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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Jun 11. 2023

떠나요~  혼자서~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 웨이브 <박하경 여행기> 

배우 이나영이 오랜만에 돌아왔다. 웨이브의 <박하경 여행기>, 이나영이란 배우다운 작품이다 싶었다. 덕분에 또 OTT 채널에 신상을 팔고 돈을 지불했다. 



포털에서 재미있는 기사 제목을 봤다. 선생님은 똑같은 선생님인데, 라는 기사의 제목이었다. 내용인즉슨 똑같은 선생님인데 의사 선생님이 되기 위해 자식을 시골로, 외국으로 유학 보내느라 난리인 반면, 그 어렵다는 교사 임용 시험을 거치고서도 한 해에 그만두는 선생님이 수두룩하단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다보니 그만 두는 선생님들의 처지가 이해가 됐다. 21세기의 아이들뿐인가, 19세기 형 잡무와 위계질서는 어떻고. 20세기의 학부형들도 빼놓을 수 없겠다. 





박하경 선생님(이나영 분)도 그렇다. 심지어 국어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앞에서 교과 내용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은 '안드로메다', 그래도 보면서 자는 얘들이 많지는 않네 했다. 내 학창 시절 국어 시간을 떠올리면 늘 졸음과의 사투였으니까. 그렇게 1주일을 보낸 박하경 선생님, '사라지고 싶다~!'. 그렇게 박하경 선생님의 일주일에 단 하루 여행기가 시작된다. 



떠나요~ 단 하루만이라도 


첫 여행지는 산사이다. 요즘 직장인들이 많이 간다는 템플 스테이, 비록 하루라도 마음을 다잡기 위해 신청했다. 생소한 환경, 생소한 환경보다 더 생소한? 혹은 좀 이상한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도 박선생님은 템플 스테이에서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버리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법당에서 이루어지는 마음 수련의 시간, 스님은 말씀하신다. 집중하기 어려우면 수를 세라고, 하나, 둘, 셋..... 그렇게 10에 이르고, 또 반복하고....... 그런데 선생님의 마음은 그 10에 이르지 못하고 자꾸 새어나간다. <박하경 여행기>는 이나영이라는 배우가 가진 색깔도 색깔이지만, 그 색깔이 이종필 감독만의 컬러와 만나, 단 하루 여행기라는 쉼표같은 작품으로 탄생했다. 이 장면, 박하경이 템플 스테이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선법에 집중하지 못하고, 채 7을 넘기지 못하고 마음이 새어나가는 장면, 아마도 보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그려낸다.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이지만, 연출은 우주 공간에서부터 자연에 이르기까지 다큐적 장치를 통해 여행이라는 공간을 확장한다. '사라지고 싶다'는 단 한 마디로 떠난 여행, 단 하루의 여행이지만, 그 시간을 통해 지나온 시간과, 다른 이, 다른 세계의 시간까지 경험하며 삶의 휴식과 여유를 얻게 된다는 것을 드라마는 잘 보여주고 있다. 



학교에서 지친 박하경은 산사의 길목에 정성스레 쌓은 돌탑을 보고 '발로 차버리고 싶다'고 되뇌인다. 이나영 배우만큼 그 대사가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여전히 이나영이란 배우만의 코드를 적절히 살린 드라마는 그래서 일상을 벗어나 단 하루의 일탈을 감행하는 박하경이란 인물을 잘 설득해 낸다..





그렇다면 돌탑을 발로 차버리고 싶다던 박하경은 어떻게 됐을까? 도무지 가부좌를 틀고 마음을 다스리는 게 되어지지 않던 박하경은 조용히 선방을 나온다. 그리고 묵언 수행을 하던 여성을 따라 이리저리 산 속을 거닌다. 선방에서 채 열도 세지 못했는데, 박하경의 눈 속에 담긴 산사, 아니 산은 그대로 그녀의 마음을 달랜다. 돌아내려오는 길, 그녀도 돌 무더기 위에 자신의 돌을 하나 얹을 수 있다. 



때론 여유를, 때론 답을 


채 30분이 돼지 않는, 박하경이란 인물의 동선을 따라 하루를 보내는 시간을 통해 보는 이도 반복된 일상의 리듬에서 벗어나는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그게 그저 쉼이 될때도 있지만 때론 그 시간을 통해 답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선생님 박하경, 그런데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학생과의 면담 과정에서 여느 어른들과 다르지 않은 말을 했다. 우선을 대학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앞선 탓이다. 그러자 학생은 한 술 더 떠서 자퇴하겠단다. 이를 어쩐다. 또 길을 떠날 수 밖에. 



그렇게 떠난 길에서 오래 전 제자를 만난다. 그림을 그리고 퍼포먼스를 하는 제자는 전시회 팜플렛에, 자신을 '불나방'이라 정의한다. 그런데 불나방같은 제자의 전시회는 여의치않다. 지인이라 하는 사람들도 그녀를 이해해 주지 못했고, 심지어 선생님이니 이제 그만하라 충고 좀 해달라는 부탁까지 받는다. 그래도 일반인 관객들이 와서 펼쳐진 전시회, '라구라구~' 하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춤사위를 펼치는 제자 연주(한예리 분)에 다들 '왜 저래?'하는 반응이다. 드디어 박하경의 앞에 선 연주, 외계인의 수신호와 같은 퍼포먼스를 하며 간절하게 박하경을 응시한다. 



연주가 전시회 팜플렛에 쓴 불나방이란 표현은 박하경이 한 말이었단다. 너는 불나방같구나, 빛을 보고 뛰어드는, 그리고 하경은 말했단다. 칭찬이야, 너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예술을 하고 싶은 거잖아 라고. 그 시절 유일하게 연주를 이해해준, 그래서 연주로 하여금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줬던 선생님 박하경은 이제 다시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려 '라구라구'하고 응답한다. 하경의 응답으로 생뚱맞은 해프닝이 될 뻔했던 전시회는 다같이 즐기는 '예술적 퍼포먼스'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자퇴하겠다는 학생의 전화를 받은 하경은 묻는다. 그래 만들어 놓은 작품은 있고? 





8부작에 이르는 시즌 1의 여행들, 해남, 군산, 속초, 제주 등 길 위의 여정이지만, 동시에 그 길 위에 있는 이들과 만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선생님, 혼자 사는 여성, 그리고 나이든 부모님이 있는, 그러나 이제 나이들어 가는 박하경은 그 다른 공간, 다른 이들을 통해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떠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삶의 과실이다. 



때론 설레이는 로맨스에 대한 기대감을 얹기도 하고, 혹은 오래전 잊었던 젊은 날의 우상을 우연히 조우하기도 한다. 또는 여전히 마음 속에 자리잡은 우정을 떠올리기도 하고, 때로는 해프닝같은 사건 사고를 벌이기도 한다. 그렇게 여행은 선생님 박하경으로 사는 우물 밖으로 잠시 걸어나오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보는 우리 역시 박하경의 여행을 통해 나의 우물 밖으로 나와 잠시 주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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