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으로 부터 시작된 '식민'의 깊은 상흔

- <경극이 사라진 날>

by 톺아보기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우리의 '현대사'를 알아보고 싶다는 '학생(?)'들의 열의에 맞춰 그림책 연륜이 깊지 않은 내가 적절한 그림책을 선정하는 일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현대사를 다룬 그림책이 다양하지도 않았지만 '메시지'를 넘어 함께 생각해볼만한 '화두'를 담은 그림책들을 고르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더듬더듬 그 여정을 시작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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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함께 본 그림책은 야오홍(姚紅) 작가의 <경극이 사라진 날>입니다. 난징에서 태어나, 난징 예술대학에서 중국화를 공부하고 지금도 난징예술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작가가 그린 '난징 대학살'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1927년에 태어난 나의 어머니와 그 시대를 살았던 조상들에게 삼가 이 책을 바친다.







이런 문구와 함께 '중국화'풍의 서정적인 친화이허강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오도카니 앉아있는 아홉 살 소녀가 보입니다. 아마도 1927년에 태어난 야오홍 작가의 어머니가 아닐까 싶은. 소녀는 외할머니 댁에 머물고 있습니다.



1937년 난징


깊은 가을 날 외할머니 댁에는 몇 개의 트렁크와 함께 낯선 손님이 한 분 찾아들었다. 거리에 나붙은 경극 포스터, 그 포스터의 주인공인 '샤오윈센'이었다. 할머니네 찾아온 인기 경극 배우, 그를 따라가는 소녀의 시선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그림책은 1937년 당시 난징의 일상을 묘사합니다.



새벽 친화이허 강가에서 아름다운 목소리와 나긋나긋한 자태로 연습을 하는 샤오 아저씨, 그를 보러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 이 평범한 일상들은 장사진을 이룬 '샤오 아저씨'의 경극 공연으로 이어집니다. 덮개를 열면 마치 한 편의 경극을 그대로 옮긴 듯한 장면들, 당시 인기를 끌던 양귀비의 서사와 함께 '잔다르크'처럼 적군에 대항하여 북을 치며 항전을 독려하던 여장부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경극 포스터와 함께 벽을 도배한 '징병' 포스터, 그리고 극장 앞에서 '중국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젊은이들, 그렇게 그림책은 1937년의 어느 날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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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바랜듯한 풍경들이 가슴저미게 다가오는 건,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날 저녁, 일본군의 공습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샤오 아저씨는 '침략군을 위해 공연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책은 샤오 아저씨를 흉내내어 춤을 추는 희미한 소녀의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캄캄하고 눅눅한 방공호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지던 소녀의 환상 속에서 등장하던 장면입니다.



난징을 한자로 쓰면 '남경(南京'입니다. 남쪽의 수도라는 뜻이죠. 일찌기 오나라, 송나라, 양나라의 도읍이었고, 1368년부터 명나라의 수도였던 이 곳은 개항장으로 1842년 아편전쟁 후 이곳에서 '난징조약'이 체결되었고, 신해혁명 후 중화민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중국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일본에게 '난징'은 주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1937년 이곳을 점령한 일본군은 다음해 2월까지 6주 동안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 비견되는 대량 학살, 강간, 방화를 일으켰습니다. 아직도 정확한 피해자의 숫자는 집계되지 않는 이 기간 동안 2~30만 명 정도의 중국인이 학살되었고, 도시의 2/3가 넘게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평범하고 설레이던 나날들의 기억들은 그 뒤에 이은 이 잔인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처연한 기억이 되어 남겨집니다. 그 뒤로 더는 소식을 들을 수 없다던 샤오 아저씨는 물론, 그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생존'했을까요?.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는 익숙하지만 난징 대학살은 낯섭니다. 그 낯선 우리 곁의 역사를 함께 돌아보자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와 함께 한, 중, 일의 미묘한 관계를 짚어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고른 책이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합방하고, 그 식민지적 야욕을 중국을 향해 뻗어갔다. 만주를 손에 넣고, 중국 본토를 향해 뻗어나간 그 '야욕'의 정점에 난징 대학살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시절의 중국과 우리의 관계를 짚어보기 전에, 나이가 지긋해진 우리의 어린 기억 속 '중국'에 대한 선입견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중국은 '떼놈들'이라는 낮잡은 표현으로 다가왔습다. 아마도 떼로 몰려 온 중공군에 대한 어른들의 기억이 그런 용어를 만들어 냈겠지요. 하지만 그런 역사적 기억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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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겨봐야 할 역사


일본의 식민지가 된 우리 땅에서 더는 살기가 힘들었던 사람들은 조국을 떠나 만주로, 연해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새로이 이주한 그곳에는 토착민들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우러져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시간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농사를 지을 수로를 둘러싸고 중국인들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만보산 사건(1931)'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은 만주 침략을 위해 일본이 조장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의 현장에서 부딪친 건 이주한 우리 농민들과 중국인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유혈 충돌 사태를 과장 보도한 언론을 빌미로 우리나라에서의 반중 감정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적 감정은 우리 나라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중국인, 화교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린치 등으로 이어졌구요.



'호떡 집에 불구경'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 속담의 유래는 안타깝게도 바로 1931년에 발생한 '화교' 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방화와 폭행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조선에 와서 '호떡집' 등과 같은 소매업에 주로 종사하던 '화교'들을 사람들은 만만한 민족 감정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평양과 인천을 중심으로 200 여 명의 화교들이 사망하고, 잔인하게 유린당했던 역사를 우린 기억에서 지웠습니다. 우리는 그저 늘 일본의 '피해자'인 기억만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거침없이 불붙은 민족 감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중국인들 역시 우리 민족에 대해 반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본인의 앞잡이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중국에 근거지를 둔 임시 정부 등 독립운동 세력의 위기를 불러오게 되지요. 1932년 상해사변을 축하하는 자리였던 흥커우 공원 전승기념식에서 도시락 폭탄을 터트린 윤봉길 의사의 헌신이 있고나서야 '혐한'의 분위기는 누구러졌고 장제스 등이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경극이 사라진 날>은 사계절이 기획한 '평화 그림책' 시리즈 13권 중 한 권입니다. 난징 대학살을 다룬 그림책은 깊이 들여다 보면, 그저 난징의 한 시절을 다룬 풍경을 넘어섭니다. 조선에서 부터 난징에 이르기까지 침략의 야욕을 무자비하게 뻗쳐나가던 일본 식민주의가 있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서로에게 등 돌린 채 '유혈'충돌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비극의 기억을 가진 한국과 중국의 아픈 기억들이 담겨있습니다.



평화를 향한 첫 발은 그런 묻어두고 싶은 역사에 대한 진솔한 이해로부터 출발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교'가 기반을 잡지 못한 국가라는 한국,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과연 지금의 우리는 그 시절의 화교와 같은 우리 안의 '타자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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