한 사이일 수록 정작 속을 터놓는 경우는 드물다. 맡았던 캐릭터의 한 동작만으로도 서로의 캐릭터를 대번에 알아맞추는 진국 친구들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진솔한 속내는 늘 눙치는 농담 속에 넘어가기가 십상이다. <우리 사이>는 바로 그렇게 가까울 수록 점점 더 알기 어려워지는 '속내'를 터놓는 시간을 만든다. 바로 '사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42개의 질문이다.
질문이 왜 이렇게 많냐는 볼멘 소리가 무색하게 임철수가 준비한 질문과 답들 사이에서 시청자들은 이제는 익숙해진 세 배우의 고단한 여정을 살펴보게 된다. 친한 사이지만, 그래서 더 어려웠던 이야기들이 42개의 질문들로 풀려나간다. <응팔>의 노을이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던 배우 최성원, 그가 드라마에 출연하던 중 백혈병을 얻어 활동을 중지했다는 소식은 알려졌었다. 그런데 겨우 치료를 마치고 다시 활동을 시작한 그가 다시 재발을 하는 바람에 다시 한동안 우리 곁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건 금시초문이다.
대학로에서 만나 매주 함께 공부하고, 연기를 이야기하던 친구들은 최성원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며 모임을 중지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다시 재발했다는 결과를 받아든 최성원이 써본 '유서', 그 유서를 전해줄 사람이 임철수였다고 이제서야 속을 터놓는다. 연습에 앞서 한 시간 먼저 나온 임철수, 그런 철수보다 조금 더 일찍 나왔던 최성원의 성실함, 그리고 여전한 연기에 대한 간절함도 42개의 질문을 통해 풀려나온다. 그리고 이른 복귀를 안타까워하다, '괜찮아', 그만큼 '연기가 좋았겠지'라는 해수 형의 다독임은 또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들을까.
이제는 다들 얼굴이,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이 되었지만 그들의 지난 시간이 녹록했던 건 아니다. 80번까지만 세어봤다는 오디션, 그걸 또 떨어진 날, 함께 사는 형에게 신경질을 내고, 그래서 눈물을 훌쩍이던 임철수가 들었던 문 밖의 또 다른 훌쩍임, 해수 형은 라면을 먹었다고 둘러대지만, 눈밝은 이라면 발견했을 손때 묻은 최성원의 <배우와 목표점>속에 두 번의 '포기하지마'처럼 줄타기처럼 아슬아슬 연기라는 목표를 놓치지 않으려는 발버둥의 시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익숙한 배우들, 그들의 오랜, 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생소한 우정, 그리고 친해서 어색한 진심들이 차근차근 풀려나오는 시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쌓아올린 우정과 열정이란 시간의 여정에 감동케 만든다.
60년만에 전해진 속내
그렇게 특별한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에 이어, 유인나, 이용진, 아이키가 mc를 보는 스튜디오에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인플루언서가 등장한다. 그런데 80의 노부부이다.
인스타에서 틱톡을 좀 해본 이들이라면 친숙한 이찬재 할아버지, 안경자 할머니이다. 80의 노구로 아이키와 호흡을 맞춰 춤을 추는 것이 낯설지 않은 두 분, 춤꾼일까? 230만 팔로워을 이끄는 두 분은 재기발랄한(?) 댄스로도 화제몰이를 하지만, 그 보다는 이찬재 할아버지의 그림에 안경자 할머니의 글을 곁들인 게시물이 더 감동적이다. 늘 함께 해서 스스로 '간고등어' 부부라는 두 분은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만나 4년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60여 년의 세월을 함께 해왔다. 손주들을 위해 쓴 글과 그림, 그런데 그 작품에 전세계 230만 명이 화답을 했다.
평범한 유명인 두 분, 그런데 60년을 살아 '간고등어'라는 두 분이지만, 정작 아내 안경자 씨는 한평생 함께 해온 이찬재 할아버지의 속내가 궁금하단다. 뒷모습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것 같지만, 그래서 더 궁금한 그의 속내, 역시나 42개의 질문으로 살펴간다.
이찬재, 안경자 할머니의 42개 질문은 곧 그들의 역사가 된다. 대학 시절 함께 만나 처음 같이 걷던 길, 그리고 군대를 간 이찬재가 안경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찬재는 자신이 안경자에게 보내는 그 우표 한 장을 붙이며 비로소 '실재'하게 됨은 고백한다., 그래서 '반신(半身)'이 된 이찬재, 그에 대해 ' 이렇게 우리가 지난 한평생 서로의 반신으로 살아왔다'고 안경자가 60년 만에 답장을 한다.
친한 이들을 모아놓은 여느 토크쇼라면 아마도 다르지 않은 이야기가 풀려 나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가 주고 받는 42개의 질문을 통해, 친하기에 어색했던 속내들이 답안을 쓰듯 조금씩 풀려나가며 외려 출연자들이 맺어온 관계의 깊이가 울림을 가지고 전해진다. 토크쇼라는 형식을 신선하게 풀어내고자 하는 제작진이 가진 고민이 그대로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감동을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