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확정기일-
처음에 서류 접수 할 땐 3개월의 숙려기간이 너무 멀게 느껴졌고 그 기간 동안에도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드디어 왔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남편 집 앞으로 데리러 갔고, 둘이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전혀 이혼할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표면적으로 그렇게 대화를 하며 법원에 도착했다
시간이 좀 남아서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들고 법원 안에 있는 정자 의자에 앉아 평상시와 다름없이 일상대화를 나눴다.
시간이 되어 법원으로 들어간 우린 이미 먼저 와 있는 이혼 대기자들의 모습에서 좀 어색함을 느꼈지만 둘이 나란히 앉아 다시 아이들 얘기와 추석에 애들하고 같이 놀자고 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살짝 이방인 같은 모습으로 우린 재잘재잘 웃으면서 얘기했다.
각자 떨어져서 앉아있는 부부, 같이 앉아 있어도 웃음끼 하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는 부부, 우리만큼은 아니어도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부부, 그곳에서 조차도 서로 죽일 듯이 날이 선 부부,....
어떤 모습이어도 목적은 같은 다 같은 부부들이었다...
대기표를 먼저 받으려고 줄을 선 부부들의 모습에서 빨리 서로에게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간절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신분증을 제시한 후 대기표를 받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순서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근데 놀라울 정도로 빨리 열리는 문에서 살짝 멘붕이 왔다
아니 힘들게 결정하고 어렵게 어렵게 법원 문을 두드린 건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판결에서 이혼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하는 생각에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20년이다.... 서로에게 힘들게 노력하고 상처 주고 상처받고 울며 불며 죽여라 죽여라 살았던 시간이..... 근데 단 1분 만에 끝나는 게 좀 허무했다. 1분이면 끝날일을 난 너무 오랜 시간을 헤매고 있던 것인가...
그래도 우린 서로 아무렇지 않은 듯, 오~~ 엄청 빨리 끝나네~ 바로 구청 가서 접수하자 하고
집 근처 구청으로 갔다. 거기서도 우리보다 먼저 이혼서류를 작성하고 계신 부부가 계셨다.
엄청 신중해 보이는 모습에서 쓸게 많나 하는 생각에 서류를 꺼내 작성요령을 자세히 봤는데 각 배우자의 한자이름과 한자로 된 본도 필요했다. 거기다 부모님의 주민번호등 굳이 이런 게 필요할까 하는 내용의 양식이 너무 낯설기도 어렵기도 했다.
뭐 우여곡절 끝에 다 작성 후 신청서를 제출하고 아이들의 보험 계약자 수익자 변경하려고 갔더니..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했다... 아휴 보험부터 처리할걸...... 이혼 서류를 제출해서 일주일정도는 증명서를 발급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나중에 변경하기로 하고 우린 너무 배가 고파 근처 초밥집에 들어가서 초밥과 시원한 생맥주를 시켜 먹었다. 9월 중순을 달려가는데도 8월 초에나 볼 수 있는 뙤약볕의 날씨로 이미 우린 쓰러지기 직전이었으니 시원한 맥주가 너무 그리웠다.
그걸 시작으로 장소를 옮겨 가며 마지막 만찬인 양 술과 음식을 먹었다..
대낮부터 먹은 터라 취기가 올라오긴 했지만, 행동과 말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조심스럽게 했다.
이젠 남이라 그런지.... 예의를 갖췄다고나 할까....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서로 좋은 모습으로 응원하는 입장에서 실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아직까지 현실이 느껴지지 않은 이혼 부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