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의 꼭두각시 막을 내리다.-
드디어 인수인계받을 직원이 새로 들어왔다. 5년 정도 경력단절 상태였고 회계전공이라는 말만 들은 나는 첫날부터 이것저것 물어보는 여직원이 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어 보여 보기 좋았다.
내가 하는 업무가 워낙 다방면이라 일일이 하루 만에 알려주는 건 말이 안 되고, 먼저 전화업무에 필요한 영업지원 쪽 업무를 알려줬다. 뭐 영업지원이라고 할 건 전화받고 민수 쪽 발주면 주문서와 거래명세표 발급하는 것이 다 이기에 이것만 먼저 알려주고 맛보기만 보라고 이카운트 계정에 연결시켜줘서 보라고만 했다.
그리고 수입 지출 전표 쓰는 법 이건 더존을 사용해 봤다고 하니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알려줬다.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어 놨기에 그냥 설명 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고 오늘은 그냥 보기만 하라고 말하고 직원이 질문하는 것을 설명해 주면서 난 내 일을 처리했다.
하필 택배사에서 제품이 바뀌어서 업체로 나가는 바람에 여기저기 전화해서 일을 처리하고 하루를 다 보낸 것 같았다.
직원이 궁금한 게 많은지 이것저것 질문하고 난 내가 하던 일이라 대답은 해줬지만, 급하게 공부할 필요 없다고 안심시키고 며칠은 그저 업무 돌아가는 것만 봐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렇게 내일 보자며 퇴근하고 다음날 회사에 왔더니... 소장님이 하는 말... 자기하고 회사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안 다니겠다고 했단다...
뭐가 안 맞다는 거지??
소장님이 하는 말은 원래 회계랑 총무만 하기로 해서 온 건데.. 전화업무 등 영업지원 업무와 내가 하는 일을 보고 회계하고는 거리가 먼 업무가 주가 되는 것 같아서 안 맞는다고 한 것 같다나.... 나보고 영업지원 쪽은 몇 달 뒤에 슬쩍하게끔 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내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 영업지원 쪽인 전화업무하고 주문서와 거래명세표 작성등이 있는데 이걸 가르쳐주지 말았어야 했다니.... 기가 막혔다.
그래서 내가 “그럼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줘야 할 부분을 명확히 얘기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난 들은 것도 없고, 그저 인수인계를 해 주라는 거였는데, 회계랑 총무업무만이라니... 난 솔직히 회계랑 총무업무의 범위가 정확히 어디까지인 줄도 모르겠다.” 고 말했다. 너무 광범위하게 일을 했던 터라 내 책상 위의 파일철만 봐도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 않았을까도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다음에 올 직원한테는 인수인계할 정확한 업무를 나에게 미리 얘기해 주세요. 나중에 다른 말하지 말고요”라고 말한 뒤. 이 어이없는 회사의 시스템에 진절머리가 났다.
대체 위에서는 줏대 없이 이 사람 말 듣고 OK, 저 사람 말 듣고 OK, 그럼 정리라도 해서 확실한 걸 얘기해 줘야지 일을 여러 번 안 하지 이 무슨 쓸데없는 인력낭비를 하는지.. 그리고 일하는 사람 한 순간에 바보 만들어 놓는 상황들이 너무 짜증이 났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봐도 한 사람 바보 만드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나한테는 이리 얘기해서 내가 곰같이 일 처리 다하고 나면 다른 사람한테는 그 사람한테 유리하게 얘기해서 곰같이 일한 난 그 사람의 적이 되어야 하는 뭐 한 회사에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을 만든 게 윗선이 아닌가 싶었다.
어차피 그만두는 마당에 내가 이 회사 사람들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볼 사람은 정작 남아있는 사람들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인수인계 기간 동안 편하게 있으려고 한다.
윗선과 비선실세.... 그들만의 세상에서 정작 난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십 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듯 같이 일했던 직원에게 더 이상의 동료애를 느낄 수없을 만큼의 거리감이 들고, 남아있는 자가 승리자인 것처럼 나를 보는 직원의 모습에 회사에서는 정을 주면 안 된다. 굳이 내가 손해 보면서까지 챙겨 줄 필요가 없었다는 걸 절실히 느끼면서 인생 경험한 듯 허탈한 느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이제 내 앞길이나 생각해야지.
인수인계를 굳이 열심히 해 줄 필요가 있을까도 싶지만, 같은 사람 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에
오늘도 필요한 일들을 하나하나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