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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Oct 09. 2023

봉지'의 '충실한 일생'?

- <나는 봉지>, <작은 종이 봉지의 특별한 이야기>, <비닐 봉지 하


대형 마트나 백화점에서는 비닐 봉지 사용이 중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재래 시장만 가도 단돈 천 원짜리에  인심쓰듯 '비닐봉지'가 따라옵니다. 백화점에서 비닐 봉지 대신 사용되는 '종이 봉지'는 괜찮을까? 그 역시도 '재활용'이라지만 물건을 담아 온 뒤로는 더는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것들이 '일회용'이란 이름으로 한번만 씌여지고 버려지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너무 쉽게 사용되고 버러지고 잊혀지고 있습니다.' - <나는 봉지> 


<곰씨의 의자>를 통해 드러내기 쉽지 않은 '마음'의 이야기를 형상화시켰던 노인경 작가는 <나는 봉지>에서 우리가 쉽게 쓰고 버리는 '봉지'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돌아온 아이가 들고 온 노란 봉지, 장을 봐온 물건을 덜어내자 '구겨지고 돌돌 말리고......', '여기까지야', 물건을 담는 용도가 끝내고 버려진 봉지들, 이제 끝인가 했는데 그 중 하나, 노란 봉지가 살금살금 바깥 세상을 향한다. 손잡이가 어느새 발이 되는가 싶더니 바람을 품은 봉지가 쓩~ 



'안녕?', 마치 세상 구경을 처음 나온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노란 봉지는 새들과 아이, 어른을 가리지 않고 반긴다. 거리를 휘젓는 노란 비닐 봉지는  마치 주인을 잃은 노란 풍선같다.  아이들과 노닐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버려진 개도, 마음이 아픈 이도 위로해주고 품어주는 봉지, 신나게 날아가던 봉지가 안테나에 걸리자 아끼던 풍선이 걸린 것처럼 마음이 덜컥, 땅바닥에 떨어진 봉지가 지나가는 이들의 발 아래 짓밟히니 안타깝다. 그저 비닐 봉지일 뿐인데, 그 여정을 따라가다보니 그저 비닐 봉지가 아닌 게 된다. 하늘로 날아간 풍선이 아련하듯 '집'이라고 돌아온 노란 비닐 봉지가 반갑기까지 하다. 



'많은 것들이 너무 쉽게 사용되고 버려지고 잊혀지고 있습니다. 가끔 살아있는 것도요. 모두가 일생을 충실히 살아낼 수 있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렇게 노인경 작가는 끝을 맺는다. 노란 봉지의 긴 하루, 그에게는 '충분한' 일생이었을까? 



 








   








  종이 봉지와의 긴 여정 - <작은 종이 봉지에 특별한 이야기> 


'봉지'의 삶에도 충분한 기회가 있을까? <나는 봉지>가 봉지의 일장춘몽이라면 좀 더 긴 '일생'을 산 봉지도 있다. 바로 <작은 종이 봉지의 특별한 이야기>이다. 



숲 속의 키 큰 나무 한 그루가 여러 공정을 거쳐 작은 봉지로 탄생되었다. 그리고 식료품 가게에 간 한 남자 아이와 만났다. 소년과 봉지의 '긴 여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림책의 소년은 손전등을 담아온 종이 봉지에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간다. 하트를 그려넣은 소년만의 특별한 종이 봉지가 된 '평범한 종이 봉지', 소년은 어른이 되었고 사랑하는 이를 만났다. 여전히 소년과 함께 한 종이 봉지에는 이제 하트가 두 개 그려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세 개의 하트를 지닌 종이 봉지는 여전히 아빠가 된 소년과 함께 한다. 



나이가 들고 주름이 늘듯이 종이 봉지에도 주름같은 '구김'이 생기고 쭈글쭈글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종이 봉지'는 소년의 손자가 그린 하트를 담고 소년의 가족과 함께 한다. 소년은 종이 봉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남은 이들은 종이 봉지에 나무를 담아 그가 묻힌 땅에 심는다. 봉지는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을 품어준다. 



한 소년이 더는 세상 사람이 아니어도, 그 남은 가족들이 심은 나무가 아름드리 자라도록 봉지는 '생존'한다. 의도적인 소멸의 과정을 가하지 않는다면 '봉지'의 충실한 삶은 지속된다. 썩지않는 비닐를 두려워하는 시절임에도 종이 봉지의 '온전한 삶'을 보니 숙연해진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물건'을 다루는 우리의 '관성'과 '태도'의 문제임을 그림책은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자연'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둔 헨리 콜 작가는 그림책에서처럼 3년 동안 한 종이 봉지에 도시락을 싸 간 경험을 바탕으로 이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 '종이 봉지'를 동생에게 물려주었다고 하니 작은 종이 봉지의 특별한 여정이 허투루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비닐 봉지 하나가> 


그렇다면 봉지의 이런 삶은 어떨까? 국제 여성연맹에서 세계를 변화시킨 100인에 선정된 재활용의 여왕 아이사투 씨쎄의 실화를 그린 <비닐 봉지 하나가 -지구를 살린 감비아 여인들>이다. 



그림책을 열면 비닐 봉지로 가득 콜라주된 면지를 만나게 된다.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온통 덮은 비닐처럼. '비닐'의 세계화?, 아이사투가 사는 서아프리카의 감비아에도 '비닐 봉지'는 편리함을 무기로 찾아들었다. 아이사투도 기꺼이 물에 젖는 종려나무 잎 바구니 대신 비닐을 선택했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그랬다. 마을 곳곳에 버려진 비닐 봉지들, 버려진 비닐 더미들 사이에서는 모기떼가 날았고, 태우니 악취가 진동했다. 마을의 염소와 소들이 비닐 봉지를 먹고 죽기에 이르렀다. 



더는 비닐 더미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던 아이사투와 뜻이 맞는 친구들은 비닐 봉지들을 씻어 말리고 돌돌 말았다. 그리고 코바늘에 꿰어 '지갑'을 만들었다.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더럽다는 사람도 있었다. 촛불 아래서 만든 비닐 봉지 지갑, 아이사투는 그걸 도시로 가지고 가 팔았다. 지저분한 쓰레기 더미 속 비닐 봉지는 그렇게 모두가 사고싶어 하는 재활용 지갑이 되었다. 



'언젠가는 쓰레기가 사라지고 마을은 아름다워질 거야', 어린 아이사투가 버렸던 비닐을 아기 엄마가 된 아이사투가 지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사투의 아기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무렵에서야 마을은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기나긴 시간이 흘렀지만  '난 우리가 옳은 일을 한다고 믿어요'라며 포기하지 않는 아이사투의 신념과 실천으로 나우 마을은 깨끗해 졌고 더는 가축들이 비닐을 먹고 죽어가지 않았다. 비닐 봉지 지갑이 만들어 낸 재활용 기금은 도서관과 기술 센터가 되었다. 



'나는 문제점이 아니라 해결책을 외쳤습니다', 아이사투는 말한다. 감비아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편리한 것들, 어느새 우리와 밀접하게 살아가는 것들, 그들과의 '현명한 공존'을 위한 모색은 우리의 시급한 과제이다. 비닐 더미에 지구가 뒤덮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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