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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원 Sep 20. 2024

1화. 섬의 가족 (1)

부부와 삼 남매

섬의 집은 고요했다.

그곳은 용진의 고향이자 용진과 화선의 삼 남매가 나고 자란 곳이었다. 섬의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육지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고 하여 송도라는 이름을 갖게 된 여느 평범한 섬이었다. 가족의 맏아들인 우성은 어렸을 때부터 섬의 한문 선생님으로 일하던 용진의 밑에서 엄하게 교육을 받았다. 용진에게 한문을 배우고 학교를 다니며 육지에 있는 중학교를 붙으며 섬을 먼저 떠났다.     


“가는 거야?”     


둘째인 우찬은 그런 우성이 부럽기도 하면서 미웠다. 가족을 버리고 육지에 나가 사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성은 그 질문의 의도가 눈에 보였는지 사고치지 말고 언제나 막내 동생을 잘 챙기라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누구처럼 우리만 두고 육지로 가지는 않으니까.”     


우성은 용진과 화선에게 인사를 드린 후 배에 올라탔다. 섬에서 나가는 것 치고 짐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거의 빈손으로 나가는 듯한 첫째 아들의 모습을 보니 용진의 마음은 뒤숭숭했다. 우성이 나가고 막내인 연숙의 눈에는 집이 많이 비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누구도 그게 신경 쓰지 않았다.     


“또 누구를 때리고 왔어!”     


우성이 나가고 우찬은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다. 물론 우찬의 심성이 나빠서 생기는 사고는 아니었다. 용진의 호통에 우찬은 입을 쭉 내민 채로 옆에 있는 여동생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때리려고 한 건 아닌데 애들이 숙이를 맨날 놀리잖아요.”     


용진의 막내인 연숙은 어렸을 때부터 오른쪽 눈에 큰 점이 있었다. 일반적인 점이 아닌 눈 주변에 멍이 든 듯한 커다란 멍이었다. 언제나 철없는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기 쉬웠지만 연숙은 하지 말라는 말 한 마디 못할 정도로 자신감이 없던 아이였다. 그 때문인지 늘 동생의 소심함에 답답한 우찬은 주먹으로 모든 일을 해결했다.     


“네가 오빠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건 내 아무 말도 안 하마. 그래도 폭력은 아닌 거야.”

“그럼 어떻게 해결하는데요? 숙이 놀림 받는 거 옆에서 구경만 하게요?”

“너가 주먹으로 늘 해결해서 동네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거 모르냐? 이제는 나타나기만 해도 다들 도망 다니느라 바쁠 거다.”     


평소라면 크게 화냈을 용진의 따뜻한 말에 우찬은 그 후로부터 주먹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지만 서서히 연숙에게도 자신감이 붙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송도의 주먹왕 강우찬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우찬도 중학교에는 들어가야 했고 용진은 우성의 집에서 우찬도 함께 지내기를 바랐다.     


“아버지, 그건 그렇고 숙이도 데려가야겠습니다.”

“숙이는 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형님만 봐도 도시 생활을 하니까 금방 세상을 아는 것 같아서요.”

“말 돌리지 말고 제대로 말해 봐라.”

“어릴 때부터 큰 세계를 경험시켜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동생이라 더 챙겨주고 싶고요.”     


용진은 삼 남매 중 제일 철없는 우찬을 육지에 보내는 것도 걱정됐다. 허나 이제는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딸까지 데리고 나간다니까 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굶는 한이 있어도 숙이가 굶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 건 당연한 거 아니냐.”

“숙이도 어차피 중학교 다닐 텐데 먼저 육지에서 친구들 만드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화선은 말없이 방에서 바느질했다. 그런 모습을 본 우찬은 화선이 자신의 편을 한 번이라도 들어주기를 바랐다.     


“어머니, 뭐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

“내가 무얼 더 말할 거냐. 너네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화선은 우찬을 보고는 바로 용진을 바라보았다. 용진은 이미 정한 듯 우찬에게 말했다.     


“우성이가 허락하면 나도 허락하마.”

“형님은 아마 허락하실 겁니다. 동생들 좋으라는 건 뭐든지 하려는 사람이니까요.”     


용진의 연락을 받은 우성은 바로 확답을 주지는 못했다. 노트에 적힌 생활비,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구분해 놓은 시간표를 보며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우찬은 형에 대해 잘 파악한 상태였다. 동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맏아들인 자신이 아버지인 용진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괜찮을 것 같아요. 우찬이도 제가 하는 일 조금씩 도와주면 생활비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고요.”     


겨울 방학, 시간을 내서 찾아온 우성은 용진에게 말했다. 용진은 기특하다며 우찬과 연숙의 육지 유학을 허락해 주었다. 우성은 섬의 제방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우찬과 연숙을 보며 용진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섬에서 태어난 나는 섬에서 살아도 상관이 없지만 너희는 나와 다르잖니.”

