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된 길. 호승심.

by 이재

길이 파괴됐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했고, 진행되고 있었다.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기도 하고, 바위와 진흙이 막기도 했다. 강이 범람해 길이었던 것이 낭떠러지를 향해 거센 물살을 지닌 물바다가 되어있기도 했고, 길 자체가 끊어져 낭떠러지가 된 곳도 있었다.


그 모든 길을 건너가야만 했다. 건너가기 전에 간과했던 건, 건너갈수록 돌아오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갈수록, 거리상 앞으로 가는 게 더 안전해서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돌아간다면 내리막길과 함께, 건너왔던 파괴된 길을 다시 건너야 했다. 또는 어떤 새로운 파괴된 길이 있는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심지어는 인터넷과 전화도 안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구글 지도는 오프라인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길을 잃지는 않았다. 다만 비상상황시 의지할 보류가 사라졌다.

가면서 많은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길을 묻기도 했고, 커피콩과 찻잎을 재배하는 현지인의 집에 들러 따뜻한 밀크티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잠깐의 휴식으로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물살이 거센 강에 몸을 담그고 건너가야만 할 때는, 내 손을 잡고 내가 건너갈 수 있도록 자신의 다리로 물살을 버텨준 청년 세명도 있었다. 나는 강을 건너고 뒤를 돌아보며 연신 감사함을 표했다. 전할 수 있는 게 말뿐이라 아쉬웠다.


실은 이때가 분기였다. 그냥 뒤돌아서 아까 밀크티를 얻어먹은 집에 하루 묵을 수 있냐고 부탁하면 되는 일이었다. 남자 넷이 모여있으니 호승심이 솟아올라 힘을 합쳐 강을 건너버렸다. 이 강을 건넌 이후로는 정말 돌아갈 수 없게 됐다. 그 강은, 나 혼자서는 건널 수 없으니까.


E7025E1A-910E-4AD8-9C0E-801E51797ECA_1_105_c.jpeg 길 (이었던 것)
현지인 집에서 얻어 마신 밀크티
536F3CE8-3092-420C-8FB0-248C50784060_1_105_c.jpeg 건너갔던 강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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