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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곰 엄마 Jun 17. 2022

아니 난 왜 여기도 저기도 乙이냐?

난 회사에 7년째 다니는 동안 흔히 말하는 갑질 한번 시원하게 해 본 적이 없다.

갑질이란 건 결코 좋은 행동이 아니란 건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우리 제품을 사가는 사람들은 이런 갑질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온다.

우리 회사 초창기 때, 우리보다 규모가 더 큰 회사 이름으로  OEM 제품을 만들어 나갔는데 그 회사 담당자는 말끝마다 명령조로 말을 했다. 한 번은 회사에 납품 시기가 맞지 않아 조율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대뜸 한다는 소리가 자기 회사가 갑이니 갑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무슨 말이 많냐고 소리를 질렀다. 거기서 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뉴스나 예능에서나 일명 갑질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봤던 것이 내가 실제로 회사 생활하면서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아쉬운 사람이 을이 되는 건 맞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본인 스스로를 갑이라 칭하지는 않는데, 이 사람은 본인이 갑이라는 걸 대놓고 말하니 순간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난 당황해서 확인해 보겠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고 현장에 가서 담당에게 말하니 담당 직원이 어이가 없는지 대표님께 전후 사정을 다 말씀드리며 우리가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드렸다. 조용히 들으시던 대표님 하시는 말씀이 이 하나를 영업하기에 얼마나 힘이 들었는 줄 아냐며, 그냥 해 달라는 대로 해 주라고 말씀하시고 나가셨다.

그렇다.. 우린 힘이 없었다. 그래서 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전화 걸어서 원하는 대로 해 드리겠다고 말하니, 그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끊었다.

그래, 난 매출처에서는 을이다.

그럼 매입처는?

소규모의 회사지만 나름 철칙이 직원 급여와 매입대금은 정해진 날에 무조건 주는 거다.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이것만은 무조건 지키고 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대표님이 어떻게든 구해오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꼬박꼬박 어기지 않고 매입대금을 지급한 매입처에서는 난 갑인가?? 이것도 아니다. 거의 을에 가깝다.

소규모의 사업장이고 주문 수량이 많지 않다 보니 대량으로 주문하는 곳에 순위가 밀리기 일쑤였고, 영업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면 심드렁하게 받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회사가 요즘 바빠서 잔업까지 해도 물량 맞추기가 힘들다며 본인도 정확한 일정을 말하기가 곤란하다고 말이다. 그럼 난 매입처 담당에게도 힘들다는 소리를 몇 번이고 하고 한번 도와달라고 사정을 해서 간신히 부품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럴 때마다 생산관리 직원에게 왜 우리는 매출처에서도 을이고, 매입처에서도 을이냐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뭐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우리 회사가 작아서 또 힘이 없어서 그런 거지. 다른 이유가 있겠나... 

갑 그리고 을이 회사 내부에서도 존재했다.

회사의 최고 권력은 당연히 대표님이시고 그 밑이 직원들인데 회사 직원이 많지 않아 큰 회사의 조직하고는 좀 틀리지 않을까 싶다.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라 서로 개인적인 일들을 얘기도 하고 상담도 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직급의 존재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명의 직원이 새로 채용되고 일명 박힌 돌이 되어버린 나름 창업 멤버인 직원은 자신보다 높은 직급의 직원이 들어오는 걸 용납하지 못하고, 무슨 위기감을 느꼈는지 자신의 위치를 더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온갖 짜증을 다 부리고 또 괴롭히기까지 하며 직원을 채용하려는 대표님께 본인이 없으면 이 회사는 안 될 거라는 무언의 시위를 대표님과 직원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회사의 갑은 대표님이 아니었다. 바로 창업 멤버라 칭하는 그 사람이 갑이었다. 모두가 그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회사에서 여러 가지 중요 업무를 밑에 직원에게 가르쳐주지도 않고 온갖 핑계를 대며 업무를 혼자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표님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걸 본인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스스로에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고 한 행동이었다. 꼭 끌어 앉고 있던 그 업무는 당장 그 사람이 없어서 힘들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가 그 업무를 하고 그러다 보면 공백은 사라지게 되어있는 게 회사다.

‘우리 회사에서는 내가 없으면 안 돼‘라는 생각은 너무 어리석은 생각 같았다. 또 이런 생각을 가지면 본인 스스로가 갑이 되고, 조직으로 움직이는 회사에서는 더욱더 어울리지 않다는 걸 느꼈다. 

지금은 그만둔 그 직원이 다른 곳에 취업해서 다니고 있는데, 입사 초반에 많이 힘들었다고 들었다. 여기 있을 때는 직원들에게 큰소리치고 다녀도 누구도 아무 소리 못해서  대장 노릇을 했었는데,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신입인 데다 직원들이 말도 안 걸어줘서 눈치 보이고 답답하다고 말이다. 거기서 느꼈으리라 전에 회사가 얼마나 맘이 편한 회사였는지...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 갑질에 익숙한 직원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없었으니 말이다.


매출처, 매입처에서는 을이 될 수 있지만, 이 모든 업무를 하는 회사 안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있어 갑과 을의 존재가 나뉘지 않았으면 한다.  현재 우리 회사의 갑은 대표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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