“그렇게 따지면 아버지는 어머니께 더 잘해야 해요.”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애들 좀 잘 챙겨주렴.”     


섬에서 나가는 날, 우성과 우찬은 연숙의 짐을 나눠 든 채로 섬을 나섰다. 연숙과 친구들은 육지의 중학교에서 꼭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3학년인 삼 남매가 다시 재회하게 됐다. 우찬은 손을 흔드는 용진과 화선을 보며 우성과 어젯밤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버지에게는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동안 생활비는 내가 직접 벌었다.”

“알고 있어, 그 말은 왜 하는 건데.”

“너가 숙이 데리고 나가자 했잖아. 내가 하는 일 따라서 좀 도와주라.”     


우찬은 고개를 돌려 연숙이 잠들어 있는 방을 살짝 바라본 뒤 한숨을 내쉬었다.     


“왜, 싫냐? 싫으면 숙이 여기에 두고 나가고.”

“형님, 그런 거 싫다고 할 거였으면 숙이 얘기 안 했지. 다들 나를 아직도 주먹 대장으로 보는 구만.”

“아버지가 너 더 이상 안 싸우고 다닌다고 연락 왔을 때는 솔직히 못 믿겼다.”

“내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한 거 본 적 있나.”

“없지. 그러니까 더 멋있다, 우리 동생.”     


용진은 무조건적으로 아들들에게 짐을 들게 하지는 않았다.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며 따로 연숙과 함께 제방을 걸으며 육지에 가는 건 어떤지 물었다.     


“좋아.”

“뭐가 그리 좋냐.”

“오빠들이랑 함께 하니까.”

“아비랑은 함께 하는 게 별로냐?”

“그건 아니지만 오빠들이랑 있으면 재밌어.”     


용진은 연숙에게도 숙제를 내주었다.     


“숙아, 오빠들이 집에 없으면 직접 빨래도 하고 널기도 하고 개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

“물론이지! 엄마가 하는 걸 늘 옆에서 봤는걸.”

“이제는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네가 직접 해야 하는 거야. 잘할 수 있겠냐?”     


연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용진의 손을 붙잡고 선착장으로 돌아가니 배는 도착했고 우성과 우찬은 이미 배에 짐을 다 실은 뒤였다. 용진은 찻값은 있냐고 물었다.     


“아버지께서 찻값은 좀 주세요. 오랜만에 용돈 받는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용진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쥐어준 뒤 우성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우성은 그런 아버지의 돈을 받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또 다른 기분이네요. 3년 전에 혼자 나갔을 때는 가슴이 뛰었는데 이제는 조금 막막한 것 같기도 한 것 같고요.”

“너가 이 아비의 마음을 좀 깨달아가는 모양이구나.”

“아직 알려면 멀었어요. 이만 가요.”     


우성은 아버지와의 대화를 마친 뒤 어머니를 안았다. 화선은 등을 토닥이면서 굶지 마라, 아프지 마라 등 여러 걱정을 하며 품에서 자식 3명을 보내주었다. 우성과 우찬, 연숙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용진은 화선에게 말했다.     


“아들이란 놈이 아비는 안아주지도 않고 가네.”

“우성이 아까 뭐라 그랬어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으려면 멀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렇지, 나도 안아줄까 봐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막내딸이 볼에 뽀뽀도 해주고 얼마나 좋아요.”

“그건 그렇지.”     




육지에서 함께 살아간다 해도 삼 남매가 자주 볼 수는 없었다. 초등학생인 연숙은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와 집안일을 서툴게 한 뒤 혼자 놀거나 숙제를 한 뒤 잠에 들었다. 우성과 우찬은 약속한 대로 일을 하며 생활비를 꾸리느라 11시가 되어 집에 들어왔다. 그럴 때면 여동생은 늘 이불을 걷어찬 채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숙이는 오늘도 새우잠이네.”     


우찬이 먼저 씻으러 간 뒤 우성은 연숙에게 이불을 다시 덮어준 뒤 연숙이 한 서툰 집안일을 다시 하며 우찬이 다 씻기를 기다렸다. 우찬이 나오고 우성이 들어가면 똑같이 우찬도 집안일을 마저 한 뒤 잠에 들었다.     


“한 달째인데 우리 형은 어떻게 이러고 3년을 사셨대.”     


우찬의 말에 우성은 몸을 돌린 뒤 물었다.     


“멋있지?”

“그러게. 우리 큰형님이 짱이여.”

“아버지, 어머니도 늙는 건 한순간이야. 먼저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더라.”

“보니까 우리 형님은 이미 어른이던데‘

”고맙다, 너도 곧 어른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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