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로 만든
"아빠, 인어공주 이야기 해줘."
작은 손이 그의 손가락을 꼭 잡았다.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아이의 체온이 언제부터 이리도 차가워졌을까. 남자는 아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삼켰다. 매일 밤 듣는 이야기인데도, 아이는 지겹다는 말 한 번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는 그 이야기 속 공주처럼,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중일지도 모른다.
"또 해달라고? 맨날 들어도 그렇게 듣고 싶어?"
남자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끄덕이며 그의 품에 기댔다. 희미해져 가는 목소리가 속삭였다. "응, 아빠가 해주는 인어공주 이야기가 제일 좋아."
남자는 익숙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낡은 동화책처럼 부드럽게. "아주아주 옛날에,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속 깊은 곳에 인어공주가 살았단다. 공주는 인간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고, 언젠가 꿈에 그리던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 인간이 되고 싶었던 인어공주는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대가로 마녀와 거래를 했단다. 매일 밤 발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며 왕자의 곁을 맴돌았지만, 왕자는 인어공주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인어공주는... 결국..."
남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아이는 숨을 죽이고 그의 다음 말을 가로챘다.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늘 그렇듯, 이야기는 슬프게 끝이 났다. 남자는 인어공주 이야기가 참 싫었다. 아이에게 더 이상의 슬픔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 이야기를 듣고도 울먹이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주먹을 질끈 쥐었다.
‘내 아이는 절대 물거품이 될 수 없어.’ 남자는 조용히 맹세했다.
그 맹세는 결국 마을 끝의 해괴한 소문 하나를 그의 가슴속 깊이 박아 넣었다. 인어를 먹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이야기. 사람들은 헛소리라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아이의 숨이 점차 가늘어질수록, 남자에게 그 소문은 유일한 빛이자 희망이었다. 영원한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이 아이의 작은 숨통이 조금만 더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 잿빛 바다 어딘가에 아이의 숨을 틔워줄 작은 기적 하나쯤은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두고 집을 떠났다. 인어를 잡으러, 아니 인어를 죽이기 위해. 낡은 어선에 몸을 싣고 거친 파도를 갈랐다. 처음 몇 시간은 그저 막연한 바다의 허망함뿐이었다. 아이에게 해준 이야기처럼 파도는 쉼 없이 부서졌고, 망망대해는 그의 절망을 조롱하는 듯했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바다 저편에 있을지도 모를 마지막 희망만이 그의 눈을 이끌었다. 차디찬 물속으로 뛰어들자 강한 수압이 몸을 짓눌렀고, 발버둥 치는 그를 조롱하듯 흔들었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추위도, 얼어붙는 손가락도 아이가 겪을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며칠 밤낮을 인어가 나타난다는 암초 지대 주변을 맴돌며, 허기에 지치고 피로에 잠식되어 갔다. 차가운 파도가 뺨을 때리고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어 갈수록, 인어가 있다는 비현실적인 소문은 더욱더 그의 유일한 신념이 되었다. 더 이상, 그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아이의 마지막 미소만을 붙잡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짙은 심해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희미하게 빛났다. 푸른 비늘이 달빛처럼 흔들리는 모습. 그것은 틀림없이 인어였다. 푸른 두 눈은 물속처럼 고요했고, 그 안에는 희미한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붉은 입술은 목소리를 잃은 듯 굳게 다물어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 침묵 속에는 어떤 오래된 목소리가 숨어 있는 듯했다. 아름다웠고, 동시에 무언가 익숙한 기운을 풍겼다.
남자는 침착하게 인어에게 다가갔다. 목소리는 파도에 부서져 의미를 전달할 수 없었지만, 필사적으로 손짓했다. 위협이 아님을 드러내며, 한없이 부드러운 눈빛을 보내려 애썼다. 아이에게 들려주던 인어공주 이야기 속 왕자처럼, 다정하고 친근한 얼굴로.
