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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원 5시간전

6화. 꿈과 가족 (1)

응원과 반대는 공존한다

어릴 때는 몰랐던 것들이 자라면서 새롭게 보일 때가 있다. 초등학교 때 발표 수업에서 나는 가족이 무엇이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님들이 오시는 참관 수업에서 자신 있게 발표한 내용에 선생님은 역으로 물으셨다.     


“용준아, 그러면 친구들도 함께 점심을 먹는데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겠니?”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질문할 거라는 생각도 못 했고 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답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앉으며 받은 박수는 그리 좋은 박수는 아니었다.

수업이 끝난 후 어머니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물론 엄마도 마찬가지로 내게 칭찬을 해주었지만 스스로에게 불만이 쌓인 나머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대답을 잘 못해서 화가 난 거야?”     


엄마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온 이상 더 잘하고 싶다는 어린 아이의 마음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기특했을 것이다.     


“괜찮아, 엄마는 용준이 발표를 인상적으로 들었는걸.”

“진짜로?”

“물론이지. 다음에는 대답까지 잘할 수 있을 거야.”     


엄마의 말 하나가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또한 엄마의 교육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말하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는지를 어린 아들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엄마가 반에서 나간 후에 나는 자리로 돌아와 책상 서랍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며 자라왔다. 특히 추리 소설에 대한 소설을 정말 많이 읽었다. 일본 추리 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작품은 내게 신선한 경험을 매일 선물해 주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가족과 관련된 다른 작가의 책을 읽었는데 외할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가화만사성.”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릴 때 봤던 할아버지의 문패가 떠올랐다. 가족이 행복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은 소설에서도 자세히 쓰여 있었다. 가족이 황폐해지는 건 보통 부모가 술에 빠지거나 도박에 빠지는 등 부모에게 늘 문제가 있어 가족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자녀의 문제로 인해 가족이 황폐해져 가는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책 옆에 늘 있던 A4애는 가족이 무엇인지를 쓰려던 나의 흔적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그러던 중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지난 번 학부모 참관 수업 때 썼던 문장만이 종이에 적힌 채로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 저녁을 먹으면서 가볍게 엄마와 아빠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가족이 뭐야?”     


엄마의 눈에는 아직도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해 분해하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정확하게 참관 수업과는 별개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더 많은 생각을 들으면 좋으니 그때의 이야기도 조금 추가해서 묻긴 했다.     


“참관 수업이랑은 별개지만 그래도 친구들은 가족이 아니잖아?”     


엄마와 아빠가 답을 내놓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족은 너가 생각하는 거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닐까? 언젠가 너도 아빠처럼 친구가 가족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그럼 최근에 샀던 책에서 나온 건데 만약에 처음 보는 사람이 본인이 가족이라고 하면 어떡해?”

“음...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때 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너무도 당연한 말에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날 학교에 가서 나는 종이에 내가 생각한 가족을 정리했다. 물론 그래봐야 사람들 이름을 적으며 가족의 범위만 정한 것뿐이긴 하다.     




글이라는 건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말로 사람과 대화할 때는 거짓이 숨겨져 있을 수 있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언제나 직설적이면서 아름다운 표현으로 자신의 생각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다.     


“나중에 뭐가 될 거야?”     


초등학생 때는 그저 멋져 보이는 거에 관심을 가졌다. 베이스를 훔치는 타자나 타자를 꼼짝 못 하게 만드는 투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의 꿈은 퇴색되어 가고 새로운 꿈들과 더욱 확고한 목표들만이 삶에 찾아오게 된다.

A4로 8자 책을 만드는 수업 시간을 갖게 된 뒤 읽은 책들을 8자 책에 정리하곤 했다. 일종의 정리를 통해 그 사람의 생각을 다시 떠올려 본다는 취지였지만 금세 싫증이 나고 그곳엔 낙서만이 가득했다.

“나중에 뭐가 될 거야?”라는 질문은 원하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꿈은 언제나 바뀌고 내가 언제 한쪽 팔을 잃던 한쪽 눈을 잃던 사람의 일은 아무도 모르기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친구들은 습관적으로 물어본다.     


“나중에 뭐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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