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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머리 앤 Feb 27. 2024

유행

                                              

 

샹들리에처럼 천장에 매달린 미용기구에 머리카락을 가닥가닥 물리고 앉아있는  모습은 흡사 인조인간이 에너지를 공급받는 장면 같다. 꼭 그런 느낌인  머리카락이 감긴 미용기구마다 전기선이 가지처럼 연결되어 있어서내가 머리를 통해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말로 에너지를 받진 않더라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머리 스타일이 내게 활기를 불어넣어   있다면그것 또한 같은 의미일  있지 않을까?

머리 모양이  삶을 바꾼다! 어쩜 머리에게 너무 지나친 부담을 주는 생각일  있겠다하지만 미용실을 찾아드는  마음은 언제나 이런 기대에 부풀어 있다. 언뜻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기 저항감이 느껴지며 삶에 대한 회의가 밀릴 때면 항상 이런 기대감으로 미용실을 찾곤 한다


최근 유행하는 머리 스타일 하나가  내리는 흑백 영상 같은  삶을 금방이라도 뚜렷한 컬러로 되살릴  같은 기대감그런 설렘으로 찾아드는 미용실을  간판만 다른 정신과 병원으로 착각하는지 모르겠다물론 이런 나의 착각은 매번 상상과는 다른 결과물 앞에서 미용사의 솜씨 탓이라는 궁색한 핑계를 찾아야 하지만그렇다고  기대가 사라지는  아니다단지 다음번엔 다른 미용실을 찾아가는 장소 이동이 있을 뿐이다


이번엔 특별히 솜씨 좋은 미용사를 찾아왔으니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있겠지? 성 급한  상상력은 벌써 몇몇 여배우들의 이미지를 섞어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하고 순수한 완벽히 변신한  모습을 몽타주 화하기 시작한다. 이번엔 머리도 당기고 고개도 돌릴  없는 아주 불편한 자세지만그래도 요즘 유행하는 컬을 만들어준다고 하니 충분히 인내할 가치가 있겠지?  미용사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한 내색을 들키고 싶지 않아얼굴에 어색한 미소나마 풍부히 담은 채 눈을 감아버린다.


그런데 언제부터 내가 유행 앞에서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게 되었지아마  생머리를 자르던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중학교 시절부터 기르기 시작한 허리까지 닿는  생머리를 간호사가 되어 병원에 들어가 생활할 때까지 난 고집스레 유지했었다.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머리를  갈래로 땋아 둥그렇게 말아 올리고 근무를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정도의 불편함은 나의 긴머리 사랑에 장애가 되질 않았다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촌스러운 머리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의  그  머리의 찰랑거림이 한없이 좋았고무엇보다  머리는 나에게 순수한 느낌을 갖게 해줬다. 


하지만 그런  머리 사랑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를 간호 때부터였다특히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진 여자 환자를 간호할 때면 지나치게  머리를 지닌  자신이 민망해지곤 했다그러던   항암치료를 받는 젊은 여자분을 알게 되었다소녀 같은 미소가  가시지 않은 젊은 분이었다빠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온 그분을 처음 만났을  항상 마음으로만 생각했던 걸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항암치료를 받는 여자분들은 치료가 실패해서 죽는 것보다, 그에 앞서 아름다움을 잃어가면서 삶의 의지를 꺾어 버리는  같았다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난 여자에게는 어쩜  개의 생명이 있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하나는 하늘이 준 생명이고 하나는 아름다움이라는 생명. 전자는 나눌  없는 생명이었지만후자는 나눌  있는 생명이었다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자른 머리로 그분께 단발머리 가발을 해드릴  있었다.

그것만이 내가 그분과 나눌  있는 유일한 생명이었다그러나   년도 지나지 않아내가 나눠준 생명은 그분과 함께 무덤에 묻히고 말았다.


그렇게 머리를 자른 이후로  계속 머리를 바꾸었다단말파마, 숏커트스트레이트지금의 디지털 파마에 이르기까지  그때그때 유행하는 머리 스타일을 따르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번도  생머리처럼  자신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머리가 없었다는어쩌면  생머리 자체보다도 그때 내가 지녔던 인간다운 마음이 현재의 나에게 없기 때문은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까지 든다내가 머리의 유행을 따르던  시기부터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을 버리고 어떤 사고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았나 하는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머리나 패션의 유행 말고도 사고에도 유행이 있다사고의 유행은 우리가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세월을 지배하는 어떤 주의이다아무리 유행이라고 해도  머리 스타일이 나에게 어울리나 그렇지 않으냐는 금방 분별할  있지만사고는 그렇지가 않다단기간의 유행이 아닌 아주 생명이  유행이라서 속에 침몰해있으면  삶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아닌지 판단 수가 없다그저  속에서 허우적대며 평생을 소비할 뿐이었다. 지금의 나처럼  정신의 흐릿함을 머리 스타일로 밝혀볼까 하는 가망 없는 답답함을 느끼면서


지금의  머리 스타일의 유행을 좇는 만큼이나  사회의 유행을 좇고 있다는 생각이 든 인생을  집과 좋은 차와 바꿀 듯이 하나라도  소유하기 위해 나눔을 잊고 산다어느샌가 본질과는 거리가  것들이  삶을 채우고 있고이젠 그것들이  삶을 지탱하는 매우 필수적인 것임을 의심도 하지 않고 살고 있다


 머리 스타일이 나에게 어울리나 그렇지 않으냐는 세심하게 따지면서도 정신의 무게나 투명도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관심했었음을 깨달았다진짜 나 자신을 뚜렷하게 해주는  내 머리 스타일이 아니라, 내 삶으로부터 비본질적인 것들을 거듭거듭 버릴  아는  정신에 있는  아닐까? 


 당장이라도 미용실을 나가 하얀 대국을  들고 머리가 묻힌 그분의 무덤을 찾아가 애도하고 싶었다 송이는 그분을 위해  송이는 거기에 같이 묻혀버린 맑았던  정신을 위해.


미용사는 거울 속에 비친 나에게 자신이 만든 머리에 대한 평가를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그의 마음을 헤아릴 겨를이 없는  수고했다는 말만을 겨우 남기고급히 미용실 문을 나왔다미용실  길가에는 낙엽들이 뒹굴고 있었다벌써 잎이 가지를 떠나는 계절이구나나도  순간  나무처럼 어떤 불필요한 것들을 떨쳐낼  있다면 삶에도 새잎이 피는 봄이 올 텐데정말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나 유행의 늪에서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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