밝게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에 인어의 경계심은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신비로운 푸른 눈이 그를 응시했다. 바로 그때였다. 남자는 준비해 온 거대한 그물을 온 힘을 다해 인어에게 던졌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순식간에 찢어질 듯 날카로운 금속음이 물속에서 울렸고, 그물은 푸른 비늘을 가진 인어를 감쌌다. 인어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몸부림치며, 거대한 꼬리로 물을 휘저었다. 주변의 해초들이 뿌리째 뽑히고 물살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인어는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물 안에서 온몸으로 저항하는 그것의 필사적인 움직임은 그 어떤 비명보다 처절하게 느껴졌다. 비늘이 그물에 쓸려 떨어져 나갔고, 선홍색 피가 푸른 심해 속으로 몽환적인 물감을 풀어놓듯 번져 나갔다. 격렬한 저항 끝에, 인어는 차가운 바닥에 힘없이 나뒹굴었다.
그 순간, 남자의 등골에 섬뜩한 감각이 스쳤다. 인어의 몸에서, 마치 인간의 심장 소리 같은 울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희미했지만, 분명 남자의 귓가에, 아니, 심장에 말을 거는 듯했다. 너무나 익숙하고, 너무나도 인간적인 울림. 그것은 아이의 심장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인어를 내려다보며 헐떡이는 숨을 내쉬었다. 그물에 걸려 파닥이는 존재.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지만, 분명히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존재.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에는 명백한 공포와 함께 저주스러운 눈빛마저 스치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그물 사이로 드러난 인어의 맨살에 닿았다. 손가락 끝에 스치는 비늘은 서늘한 물고기의 것이었지만, 그 너머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온기, 강하게 울리는 심장의 고동은 틀림없는 인간의 그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아니 그녀는 동화 속 인어공주처럼, 무언가를 간절히 얻기 위해 자신을 바쳐 이 모습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어딘가 익숙한, 그러나 잊혀진 언어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물 속에서 그토록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꼬리는 동물의 무의식적 반응이 아니라, 인간의 절규 같았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던 깊은 눈은 분명 인간의 그것처럼, 어떤 감정과 영혼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이의 희미한 숨결이 머릿속에 쓰나미처럼 덮쳤다. 아이는 아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없이 차갑게 식어가던 아이의 작은 손, 가늘어지던 숨. 그의 딸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죄책감은 발버둥 치는 인어의 몸처럼 그의 안에서 요동쳤지만,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집착 앞에서 점점 희미해졌다. 살려야 한다. 내 아이를 살려야만 한다. 그것이 그의 머릿속에 남은 유일한 이성이자 본능이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그를 덮쳤지만, 결국 그의 손은 움직였다. 차가운 칼날이 인어의 비늘을 갈랐을 때, 진하고 검붉은 피가 물속으로 번져 나갔다. 그 피는 꼭 아이의 힘없이 가라앉던 눈동자 색과 같았다.
그날 밤, 마을에는 희미하게 생선 비린내와 함께 짭짤한 해풍 냄새가 섞여 불어왔다. 남자는 인어 고기로 국을 끓였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 밥을 말아 죽어가는 아이에게 먹였다. 아이는 오랜만에 스스로 숟가락을 들었다. 창백했던 얼굴에 홍조가 돌았고, 움푹 팬 눈이 다시 빛나는 것 같았다. "맛있어, 아빠." 아이가 힘없이 속삭였다. 남자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정말 영생의 힘이었을까. 아이의 기력이 조금씩 돌아오는 듯했다.
그는 믿었다. 바보같이, 광기 어린 희망에 사로잡혀서, 기적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잿빛 파도의 잔인한 속삭임이자, 인어들이 인간의 탐욕에 드리운 복수였다. 바다 깊은 곳, 인어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영생의 열쇠로 착각하게 만든 그 소문이, 사실은 달콤하고도 섬뜩한 저주라는 것을. 인어를 먹으면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살점을 탐낸 인간은 고통스러운 육신의 변이를 거쳐 그들과 같은 존재, 즉 인어가 되는 것이었다. 육지를 그리워하던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기 위해 혀를 내주었듯, 그들의 저주는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 바다의 존재로 변모시킨다. 느리고, 은밀하고,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변화. 피부는 햇빛을 받지 못해 비늘처럼 윤기를 잃고 푸르게 변해 가고, 폐는 육지의 공기를 버거워하며 물을 갈망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인간의 두 다리는 물살을 가르는 하나의 꼬리가 되어 바다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이 저주의 방식이었다. 인간의 탐욕이 자초한, 가장 잔인하고도 당연한 형벌.
