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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꼬치는 성업중

- <60의 알바천국>

by 톺아보기

오늘은 닭꼬치 공장에 갔다.


얼마 전부터 *근에 계속 올라오며 나를 유혹하던 알바였다. 당연히 연령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일, 검은 장갑을 끼고 닭꼬치를 끼는 사진까지 동봉된, 닭꼬치를 생산하는 일이었다. 생닭을 하루 종일 만져야 한다는 거시기한 느낌(?)이 있었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토요일, 지난 번 간 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40 여 분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갔다. 막상 내려보니 여기도 공단, 주로 먹거리를 생산하는 곳들인 가 보다. 골목마다 '~ 푸드' 라는 공장들이 즐비하다. 네이버 지도를 따라 간 공장 한참 벨을 눌러도 묵묵부답, 마침 그곳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가 문을 열어 준다.


지난 번 마스크 공장은 머리카락 정도만 캡으로 잘 감싸면 됐었는데, 오늘은 완전 무장이다. 우선 우비같은 하얀 비닐 옷을 입고, 당연히 머리도 감싼다. 거기에 물에 강한 두터운 비닐 앞치마를 두른다. 손에는 장갑을 낀 후 다시 팔뚝까지 오는 비닐 토시를 낀 후 그 위에 다시 미끄러지지 않는 고무 장갑을 꼈다. 그리고 마지막 무릎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었다. 지난 번에는 그래도 실내가 윗옷을 벗어 제낄 정도로 따뜻했는데, 이곳은 닭 정육을 다뤄야 하는 공간이므로 냉장을 유지하기 위해 춥단다. 그 말에 혹시나 해서 가지고 온 핫팩을 등에 붙였다.


복장을 갖추고 안으로 들어서니 강당만한 공간이 열린다. 한쪽에 수입 닭 정육 박스들이 산처럼 쌓여있고, 교실처럼 생긴 곳에서는 그 정육들이 봉지째 잠수, 해동 중이다. 그리고 그 밖에서는 두 대의 기계가 연신 돌아가며 닭똥집을 펼치고, 다른 한 테이블에서는 산더미처럼 쌓인 닭 정육 덩어리를 꼬치에 맞게 토막을 내고 있다. 그리고 그 테이블 옆에 꼬치를 꿰는 작업대가 두 군데 있었다.


내가 일해야 할 작업대에는 4 명이 한 조로 일을 한다. 저쪽 작업대에서 정육을 토막내서 가져와 쏟으면, 그 정육들을 말 그대로 꼬치에 꿰는 일이다. 토막난 닭 정육이 담긴 쟁반 옆에는 양 쪽으로 저울이 있다. 저울이 왜? 꼬치의 생명은 바로 무게이기 때문이다. 15~16 g, 넘쳐도 안되고 모자라도 안된단다. 넘치면 장사하는 사람이 손해고, 모자라면? 사먹는 사람이 아쉽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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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꼬치 © 유투브 푸드 스토리


꼬치라고 얕봐서는 안됐다

그런데 이 g을 맞추는 게 녹록치 않다. 까짓 거 꼬치하다가 된서리를 맞은 셈이랄까. 꼬치 꿰는 거야 명절마다 하는 거니 그 까짓 거 누구나 그렇지 않았을까? 그런데, 커다란 밥 숟가락 만하게 잘린 꼬치 한 조각, 그런데 다들 모양이 일정치 않다. 아니 모양이 일정치 않다는 말로는 아쉽다. 가슴살, 넓적다리살 등 부위에 따라 살의 생김새가 다 다른 것이다. 그저 편편하게 생긴 가슴살만 있으면 좋으련만, 때로는 갈래갈래 갈라진 부위는 '바느질'하듯 꿰도 너덜너덜하기가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튼실한 부위만 낀다고 좋은 게 아니다. 그러면 몇 개 꿰지 않아 15 g을 넘어 버리니 꼬치를 완성시킬 수 없다.


