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얘기를 하면 안 되겠니??
나와 제일 오래된 친구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친구는 지금껏 만나는 하나뿐인 유일한 고교 동창이다.
삼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다투거나 말다툼 한번 없이 서로의 생활을 너무 잘 아는 절친이다...
(서로 배려하는 성격이라 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먼저 아이를 낳았고 그 친구는 나보다 먼저 결혼을 했지만 더 늦게 아이를 낳았다.
그 친구는 맞벌이하면서도 아이를 애지중지 남편과 잘 키워냈다
나보다 여유 있던 친구여서 아이들과 같이 만날 때면 밥을 사고 난 커피를 사는 정도로 나의 형편을 잘 이해해 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친구가 영종으로 이사 가서도 내가 영종으로 거의 내려갔다 그렇게라도 해야 여유가 없던 내 생활에 비싼 밥값을 척척 내지 못하는 나의 미안함을 어찌 보면 그렇게라도 표현했던 것 같다.
친구와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까..... 서로 가정의 근황을 얘기하던지 요즘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는지 등등하겠지만, 난 가면 항상 듣는 얘기는 친구 딸의 성적과 진로 고민 그리고 아이를 위한 재산증식.... 거의 반나절 이상을 듣고 온다.. 친구 딸은 엄친딸이라 공부도 엄청 잘하고 키도 크고 날씬하고 착하다. 나도 많이 이뻐라 한다. (근데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이쁘게 생각하는 것처럼 난 우리 딸이 키는 작지만 얼굴은 더 이뻐보였다)
내가 가끔 넌 딸 생각 빼고 하고 싶은 건 없냐고 널 위해 투자하는 건 없냐고 물어봐도 자기 꿈은 그저 딸이란다....
아무튼 그런 세월을 거의 20년 가까이하다 보니 어느 순간엔 대화 거리가 온통 친구딸만 있는 게 좀 불만스러웠다...
예전엔 내가 형편이 어려워 밥값을 맘껏 못 내는 미안한 맘에 영종까지 매번 갔지만,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나도 친구에게 밥을 충분히 살 수 있는 능력도 되고 그렇게 나름 떳떳하게 만난 게 거의 십 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영종에서 거의 만난다.
작년에 여러 가지 일들로 나도 시간이 나지 않아 친구를 거의 볼 수 없었고 가끔 통화를 하면 어김없이 딸 얘기로 시간을 다 보내니 나도 연락을 뜸하게 했다.
그러다 마침 시간이 돼서 이사한 우리 집 구경도 할 겸 모녀끼리 모여서 밥 먹고 대화를 하는데 역시 대화의 주제가 엄친딸..... 학교에서 미모가 넘사벽으로 통한다는 둥.. 인근 학교에서도 딸을 다 안다는 둥.... 수시... 정시..... 학원..... 온통 딸 얘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 넌 얘기가 00 얘기밖에 없냐??’ 그러니 자기는 딸밖에 없고 행복도 딸한테 찾는다고.... 물론 행복이란 게 다양하니까 그래 존중한다... 그러다 이사 얘기로 나왔는데 송도에 60평 아파트를 봤는데 노후대책 겸 투자로 사려고 한다고 요즘도 20억 가까이 되는 집이다... 현재 집을 팔고 예금 주식 거기다 퇴직금 등등을 정리하고 최대한 대출을 적게 받으려고 한다고 60평인데 방이 몇 개 안 돼서 고민이다...(참고로...이사한 우리집은 20평이다) 또 남편이 연금을 자기 이름으로 든다고 하는 걸 뭔 소리냐고 딸이름으로 들으라고 했다면서 자기 연금이랑 예금은 전부 딸 줄 거라면서 얘기하는데, 난 소파에 앉아 있는 울 애들을 슬쩍 보았다..
난 우리 애들한테 사랑밖에 줄 게 없는데, 저 아이들이 이모 얘기를 들으면서 친구딸을 부러워하는 건 아닌지 좀 걱정이 됐다...
다행히 그림 그리기에 바빠 신경도 안 쓰는 듯싶었다...
그렇다.. 5시간을 같이 있으면서 대화가 위에 얘기만 하는데 내가 무슨 할 얘기가 있겠냐..
중간중간에 난 물어본다... 넌 요즘 회사는 어떠니? 너 운동은 하냐? 맨날 어디 아프다 하는데 몸 좀 신경 써라. 취미 생활은 뭐 하니? 재미있는 일은 뭐 있었니?
이런 물음엔 그저 간단하게 대답한다. 안 해, 없어 또는 해야지 등.
난 친구가 잘 살아서 배 아픈 게 아니다... 누구보다도 난 내 친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로지 딸한테 느끼는 행복 말고 친구가 본인을 위한 투자로 사는 인생의 행복을 말이다.
그리고 오랜 친구로서 바람이 있다면..
이젠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이들 남편 얘기가 아닌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이 음식 맛있다 또 어디가 뭐가 맛있다더라. 커피를 마시면서는 여기 카페 이쁘다 지나가는 사람들 또는 밖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서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은 것이다..
솔직히 겁이 난다... 내 오랜 친구를 멀리하게 될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