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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원 Sep 26. 2024

5화. 섬의 집 (5)

섬에는 가족이 있다.

[家和萬事成] ∥ 가화만사성     


“용준아, 이거 읽을 수 있겠냐?”     


젊은 시절 이 섬의 지금은 공터만 남은 학교의 한문 선생님으로 일했던 용진은 섬의 집 문패를 때어 막내인 용준에게 보여주었다. 용준은 이제 막 5살, 한자를 공부한 지는 겨우 3달 남짓 된 초보였다. 그래도 용준은 웃으며 해맑게 집 가(家)를 읽으며 신나 있었다. 용진 역시 잘 읽었다며 가화만사성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이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이다. 언제나 엄마 말 잘 듣고 아빠 말 잘 듣고 누나들이랑 잘 지내야 한다. 가족이라는 건 언제나 함께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고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거란다.”     


어린 용준은 아마 용진의 마음을 잘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용진은 용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언제가 이 말을 알 거라고 했다. 그러나 어린 용준은 할아버지의 말은 금세 잊어먹은 채로 부모님이 오면 집 가를 맞춘 걸 자랑할 생각에 웃기만 할 뿐이었다.

용진도 그럼에도 따라 웃었다. 5살 된 손자가 한자 하나를 읽었다는 게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용진은 홍삼 사탕을 용준에게 하나 쥐어준 뒤 다시 문패를 걸러 밖으로 나섰다.     


“할아버지는 엄마, 아빠가 좋아요?”

“물론이지. 다 같은 가족 아니냐.”

“할아버지가 좋으면 저도 좋아요.”     


용진은 멀리 있는 결명자차를 컵에 따른 후 용준에게 건넸다. 용준은 쓰다며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런 모습을 본 용진은 웃을 뿐이었다. 그저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귀엽게 보인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 말이 있냐?”
“우리 가족은 언제나 행복할 수 있는 거예요? 가화만...”

“가화만사성. 모든 일이 다 잘 풀린다는 건 가족이 행복하다는 뜻일 테니까.”     




아직 오지 않던 우찬을 가장 먼저 반긴 건 섬의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던 연숙과 우성이었다. 배에서 막 내려 짐 정리를 하고 있던 우찬은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것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섬의 오른막길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연숙이 보이자 우찬 역시 손을 흔들었다.     


“오빠를 반기는 동생이 있어서 좋겠어?”     


아내인 민선은 그런 우찬의 옆구리를 찔렀다. 우찬은 여전히 동생이 귀여웠는지 짐을 들고 빠르게 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성은 우찬과 간단하게 악수를 하며 아이들 앞에서 꽁트를 이어갔다.     


“강 사장은 요즘 잘 지낸갑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소. 아버지는 잘 지내시고?”

“가서 직접 보게.”     


썰렁한 꽁트가 끝나자 옆에 있던 석현이 말했다.     


“빨리, 큰아빠, 작은 아빠 삼촌들에게 박수!”
 

석현의 재빠른 대처 때문에 우성과 우찬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 우찬은 올라가면서 우성과 석현에게 썰렁한 개그를 했고 뒤에서 그 모습을 모던 연숙과 민선은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울 오빠가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대.”

“그러게, 나도 어쩌다가 결혼했을까.”

“저런 개그가 재밌게 들려서 결혼해 버린 거 아니야?”     


대화가 오고 가다 보면 어느새 송도의 언덕에 위치한 집에 도착한다. 용준과 잡다한 얘기를 나누던 용진은 둘째 아들까지 오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찬이 왔냐!”
“네, 아버지. 저 왔어요. 불도 좀 피시고 방을 따뜻하게 좀 하시지는 왜 밖에 나와 있어요.”

“아들이 안 왔는데 방에서 발 뻗고 잘도 자겠다.”

“우리 아버지 멋진 아버지였네. 아버지 드시라고 장어도 가지고 왔어요.”     


우찬은 둘째 아들인 재원이 끌고온 수례에 있는 스티로폼 박스를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용진이 좋아하는 장어가 여러 마리 들어 있었다.     


“시장 나가보니까 값이 비싸다던데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

“아버지께서 고기를 못 드시니까 이렇게 많이 사 왔죠. 남기시면 안 돼요.”     


민선은 스티로폼 안의 장어를 슬쩍 보고는 용진을 보며 말했다.     


“아버님, 구이 다 드시면 장어탕도 끓여드릴게요!”     


