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산동>
1962년 제 1차 경제개발 계획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출만이 살 길이다'를 내세운 정부는 수출산업을 위한 전진기지로 '공단'을 조성했습니다. 1963년 구로동 일대 0.992㎢의 땅이 매입되는 걸 시작으로 우리 현대사의 현장, '구로 공단'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구로동을 시작으로, 가리봉동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혀간 구로 공단은 이제 그곳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산업구조의 변화로 70년대 후반 11만명이 근무하던 단지는 1995년에 이르러서는 4만 여명만이 근무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imf 이후 벤처 기업들이 이곳으로 몰려들며 이제는 '구로 공단' 대신, '서울 디지털 산업단지'가 되었습니다
방 한 칸에 부엌 딸린 작은 신혼집에서 시작된 성남살이,
잠실에서 구종점까지 두 시간씩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상대원 고갯길은 시내버스가 오르지 못해 내려서 걸어야 했다.
걸어서 올라가면 끝이 보이지 않던 고갯길, 지금도 고갯길만 보면 그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 이묘숙
80년대 재벌들 주도로 중공업단지로 거듭나게된 '구로 공단'의 작은 공장들은 '독산동' 등으로 그 자리를 옮깁니다. 이른바 '준공업 지역'이던 독산동에는 공장들 사이 사람들이 사는 주거들이 뒤섞인 독특한 주거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난개발', 그런데 그 '난개발'이 그 동네에 살던 아이들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겨져 있을까요?
한국 현대사는 그 시대를 살던 이들에게는 어떻게 기억될까요? 비약적 경제 성장, 하지만 그 성장의 주 동력이었던 노동자들의 삶은 열악했고, 이런 질곡을 뚫고 나가기 위해 노동자들은 뭉쳤습니다. 1983년 독재정권의 탄압과 블랙리스트 철폐를 요구하며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섰습니다. 1985년부터 시작된 구로 동맹 파업은 한국 전쟁 이후 최초의 동맹 파업으로 우리 노동 운동은 물론, 민주화 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거시사'로서의 구로공단, 그런데 그곳에 살던 이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현대사'의 현장은 어떨까요?
숲과, 사람과 고양이와 시끌벅적한 시장이 있는 양지동,
앞만 보고 달리던 내게, 조금은 열린 마음이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 곳,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아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곳,
- 최연희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우리집에 온 마고할미>의 유은실 작가가 자신이 어린 시절 살던 독산동이라는 동네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구로공단 못지 않게 현대사 속 '공단'으로 자리매김한 성남에서 자란 오승민 작가가 40여년 전 그림책 속 주인공 은이가 살던 독산동을 재현했습니다.
우리 동네는 우리 은이가 잘 알지
'국민학교'를 다니는 은이, 사회 시간에 '이웃에 공장이 많으면 어떨까?'라는 시험 문제가 나왔습니다.
① 매우 편리하다
② 조용하고 공기가 좋다
③ 시끄러워 살기가 나쁘다.
저도 '국민학교' 시절 저런 사회 시험 문제를 푼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당연하게 세 번 째 문항을 답으로 선택했던 기억이 나네요. 으쓱했었죠. '정답'을 맞췄어라며. 우리 사회는 공단과 그 공단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큰 빚을 졌으면서도 그곳에 대한 사회적 기억은 '시끄러워 살기가 나쁘다'라고만 정의내렸습니다.
가끔은 쥐가 나오던 지하 방 두 칸의 집,
두 아이를 키우며 많이도 웃었었다.
초라한 줄도 모르고 아이 돌잔치에 친지들을 많이도 초대했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 이인제
그런데 독산동에 사는 은이는 자신있게 첫 번 째 '매우 편리하다'로 골랐습니다. 당연히 틀렸지요. 은이는 낙담합니다. 교과서에도 나왔다지만, 선생님은 공장이 많으면 얼마나 편리한데, 그걸 모르시다니.
