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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머리 앤 Mar 09. 2024

싱글맘이 된 딸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된 여성을 미혼모라 하고, 자신이 원해서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성을 싱글맘이라 지칭한다고 한다. 한국도 이젠 갈수록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늘다 보니, 이런 세분된 호칭까지 생긴 것 같다. 


갑자기 싱글맘 이야기를 꺼낸 건, 고등학생인 딸이 얼마 전에 치렀던 ‘3일 동안 싱글맘 체험하기’,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에는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모두 ‘72시간 아기 돌보기’라는 과제를 치러야만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 아기를 데려오기 전에 걱정이 늘어졌던 딸은 나에게 3일 동안 할머니가 될 것이니, 양육을 같이 도와줘야 한다는 협박에 가까운 부탁을 거듭했다. 


아기를 데려와도 분명 딸이 돌보진 못할 거고, 이 과제가 은근슬쩍 내게 넘어오는 건 아닌지 난 지레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딸이 바구니에 눕힌 아기인형을 안고 온 날, 난 그만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대충 어디 구석에 박아뒀다 먼지만 털어 3일만 들고 왔다 갔다 하면 되는 그런 인형쯤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녀석이 겉만 인형이지 하는 짓은 진짜 아기와 똑같았다. 


인형의 가슴에 귀를 대고 들어 보니, 가슴 속에선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심장이 같이 딸려 온 우유병과 기저귀에 붙은 센서를 감지하게 되어 있었다. 


진짜 아기처럼 시도 때도 없이 울면서 우유를 달라고 했고, 우유도 진짜 20분씩 쪽쪽 소리를 내면서 숨까지 가쁘게 몰아쉬며 빨아 먹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면 기저귀 갈아 달라는 거였고, 갈아준 후 다시 먹이기 시작하면 배가 불러야만 "헤엥~!"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그래서 눕히면 바로 다시 "애앵~!" 울기 시작했다. 트림시켜 달라고. 


가끔은 뭘 해줘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 땐 아기 바구니를 흔들며 같이 놀아달라는 거였다. 


여하튼 이런 요구사항 중 하나라도 빠뜨리면 바로 감점이 되는데, 아기 심장이 그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기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심장이 멈춰버린다. 즉, 아기가 죽은 것이니, 딸은 빵점을 맞는 거였다. 아기 머리를 잘 못 받쳐서 목이 꺾여도 아기가 죽게 되어 있었다. 


딸은 밥을 먹다가, 공부하다가, 심지어는 목욕하다가도 뛰쳐나와 이 아기를 돌봐야만 했다.

딸이 이 지경인데 엄마는 뭘 하느라 도와주지 않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 부분이 내가 학교를 향해 엄지척! 해주는 부분이었다. 


딸 오른팔에 절대 뺄 수 없는 센서가 붙어있었다. 아기 심장은 그 센서를 가진 사람이 돌봐야만 반응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기가 온 날부터 아기 울음소리에, 또 초긴장한 딸의 비명까지 더해져 우리 집은 점점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새벽 2시, 4시 밤새 몇 번이나 울며 보채는 아기를 안고 딸은 꾸벅꾸벅 졸면서 우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딸이 졸면서 수유를 하니, 젖병 꼭지가 아기 입에 곱게 물려있겠는가? 자꾸 빠지는 우유 꼭지에 화가 난 아기가 불량 엄마를 향해 거듭되는 울음으로 항의하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에 잠을 설친 난 비몽사몽간에 중얼거렸다. 


“악몽이 따로 없어. 이거 진짜면 너무 끔찍해. 끔찍해!” 


그런 내 옆에서 자던 남편도 잠꼬대하듯 웅얼거렸다.


"아고~! 난 막 악몽이 다 꿔져."

과제가 진행되는 72시간은 어디를 가든 아기를 달고 다녀야만 했다. 물론 학교 수업도 아기를 돌보며 들어야 했다. 


아침마다 잠을 설쳐 창백해진 얼굴로 딸이 책가방, 아기 바구니, 기저귀 가방까지 모두 둘러메고 힘겹게 스쿨버스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난 딸이 미혼모 될 생각은 절대 안 하겠지 싶어 웃음이 절로 났다.

 

3일의 과제를 마친 날, 아기 심장을 분석해 보니 감점 사항이 없어 100점을 맞았다고 딸이 신이 나서 돌아왔다. 점수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난 이 과제를 통해 딸이 뭘 배웠는지가 더 궁금했다. 


딸은 내가 예상했던 답을 하나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첫째, 난 절대 미혼모가 되지 않겠다. 


둘째, 나를 키워준 엄마가 정말 고맙다. 아기를 돌보다 보니 어깨가 빠질 듯이 아프고 허리도 아팠다. 엄마도 날 키우면서 이렇게 아팠을 거란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 뭐가 더 남았다는 거지?'

예상했던 답이 다 나왔다고 생각한 난 의아한 눈으로 딸을 쳐다봤다. 


“앞으로 살면서 싱글맘을 만나면 나도 그들을 도울래요. 혼자 아기를 키우려면 얼마나 많은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았어요. 사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수업마다 내 책과 기저귀 가방 등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나도 아기를 잘 돌볼 수 없었을 거예요.”

      

똑같은 것을 보고도 왜 딸은 배웠는데, 난 이걸 배우지 못했을까? 


그건 미혼모를 비판의 대상으로만 보는 그런 사회에서 자랐던 난 이미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캐나다에서 남편이 개인사업을 하다 보니, 많은 이력서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여기 사람들은 이력서에 꼭 싱글맘을 기재하는 경향이 있었다. 숨겨도 모자랄 판에 무슨 자랑이라고 기재를 하나, 처음엔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한번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싱글맘은 혼자서 아기를 키우니 다른 사람보다 더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니 같은 조건이라면 싱글맘에게 직업을 줄 거라는 생각에 기재한다는 거였다. 


난 딸을 통해서 그제야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미혼모나 싱글맘이 된 사람들에게 꼭 입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기보다는 양육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는 포용적인 사회를, 캐나다는 바로 이런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과제는 내 예상처럼 꼭 10대 미혼모를 방지하자는 데에만 그 교육의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었다. 


거기엔 미혼모 예방, 그리고 동시에 싱글맘이 된 사람들이 친자녀와 결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배려하는,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도 그 목적이 있었던 거였다. 


예방과 포용을 함께 담은 교육이라니! 

"It's beautiful~!"이라는 말이 절도 나올 만큼 내 눈엔 그저 아름다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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