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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May 19. 2023

오~ 보고서 인생, 오~ 담백한 마음

- <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오~ 즐거운 인생~ 오, 행복한 마음~'


방영되고 있는 jtbc 드라마 <나쁜 엄마> 주인공 진영순 씨(라미란 분)의 핸드폰 벨소리이다. 오랜만에 듣는 나미의 흥겨운 목소리, 귓가에 맴돈다. 극중 주인공의 삶은 기구하다. 하지만 드라마는 기구함에 방점을 찍는 대신, 저 벨소리의 가사처럼,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 



얼마 전 동생이 콘도 사용권이 생겼다며 1박 2일 여행을 가자고 했다. 다들 ok, 그런데 날짜를 보니 평일이었다. 결국 수업을 세 개나 조정해야 해서 도저히 힘들겠다고 다녀들 오시라 했다. 



이틀 동안 수업이 세 개나? 자소서를 몇 수 십 개를 쓰고, 이 나이에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다니던 게 엊그제같은 데 어느 틈에 일주일 내내 수업으로 뺑뺑이를 도는 처지가 되었다. 오후에 지역 아동센터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이랑 곱셈, 나눗셈 씨름하다, 저녁 때가 되면 중학생을 붙잡고 정수가 어떻고, 유리수가 어떻고 그러고 지낸다. 





여행을 못가도 아쉬울 것 없는 


바야흐로 오월, 하루가 다르게 나뭇잎들이 푸르름을 더해가는 시절이다. 어느새 30도를 육박한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나무들이 무성한 그늘은 시원하다. 그런데 3월 새 학기를 시작한 아이들은 이제 슬슬 긴장감이 풀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저녁에 수업을 가는 한 집은 둥그런 밥상을 펴놓고 공부를 해야 한다. 다 늙어 새삼스레 상 앞에 앉아서 두 시간을 가르치니 허리, 다리들이 비명을 지른다. 다리를 접었다 폈다, 그래도 수업을 마치고 일어서면 아이 앞에서 염치 불구, '아구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절뚝절뚝 그 집 현관 쯤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다리가 펴진다. 



매 주 두 번씩 방문하여 학생을 가르치는 배움지도사로 하는 수업이다. 소득 분위 하위 계층 중 학습적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되어 주는 일이다. 지난 번 글에서 자격증 하나 없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그래도 찾아보니 그간 내가 해온 경력이라면 할 수 있는 일 중에 배움 지도사가 있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를 뽑아줄까? 두려운 마음으로 면접장에 섰을 때, 면접관이 나에게 물었다. 왜 이 일을 하려 하냐고? 작정한 것도 아닌데, 그 질문에 '이제는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답했다. 할 수 있는 때, 그 간단한 답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앞서 오월의 나무가 좋다 했는데, 지난 일 년 여, 나에게 가장 큰 스승이 있다면 나무가 아니었을까. 가끔 길을 가다 무성한 나무들을 보며 '니들이 내 부적'이다 말하곤 한다. '부적'이라니, 인스타에서 본 이른바 '신박한' 해석에 따르면 부적이란 '무의식에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그 무언가'란다. 그 무엇이든 자신이 무의식에 전하는 메시지를 잊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부적이 된다니 그럴 듯하지 않은가. 



그렇담 '부적'으로서 나무가 내게 말해주고 있는 건 무얼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너는 그저 너의 할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내가 할 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그래도 이러니 저러니 마흔 무렵부터 아이들을 가르쳤으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겠다. 그리고 두 아이들이 장성해서 이제는 저마다의 길을 가고, 가정적으로도 홀가분해졌으니, 그저 내 한 몸, 나 하나만 제대로 간수하면 될 때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거기에, 이제 어언 육십, 인생의 한 사이클을 살아낸 내가 나머지 인생에 조금 더 소탈하게 해볼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소탈하고 담백하게 


육십 무렵에 선택한 일은 앞서 젊은 시절, 혹은 중년의 시절에 선택하는 일과 입장이 좀 달라지는 듯하다. 누군가 나에게 다시 이십 대로 돌아가고 싶냐면 나는 기꺼이 거절한다고 할 것이다. 나에게 이십 대는 너무 벅찼다. 시대는 막막했고, 그 시대를 뚫고 거기에 내 자신의 미래까지 감당해야 하는 그 시절에 나는 어찌 살아야 할 지 몸둘 바를 몰랐다. 그런가 하면 중년의 나는 무거웠다. 내가 낳아놓은 아이들, 내 가정이라는 의무가 나에게 얹혀져 늘 나를 짖눌렀다. 



그렇다. 젊은 시절도 그렇고, 중년의 시절도 그렇고, 그때의 나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고,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렸다. 발은 현재를 딛고 있었지만, 미래를 향해 이 삶을 끌고 나가야 한다는 욕심이 앞섰다. 이제 육십 즈음의 나는 그렇게 젊은 시절 나를 휘감쌌던 '욕망'으로 부터 한결 홀가분해진 처지가 되었다. 결국 궁극에 이르는 건 죽음이요, 그 시기까지 나를 잘 보살피다 가면 되는 시기가 되었다. 더 잘 살아야 할 것도 없고, 더 이루어야 하는 것도 없어, 그저 내가 마음가는 것들을 조금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얼 이루어야 한다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 계층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어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고 내가 할 수 있다면 해보자는 마음의 여력이 생긴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초등 중학년이 되도 문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고, 공부라는 걸 해보지 않아 한 주만 지나면 리셋되어 해맑게 웃는 아이들에게 예전 내가 그랬듯이 불도저처럼 밀어부치다가, 스스로 반성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배움지도사가 그저 공부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하는 일인데 혹시나 그런 면에서 무심하지 않은가 반성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제 할머니뻘 나이가 되니 아이들이 밉지 않다. 예전에 비해서는 덜 강팍한 어른이 된 것도 같다 이러고 자화자찬? 



어제 오늘, 아침부터 담당 공무원이 연락을 했다. 선생님 보고서를 보다보니 아이 상황이 쉽지 않은 듯하다고 고생하신다고. 질풍노도의 시기니 그렇죠 하면서, 그래도 담당하시는 분이 상황을 알고 계셔야 할 듯해서 보고서는 가급적 자세히 쓰려하다보니 구구절절 쓰게 된 것같다고. 그렇다. 나랏돈(?)을 받으며 일을 하다보니 매일 써야 하는 게 그날의 보고서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뚝딱 저녁을 해치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적어간다. 조금 전 가르쳤던 내용인데도 가물가물, 궁여지책으로 가르쳤던 목차를 찍어오기도 한다. 어떤 날은 잘 따라온다고 했다가, 어떤 날은 다 까먹어서 발음부터 써주면서 했다고 하고. 롤코다. 



일어나서 수업가고, 아이들이랑 씨름하다 보면 하루가 저문다. 돌아와서는 보고서를 붙잡고 끙끙. 형제들이랑 놀러가는 거 아쉬워할 새가 없다. 그렇게 일주일이 후딱, 덕분에 삶이 참 담백해져 간다. 매일 아침 기도한다. 오늘 하루도 성실하게 살아낼 수 있도록. 나도 나무처럼 그저 오늘의 내 할 바를 하며 이 시절을 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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