공장과 주거지가 혼재되어 있는 동네, 그래서 부모님들은 일하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챙깁니다. 아이들은 다쳤을 때 얼른 부모님께 달려갈 수도 있습니다. 다친 친구를 데려가자 친구 엄마가 착하다며 아이스 크림을 사주셨습니다. 골목 담벼락에 기대어 나란히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 어디 그뿐인가요. 할머니들이 부업으로 하시는 인형 만들기, 작업을 하다 망가진 인형은 아이들 차지입니다. 인형 눈이 없으면 근처 '단추 공장'으로 달려가면 됩니다. 혼자 잠들어도 괜찮아요. 문만 열면 공장이 있고, 그곳에는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그저 방 한 칸이 필요해서 머물게 된 곳,
처음엔 양지바른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인생의 쓴 맛을 달게 삭힐 줄 아는 나이가 되고 보니,
삶의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늙어갈 이웃들이 있다.
그리고 언제나 지그시 나를 지켜보는 남한산성도
- 이혜경
밖에 나가면 순둥이,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예민보스'였다는 아이 유은실은 1974년 사당동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때 독산초등학교에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독산동으로 와서 스무 살까지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을 그대로 그림책으로 만든 <나의 독산동> 속 작가의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 아닙니다. 대서소라고 쓰인 가게에 휠체어 탄 아버지가 앉아 계십니다. 관절염으로 학교 선생님을 더는 할 수 없으셨던 아버지, 어머니는 그림책 속 공장에서 일하셨습니다. 그런 가족의 역사를 겪은 독산동에서의 시절이 쉽기만 했을까요.
하지만 어린 은이의 눈에 비친 독산동은 '난개발'의 공단이 아니라, 모두가 어우러져 사는 삶의 공간일 뿐입니다. 사회 시험을 보고 돌아와 '외람된' 질문을 던진 은이를 부모님은 어루만져 주십니다. '우리 동네는 우리 은이가 잘 알지'라며. 그리고, 은이가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보관하는 파일 제일 앞에 '틀린 시험지'를 끼워넣어주셨습니다. '이 다음에 어른이 될 때까지 이 시험지를 잃어버리지 마라', 그 잃어버리지 않은 시험지는 이렇게 <나의 독산동>이 되었습니다.
어디 은이뿐일까요,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두 은이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내 어린 시절 잠시 머물던 청량리 휘경동에서는 '석탄산'이 보였습니다. 주변에 연탄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 옆에는 '우유 공장'이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면 '환경 오염'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입지적 조건입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똥이 뚝뚝 흐르는 똥지게와 마주치던 동네였습니다. 어른들 몰래 동네 만화방에 드나들던 시절, 그런 시절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림을 그린 오승민 작가는 1974년 영암에서 성남으로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 아름답던 월출산의 풍경이 하루 아침에 달동네 천막과 쪽방촌으로 바뀌고 깨끗한 물이 졸졸 흐르던 냇가가 쓰레기가 떠밀려 오는 천변 풍경으로 바뀌었다지요. 그런데 작가는 말한다. 아이들은 그런 '환경'에서도 재밌고 즐거운 일을 찾아낸다고.
<나의 독산동>은 어른들과 함께 한 '그림책으로 인문학 하기' 수업' '현대사' 부분에서 골라 본 책입니다. 이 책을 함께 읽은 이들은 오승민 작가의 그 '성남'에서 오랜 세월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기억되는 성남의 시작, 그리고 구로 공단처럼 우리 현대사의 대표적 공단으로 성장한 도시, 그곳에서 젊음과 청춘을 보내셨습니다. 그분들에게 성남은 그저 독산동처럼 공업단지를 넘어 저마다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삶이 곧 미시사로서의 우리 현대사입니다.
찬란한 이십 대, 어른의 시작 삼십대, 그리고 잘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달려온 사십대를 함께 한 곳,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지는 나의 보물들과, 눈길 닿는 곳 어디든 사연 하나씩 만들어 준 곳,
그리고 여전히 오십 대의 나를 만들어 주고 있는 사랑스런 나의 양지동
- 김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