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 <난 잘 도착했어요> - 오늘의 그림책
어느덧 8월 입니다. 비가 오는 지 여부를 일기예보로 확인하는게 무색하던 장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폭염의 연속입니다. 지구의 온도가 3.5 도 올라가면 인간과 동물들 70%가 멸종한다는데 이미 그런 시기가 도래한 게 아닌가 싶게 푹푹 찌는 계절입니다.
꼭 더위 때문만도 아닙니다. 새해로 부터 시작해서 저마다의 속도로 달려온 상반기를 지나고 다시 나머지 반년을 이어 달리려니 어쩐지 좀 지레 지친다 싶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심기일전', 떠나봅니다. 그런데 어디 현실이 생각처럼 따라주나요, 대신 '떠남'에 대한 두 권의 그림책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휴~' 라는 감탄사는 어떤 때 쓸까요? 이명애 작가의 <휴가>를 이렇게 소개하면 어떨까요? '휴-' 가 '휴~'로 될 때까지?
이명애 작가는 <플라스틱 섬>, <내일을 맑겠습니다>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를 비롯하여 브라티슬라바 그림책 비엔날레, 나미 콩쿠르 등에서 수상한 작가로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걸출한 작가입니다. 또한 그림을 그린 <내가 예쁘다고?>로 대한민국 그림책상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휴가> 역시 휴-에서 휴~라고 설명했지만, 글밥은 거의 없다시피한 그림책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풀어내는 그림의 서사만으로도 느끼고 공감하고, 나아가 '힐링'할 수 있는 그림책이 됩니다.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후반후에 만나는 '노을'에 시선이 멈추었습니다. 그림에 불과한데도 정말 물들어 가는 노을을 마주한 듯, 마음이 울렸어요. 이심전심이었나요. 작가도 이 그림책의 배경이 되는 삼척에 머물며 만난 노을에서 충만한 에너지를 느끼며 그림책을 시작하게 되었다네요.
그림책은 그 '노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입니다. 속지 한 켠에 자리한 다이어리 빼곡한 일정을 뒤로하고, 한 여성이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이상해요. 그녀가 탄 기차가 지나는 풍광은 싱그러운 녹음이 우거지는데, 그녀는 두터운 겨울 파카 차림입니다. 삼척에 도착한 여성, 비로소 그 두터운 것옷을 벗었지만 푸르둥둥해요. 마치 냉동실에서 방금 나온 것처럼 말이죠. 후-, 입김도 나오네요.
작가는 일상의 삶에 지쳐버린 주인공을 창창한 여름날에 대비하여 꽁꽁 얼어버려 파카마저 필요한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공감 백배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진 해수욕장에 왔지만 좀처럼 얼어붙은 그녀가 풀리지 않습니다. 알록달록 파라솔에 그 사이를 빼곡하게 채운 사람들 사이에서 구명조끼마저 챙긴 그녀는 좀처럼 긴장을 풀지 못합니다. 설상가상 비마저!
다시 해변으로 간 그녀는 역에서 만난 고양이를 따라 인적이 드문 호수로, 비로소 그 곳에서 호젓하게 물 속에 자신을 담가봅니다. 휴~, 이제야 제 빛을 찾기 시작하네요.
'휴가'라고 해서 다녀와도 때로는 몸만 아니라, 마음조차도 여전히 곤할 때가 있지 않나요? 남들 다가는 좋은 곳이라는데 말이죠. 어쩌면 그건 우리에게 필요한 건 '휴가지'가 아니라, 마음의 쉼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싶은데요. <휴가>를 통해 '쉼'의 의미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여행은 어떨까요? 다음에 소개할 책은 김유림 작가의 첫 번 째 그림책 <난 잘 도착했어> 입니다.
그림책은 먼 곳으로 홀로 떠난 한 여성이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의 형식을 띱니다 '혼자' 떠난 여성, '커다란 용기를 낸' 자신이 멋져보인 것도 잠시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시간에 잔뜩 움츠려들고 맙니다.
희망의 마음을 담은 푸른 색 캐리어를 들고 이방의 도시, 낯선 방으로 떠난 여성, 하지만 캐리어를 퍼지게 만들어 버리는 돌바닥, '너무 많은 짐을 가져왔나' 후회하게 만드는 계단, 그녀를 반기는 건 옷장 속 거미 ..... 무엇보다 아무도 없는 별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자꾸만 혼자인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도카니 낯선 이방의 공간에 툭 떨어진 모습을 흑백의 스케치로 그림책은 묘사해 나갑니다. 파란 스탠드가 그녀를 맞이하지만, 그 공간이 버거운 그녀에게는 그 스탠드 속에 비친 '혼자'인 자신만이 보여집니다. '돌아갈 수는 없잖아', 하면서 마음을 잡아보려 하지만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그녀, 다음날,
눈부신 아침 햇살에 잠을 깼어.
오늘은 내 모습 대신 창밖 풍경이 보이는 거야. (중략)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여
파란 캐리어를 들고 낯선 도시로 찾아든 그녀는 그렇게 파란 하늘을 마주하며 비로소 '난 잘 도착했어'라며 답장을 쓸 수 있습니다.
여행은 어딘가로 떠나는 겁니다. 그런데 단지 장소가 바뀌는 것이 여행일까요? <난 잘 도착했어>의 그녀는 이방의 도시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자신'만을 마주합니다. 다음 날 창밖 풍경과 하늘을 통해 비로소 '나'를 넘어섭니다. 이렇듯 여행은 '나'에 머물던, 나에 침잠하던 자신을 세상을 향해 열어보는 시간이 아닐까요.
일상의 시간은 늘 '나'를 향한 구심력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심에 있는 내가 무엇인지 모호해질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세상을 향해 나를 열어보며 리프레시 하는 시간이 '여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티벳의 수행법에 푸른 하늘을 하냥 마주하는 방식이 있다는데 이 수행의 지향 역시 세상을 향해 닫혀있던 나를 열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휴가> 역시 노을 가득한 풍광을 한껏 마주한 주인공으로 마무리됩니다.
<휴가>도, <난 잘 도착했어>도 모두 '그녀'가 홀로 떠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방황을 하고 현명한 사람을 여행을 한다.', 카트린 지타의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은 자기만의 일과 사랑을 발견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야 한다'라며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을 권합니다. 세상을 향해 닫혀있던 나를 열면, 지금까지 내가 머물던 '우물'을 깨닫곤 합니다. 라즈니쉬는 말합니다. 여행은 세상에 대한 지식과 함께 자신에 대한 발견을 하게 만들 거라고.
<휴가>처럼 빠듯한 일상에서 잠시 틈을 내서, 혹은 <난 잘 도착했어>처럼 인생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 여정도 모두 더 큰 '나'를 찾아가는 저마다의 방법입니다. 지금 저는 이 글을 푸른 나무들이 마주보이는 한 까페에서 쓰고 있습니다. 쳇바퀴같은 일상의 시간, 일상의 공간에서 잠시 벗어난 이 시간, 이게 저에게는 짧은 여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