그들도 모두 처음은 인간이었다. 탐욕과 욕심 끝에 바다로 내몰려, 새로운 형태로 다시 태어난.
아이는 기력을 되찾는 대신, 밤바다의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곤 했다. 흙냄새를 맡으면 구역질을 했고, 짠내를 갈망하며 마른 입술을 혀로 적셨다. 피부는 비닐처럼 잡아당겨지더니 갈라지고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푸르스름한 수액 같은 것이 흘러내렸고, 손톱은 뿌리부터 썩어 문드러지듯 떨어져 나가 핏빛 생살을 드러냈다. 아이는 육지의 공기를 마치 유리 조각처럼 버거워하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거친 숨을 내쉬었고, 잠 못 이루는 밤마다 비명을 지르며 욕조로 기어들어가 차가운 물에 온몸을 집어넣고는 경련하듯 떨었다. 작은 손가락 마디마디는 안에서부터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꺾여 갈고리처럼 뒤틀렸고, 발가락은 마치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다 서로 엉겨붙어 잿빛 진물이 흐르는 거대한 물갈퀴처럼 부어올랐다. 아이는 예전처럼 재잘거리지 않았다. 간혹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나오는 소리는 쉬익, 쉬익, 마치 조개껍데기가 바닥에 긁히는 듯한, 혹은 썩은 해초에서 터져 나오는 기포 같은 소리였다.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그에게서 멀어지는 듯했다, 마치 인어공주처럼.
어느 날 아침, 남자가 잠든 아이의 얇은 이불을 걷어 올렸을 때,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더 이상 작고 가는 다리가 아니었다. 창백한 다리는 무릎 아래부터 끈적하고 역한 냄새를 풍기는 점액으로 서로 뒤엉켜 하나의 기형적인 형태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발목뼈가 끔찍하게 부러지고 재조립되는 끔찍한 파열음이 남자의 귓가를 찢었다. 햇빛을 받아 섬뜩하리만치 푸르게 빛나는 비늘들이 그 괴이한 능선을 따라 돋아나 있었고, 피가 고여 검붉게 얼룩진 듯한 부드럽지만 단단한 꼬리의 형상이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그때서야 남자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의 아이가, 이 작은 아이가, 인간의 모든 것을 잃고 있었다는 것을. 그의 품에서 잠들었던 아이는 이제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심장은 차가운 바닷물처럼 식어갔다.
그는 아이에게 인어로 만든 국을 먹였고,
결국 아이를 인어로 만들었다.
인어는 바다로 돌아간다.
딸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잃고, 이제 그녀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 돌아갈 것이었다.
아침 햇살이 비늘을 반짝이게 하는 아이의 꼬리를 비추던 그날, 남자는 아이를 안고 바다로 걸어갔다. 그는 딸아이를,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 존재를, 차가운 파도 위에 놓아주었다. 물에 닿자마자 아이는 살아 움직였다. 작은 꼬리를 힘껏 내젓는 아이의 뒷모습은 너무나 빠르고 아름다워,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물거품처럼 사라진 줄 알았던 인어공주는 사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동화는 끝맺었지만, 인어는 살아남아 복수했고, 그 복수는 또 다른 인어를 탄생시켰다. 남자는 이제 알았다. 옛날 옛적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왕자님을 위해 스스로 물거품이 되는 비극을 택했지만, 그의 아이는 바보 같은 아빠의 이기적인 선택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잃고 바다로 돌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밤이 깊어지면, 남자는 다시 한번 아이의 빈 침대 옆에 앉는다. 그리고 나지막이 인어공주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지만,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아주아주 옛날에,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속 깊은 곳에 인어공주가 살았어요. 공주는 인간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고, 언젠가 꿈에 그리던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
그리고,
그리고.....
그 인어는, 다시 바다로 돌아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