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넌 직후에는 끊어진 길을 만났다. 그때의 절망감은 여행이 끝난 지금도 생생하다. 혼자 폭우를 배경으로 아스팔트 길이 끊어진 이질적인 풍경은 겪어본 적이 없었다. 길은 그 끊어진 길 뿐이었다. 건너온 강은 혼자서는 다시 건너갈 수 없다. 통신, 인터넷은 되지 않는다. 고민할수록 비는 거세지고 몸은 차가워져 간다. 건너가는 수밖에 없었다.
침착함과 두려움, 흥분이 모두 중첩된 상태였다. 끊어진 길을 봤을 때, 아스팔트는 붕괴해도 이를 지지하는 노반은 멀쩡했다. 발로 건드려봤을 때 튼튼했다. 다만 노반의 틈새에 진흙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진흙을 밟거나, 노반의 얇은 모서리를 밟으며 지나가야 했다.
절충하여 진흙 위에 큰 바위가 있으면 바위를 밟고, 없다면 노반의 얇은 모서리를 밟으며 건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떨리는 20초였다.
끊어진 길을 건넜을 때, 눈앞에 트럭이 보였다. 부서진 길을 유지보수하는 인부들로 보였다. 그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비가 쏟아져 길도 부서지는 날에, 끊긴 길에서 나타난 동양인 한 명은 흔한 구경거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내게 어디로 가는지 물었고, 나는 숙소 위치를 알려주었다. 여기로부터 8km는 남은 상태였다.
길 상황과 체력을 봤을 때 오늘 안에 갈 수 없겠다고 그제야 인정했다. 2km 이내에 조그마한 마을이 있었지만 거기까지 가기도 어려운 날씨였다. 고맙게도 인부들의 숙소에서 하루 머물 수 있었다.
5명의 인부가 모여사는 현지인들의 숙소였다. 몸이 떨리고 있었다는 걸 숙소에 들어와서 깨달았다. 그들은 내게 따뜻한 물, 수프, 커리와 잘 곳을 마련해 줬다. 자기 전에는 스리랑카의 전통주인 arrack도 받아마시기도 했다.
인터넷, 전기, 전화 모든 게 끊겨있었다. 폭우가 도로뿐만 아니라 통신시설들도 파괴했다. 물도 나오지 않아 그날은 씻지 못했다. 딱히 아쉽지 않았다. 이미 비를 잔뜩 맞아 씻은 셈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