용진은 그런 민선을 보며 좋다고 말했다. 오후 1시, 오랜만에 송도에서 모인 삼 남매는 짐을 정리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설날인 만큼 차례도 지내야 하고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부지런하게 각자의 역할을 맡아 하니 금세 날이 저묾에도 금세 차롓상을 차리는데 성공했다.     


“애들아, 다들 나와서 절해라.”
 

우성의 말에 방에 있던 아이들은 각자 하던 일들을 그만두고 밖으로 나왔다. 숙제를 하던 주원은 펜을 껴둔 채로 책을 덮었고 닌텐도를 하던 민지와 재원도 마찬가지로 게임을 잠깐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연숙의 첫째인 도아는 막내인 용준이 신발을 신을 수 있도록 도와준 뒤 함께 밖으로 나왔다.

우성과 우찬이 먼저 절을 올린 뒤 차례대로 절을 올리며 설날의 저녁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용준이 거의 넘어지다시피 절을 올린 뒤 차롓상은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석현은 마당에 불판을 준비한 뒤 숯을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 숯 어디 있는지 아세요?”

“갔다 주마.”     


용진은 마루에서 일어나 창고로 향했다. 석현은 본인이 가도 된다고 했지만 용진은 고개를 저으며 숯을 두 봉지나 들고 나와 석현에게 건넸다. 그사이 손질된 장어를 우찬은 다시 확인하고 있었고 우성은 불판의 먼지를 마저 닦으며 준비를 마쳤다.     


“아버지, 장어는 어떻게 구워드릴까요?”

“평소처럼 구우면 되지.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아뇨, 그냥 양념이라도 한 번 발라서 구워드릴까 했죠.”

“양념이랑 같이 굽다 보면 탄 맛이 나서 별로야.”     


5년 전 용진은 병원에 잠시 입원한 적이 있었다. 단순한 건강 검진 차로 이틀 정도 입원한 거였지만 어째서인지 그 이후부터 고기를 소화해 내지 못했다. 육고기를 먹지 못하는 용진을 위해 삼 남매가 생각해낸 것은 생선이었다. 고기만큼 기름진 생선들 중 하나인 장어가 용진의 식탁 위에 올랐을 때 오랜만에 식탁에서 용진은 웃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용진의 생일에는 우찬이 늘 장어를 준비했고 화선의 생일에는 늘 소갈비를 준비했다. 명절에는 돼지고기와 장어를 늘 준비해 함께 먹었다.     


“애들도 나와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용진은 손주들을 챙겼지만 우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랑 어머니 드시고 나서 애들 불러도 돼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 나오면 어머니, 아버지 제대로 드시지도 못할 걸요.”


“아니, 그래도 애들도 밖에 나와...”     


이때 연숙은 막 익은 장어를 깻잎에 싸서 용진의 입에 넣어주었다. 용진은 하던 말을 멈추고 막내딸의 쌈을 먹으면서 고기를 굽고 있는 큰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한편 우찬은 대문 옆 작은 창고에서 굴을 가져와 화선에게 먹어도 되는 거냐고 물었다.     


“먹어도 된다. 너희들 주려고 따로 빼둔 거야.”

“형님, 숙아, 이거 집에 가져갈 사람 있어?”     


우찬은 굴 한 망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우성은 구워서 먹게 가져오라고 한 뒤 불판의 한쪽에다가 굴을 올려놓은 뒤 장어와 함께 구운 굴을 까서 건넸다.     


“너희는 안 먹냐.”     


아버지란 게 원래 이런 것이다. 손주들이 있다면 손주들을 먼저 챙겨주고 싶고 자식들이 있다면 자식들을 먼저 챙겨주고 싶다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성은 마음만 받겠다며 끊임없이 용진과 화선에게 음식들을 구워주었고 화선이 배부르다고 말하고 나서야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의 수만 해도 8명, 어른들의 수까지 합하면 1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불판에 둘러 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먼저 끝낸 용진은 주하와 민선이 끓여준 장어탕을 먹으며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 보았다. 용진이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는 모습을 용준은 보면서 국물이 맛있는지 물었다.     


“국물이야 언제나 맛있지.”     


섬에는 가족이 있다. 원래의 가족에서 새로운 구성원들이 늘어났음에도 모두가 가족이라며 잔을 기울이고 밥을 함께 먹지 않는가. 용진의 눈에는 이 모습은 그저 아름다운 한편의 사진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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