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톺아보기 Oct 15. 2023

망가진 자존감, 구제해 줄 건 '사랑'일까?

- <<엔딩스 비기닝스>


드레이크 도레무스는 대표적인 로맨스 영화 감독이다. 하지만, 그의 로맨스 영화는 특별하다. 데이트 앱을 통해 만나게 된 두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뉴니스 (2017)>, 감정이 통제되는 미래 사회에서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퀼스 (2018)>, 그리고 로봇이 사랑하게 된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조(2018)>까지 당대와 미래 사회의 화두를 영화의 소재로 고스란히 방영한다.

그런 그의 전작 들에 비하면 실연한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엔딩스 비기닝스>는 우리 시대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듯한 평범한 주인공을 다루는 듯하다. 거기에 그녀 앞에 나타난 '지적'이거나, '섹시한' 남자 주인공들에 이르면 이 영화가 '로맨스'의 대리 만족적 요소에 충실한 '장르'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드레이크 도레무스 감독의 영화를 그 소재적 측면을 넘어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다른 기대를 가지게 될 것이다. 두 연인들이 음악적 공감에서 출발한 '불륜'이건(우리가 사랑한 시간), 혹은 현대의 즉석 만남과도 같은 데이트 앱을 통해 만났건(뉴니스), 혹은 감정마저 제어되어야 할 대상이 된 미래 사회에서 '감정 보균자'가 되었건 '로맨스'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지만, 결국 그 끝에서 만나게 되는 건 '사랑의 주체자'에 대한 '자존감'과 '존재론'인 것이다. 

 



 

실연을 하고 술과 남자를 끊었는데 
불과 1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면 왜 함께 오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던 가족같은 남자 친구와 이별을 했다. 뿐만 아니라 직장도 그만 뒀다. 오갈 곳이 없어 언니네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다프네(쉐일린 우들리 분)의 처지다. 

이곳 저곳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여의치 않다. 그래서일까. 다프네는 6개월간 남자와 술을 끊겠다며 주변에 선언한다. 하지만 '의지'는 늘 '유혹'에 취약하다. 파티와 만남에서 '음주'의 기회는 늘 주어지고, 남자들 역시 그녀 맘대로 되지 않는다. 술 대신 탄산수나 맹물을 마시며 심드렁하게 견디던 언니의 집 파티에서 그녀에게 두 남자가 다가온다. 

한 사람은 현직 소설가이자 대학교수인 잭(제이미 도넌 분) 언니네 파티에 이어진 만남에서 다프네는 그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눴다. 또 한 사람은 그와 정반대로 '육체적인 끌림'으로 다프네를 유혹한 끈 프랭크(세바스찬 스텐 분)이다. 

술과 남자를 끊겠다는 결심에도 불구하고 다프네는 두 사람과의 '인연'을 마다하지 못한다. 더구나 자신으로 인해 언니네 부부가 싸우게 된 것을 알게 되고 집을 나와 지내게 되면서 잭과는 거의 함께 지내다시피하고, 그런 가운데 도발적으로 접근하는 프랭크와의 '육체적 관계' 역시 어쩌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우유부단한 관계는 결국 다프네에게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안긴다. 

다시 술도 마시고, 남자도 만나게 되었다는 다프네에게 그림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조금 홀로 지내보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런 선생님의 권유에 다프네를 고개를 젓는다. 전 남자 친구와 헤어졌지만 순간순간 그와의 추억이 다프네를 혼란스럽게 한다. 하지만 그런 만큼 다프네는 외로웠다. 더구나 취업도 안돼고, 언니네 집은 눈치가 보이고, 오랜만에 돌아간 집에서 어머니와의 관계는 여전히 앙금을 지닌 채 그녀를 괴롭혔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에게 다가온 서로 다른 매력의 두 사람이 그녀에게는 '위로'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말 그 '사랑'이 위로가 되었을까? 결국 두 남자와 만나게 벌어진 사태로 인해 혼란스러워할 때 선생님은 다프네에게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서 자신의 '상실'을 위로 받으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사랑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되는 것일까? 
영화에서 드러나 보이는 것은 '실연', 그리고 새로운 만남, '삼각 관계'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잠재되어 있던 것은 다프네의 상실된 '자존감'이다. 흔히 사랑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되는 것이라 말해지지만, <엔딩스 비기닝스>는 그 이전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부추겨 세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다프네의 실연에는 그저 오랜 연인의 이별 그 이상의 '상흔'이 있다. 그녀가 집요하게 '금주'를 실천하고 했던 이유가 바로 과도한 음주로 인해 직장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그녀로 하여금 오랜 연인과의 이별을 초래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억하고 싶지 않던 그 날의 기억, 그리고 전 남친과의 따스했던 추억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리되지 않은 '아픔'을 또 다른 '연애'를 통해 '치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들어가, 그녀에게는 그녀와 언니가 '이부 자매'라는 어머니의 오랜 남성 편력이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다. 자신도 어머니처럼 그렇게 남자에 의지해서 살고자 하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도 또 비슷한 상황에 자신을 떠밀어 버린 것이다. 

 



 

원치않는 상황에 맞닦뜨린 다프네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 본다. 상실된 자아를 '사랑'을 핑계로 위로 받으려 했음을 시인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아픔으로 현실에 자신이 벌인 일들을 핑계대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미 그녀는 어머니가 보살펴줘야 했던 그 어린 시절의 다프네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책임져야 할 '성인'이 되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달달한 삼각 관계의 로맨스를 기대하고 간 관객들이라면 아쉽겠지만, 평범한 듯 하면서도 결국은 스스로가 자신의 행복을 여는 '키맨'이라는 주제에 이르는 과정을 '로맨스적 해프닝'을 통해 설득하려 하는 <엔딩스 비기닝스>는 꽤나 설득적이다.

심리학자 김영아 교수의 <내 마음을 여는 그림책>에서 자존감을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이자,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 정의내린다. '자존감'이란 말이 유행처럼 중요시여겨지는 시대이다.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고, 자신을 손해보지 않아야 한다고 선언처럼 울려퍼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자존감이란 아무리 보잘 것없어도 '자신'을 긍휼히 여기는 그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존감은 내가 잘 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과도하게 술을 마셔서 벌어졌던 전 직장에서의 일을 담담하게 '고발'하고, 전 남친에게 이별의 선물을 전하며 비로소 다프네는 자신의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운다. 

같은 책에서 '어른다움'이란 괜찮은 나와 부족한 나를 모두 나로 인정하고 통합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엄마'가 되어가며 비로소 행복한 미소를 활짝 짓는 다프네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을 핑계대지 않고, 자신의 결점조차 품어아는 '어른됨'을 상징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자신의 부족한 면조차 기꺼이 자신으로 껴안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좋아요2


공유하기


통계


게시글 관리



저작자표시 비영리 동일조건

작가의 이전글 인권;에 나이 제한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