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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머리 앤 Mar 12. 2024

Purple day

                        



     흔히들 이런 말을 하지요.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떠날 때는 순서가 없다고. 모두 자기 생일날은 알고 살아도 누구도 자기 제삿날은 알 수 없다는 말이겠지요. 


얼마 전엔 휴가를 받아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그 사이에 우리 너스메니저이자, 존경하는 보스인 캐럴이 저세상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53세인데, 지난 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같이 일했던 사람이 어찌 이리도 허망하게 갑자기 떠나버릴 수 있는지 정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등이 좀 아프고 설사를 가끔 했을 뿐 심하게 아픈 곳도 없었습니다. 간호사라면 누구나 갖는 정말 대수롭지 않은 증세인데 결국 이게 간암 진단으로 이어졌고, 그리곤 딱 3주 만에 떠났습니다.


돌아와서 병원에 다시 나간 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익숙한 환경, 병동 어디서건 캐럴이 "하이!" 하며 뛰어나와 나를 반길 것만 같아 한참을 돌아다녔습니다. 


캐럴의 오피스엔 그녀만의 특별한 시나몬 향기가 있었습니다. 3년을 맡아오던 향, 그 향이라도 맡아보고 싶어 열쇠로 문을 열고 캐럴의 오피스에 들어가 봤지만, 그 향도 없었습니다. 


평소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그녀답게 떠날 때 자신의 향마저 가지고 갔다 싶으니, 그마저 너무 캐럴다워 텅 빈 사무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서 난 눈물만 쏟았습니다.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기 병실에 누워있는 아프고 나이든 저분들이 먼저 돌아가시고, 물론 그들을 돌보는 우리도 언젠간 가겠지만, 적어도 순서는 저분들 다음일 거라고. 


그런데 우리가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여줘야만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저분들은 아직도 저기에 누워 숨을 쉬는데 어떻게 캐럴이 먼저 땅속에 묻힌 건지, 그 얽혀버린 삶의 순서가 난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캐럴을 찾아 헤매다 병실 한구석에 꽂힌 그녀의 장례식 카드를 발견했습니다. 


장례식 카드는 보통 한 면엔 그 사람의 사진을, 다른 면엔 망자를 기리는 좋은 글을 올립니다.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 옆에 실린 시를 여기 옮겨 봅니다.



             When I am an old woman,

                  I shall wear purple.

        '내가 늙으면 난 보라색을 입겠다.'


내가 늙으면 난 보라색을 입고,

거기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빨강 모자를 쓸 거다.

연금을 받으면 음식 살 돈도 안 남기고

브랜디를 사고 여름용 새틴 샌들을 살 거다.

피곤하면 아무 데서나 주저앉기도 하고

내 지팡이로 공공건물을 죽 그으며 다녀도 볼 거다.

비가 오는 날이면 슬리퍼만 신고 밖으로 나가

남의 집 정원에 뛰어들어 예쁜 꽃도 꺾어 보고,

그때는 길에다 침 뱉는 법도 배워 볼 거다.

이래서 젊은 날 너무 절제만 하며 살았던 내 삶을 보상해 봐야지.


하지만 지금 우리는

매달 렌트비를 내야하고

길에서 욕하면 안 되고

디너테이블에 친구와 마주 앉아 신문을 읽어야 하고

우리 아이들에겐 좋은 본보기로 살아야만 한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보라색을 입고 이런 짓을 하게 될 때

주위 사람들이 너무 놀라 뒤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연습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장례식 카드에 써진 이 시를 읽으며, 난 캐럴의 삶을 보는 듯해 그만 눈물을 주르륵 흘렀습니다. 


책임감이 강했던 캐럴은 성실한 사람이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맡겨진 모든 일을 감당하느라, 자기 몸이 아픈 건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일했으니, 막상 간암 진단을 받았을 땐 그 질병과 싸울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겠지요. 그러니 저렇게 쉽게 손을 들어 버린 겁니다. 


가끔 자기 좋은 것도 하면서 일도 대충 하며 힘을 좀 아껴두고 살지, 그녀가 없어도 이렇게 잘만 돌아가는 야속한 세상인데 뭐 하러 혼신의 힘을 쏟았을까? 


물론 내가 죽은 게 아니라 지금 이런 소리도 하는 듯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캐럴의 삶, 나의 삶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또한 꼭 저 시처럼 살거든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당장 해야 할 현실적인 일들을 하느라 정작 하고 싶은 일들은 먼 훗날로 미루고만 삽니다. 


너무 바빠 아플 여유 없으니, 아프지 말라며 몸을 다그치며 살지요. 


하지만 어깨에 올려진 모든 짐 내려놓고, 내 이름, 내 역할 다 내려놓고 편하게 아무 짓이나 해볼 수 있는 그런 날이 과연 내게 올까요? 


캐럴에겐 그런 날이 오질 않았습니다!


얼마 전엔 동료 간호사가 개복 수술을 받은 후 소화가 어렵다고 해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뒷마당에서 캔 감자, 비트, 당근으로 소화가 잘되는 ‘소고기 야채 수프’를 한 솥 가득 끓여서 갔더니, 그 친구가 나한테 돈을 지불해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런 게 다 사람 사는 정이지 무슨 돈 얘기를 꺼내나 옛날 같았으면 의아했겠지만, 지금은 이게 아주 큰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들만의 표현법임을 알기에 그냥 웃어넘깁니다.


"너 지금 내가 보라색 입고 있는 것 안보여? 널 위해 수프 끓이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데. 

 오늘이 내 퍼플데이거든! 나 지금 연습 중이야."


내가 하는 말에 금방 그 시를 떠올리며 친구가 한참을 웃더니 그러더군요.


"그래선지 캐럴의 장례식 날, 얼마나 그녀의 삶이 안타까웠으면 검은색 상복을 입어야 할 가족들이 모두 보라색 옷을 입었더라."


사실 죽음보다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건 망자의 안타까운 삶인 것 같습니다. 


여행 중이라 장례식에 참석도 못 했지만, 난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바로 그 장면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캐럴의 갑작스러운 떠남은 내겐 일종의 waking up call로 다가왔습니다.


캐럴의 장례식 카드를 복사해 내 일기장에 붙여 두고, 요즘은 눈을 크게 뜨고 삶의 균형을 잡아보려 노력 중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직면하면서,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 삶에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렇게 버리고 생긴 빈자리는 또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 삶에 퍼플데이를 끼워 넣었습니다. 


이날을 통해 캐럴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라이프레슨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날만은 한 가지라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할 생각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살아야 내가 언제 죽더라도 가족들이 내 장례식에 보라색 옷을 입을 일이 없을 테니까요. 


물론 이 글을 쓰는 오늘도 퍼플데이랍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내가 주어진 오늘을 더 감사하며 행복에 좀 더 다가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당신! 지금 보라색을 입은 제가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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