딱 손으로 잡기 좋은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를 꽉 채워 15~16 g을 맞추어 꿰는 것이 오늘 새로 함께 일한 이의 말 그대로 '내공'이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모양을 맞추어 꿰놓았지만, 무게를 달아보니 18 g이나 되게 만들었던 내 앞쪽의 신참 닭꼬치는 나중에 다 다시 손을 봐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 친구는 열심히 하느라 손톱이 벌어져서 밴드까지 붙였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 살들이 한참을 주무르다 보면 흐물흐물해져 버린다.


나로 말하면, 성질대로 급하게 모양을 만들어 놓으니, 닭꼬치를 나르는 외국인 노동자한테 한 소리 들었다. 가 와서, 너무 많이 남겼단다. 빨리 만들려면 모양이 안되고, 주무르고 있다 보면 눈치가 보이고, 말은 처음이니 천천히 하라 하면서도, 우리를 가르치던 '고수'님께서 얘네들 가르치느라 오늘 내 일을 하나도 못했다고 푸념에 푸념을 하시니, 그 또한 눈치가 보인다.


닭꼬치는 '성업중'이다. 이곳은 주말도 없이 24시간으로 풀가동되는 일터이다. 나처럼 8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 팀들이 있는가 하면, 그 팀들에 이어 아침까지 일하는 팀들이 있단다. 밤새 쉬지 않고 닭을 썰고, 꼬치에 꿰는 데도 언제 끝나느냐 아우성이다. 심지어 사장님은 한 분은 와서 주문량이 맞춰질 때까지 기다린다. 1인당 연간 닭 소비량이 26마리나 된다더니, 그 중에 닭꼬치가 한 몫을 할 줄이야. 그러다 보니 모처럼 주말이라 집에서 쉬던 분까지 호출하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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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꼬치 © 유투브 이승환이 간다


사실 나부터 시작해서 다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쓰고 일을 하니, 눈만 빼꼼, 누가 누군지도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점심 시간이 돼서 밥을 먹고, 그 후에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니 그제야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유, 이곳에서 내 나이는 명함도 못내밀 만큼 다들 나보다 한참은 윗 연배의 분들이 대부분이시다. 젊은 외국인 남자 노동자들이 몇 명 있는데 대부분 박스를 나르거나 포장 등 힘을 쓰는 일을 담당했고, 그 나머지는 연배가 있는 여성분들이 다 감당했다.


게다가 흥미로운 건, 그분들의 연배가 무색하게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 틈에 나누는 대화가 '전문적'이다.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70대 어르신이 아니라 이곳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고참들의 대화이다. 닭의 사이즈가 어떻고, 파가 어떻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일을 조율해 간다. 주말이라 그런지 젊은 사장은 아침에 잠시 다녀가고 말았는데, 이 분들 정도라면 마음 놓고 맡겨도 알아서 공장이 돌아가기에 손색이 없다 싶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다들 할머니들이겠지만, 적어도 여기에서는 사장보다 더한 기술자들이셨다.


나와 함께 오늘 온 신참 두 사람은 30 줄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주중에는 다른 일을 하는데, 주말에 쉬는 게 아까워 나와 봤단다. 그 사람들뿐이 아니다. 밤에 일하는 이들 중에는 낮에도 일하고 투 잡을 뛰는 이들도 있다는데, '열심히'라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노동의 세계를 엿본 듯하다.


물량을 맞춰야 해서 쉬지도 못하고 나왔다며 오후에 등장한 반장님은 또 어김없이 목소리 높여 모두를 독려를 넘어 닥달을 한다. 어디를 가나 반장님은 무섭다. 게다가 우리를 대놓고 탐탁찮아 한다. 알바만 뽑아놓으면 물량이 나올 줄 알았냐는 거다. 꼬치 한 개에 얼마 씩을 받으며(영업 비밀이라며 얼만 지는 궁금해 하지 말라 하셨다) 쉬는 시간도 아까워 달리시는 그 분들 입장에서는 지렁이 기어가듯 일하고도 하루치 일당을 받는 신참 알바들이 거저 먹는 것같을 터이다. 치열한 현장이다. 그래서일까. 다음날부터 *근에서 닭꼬치 알바가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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